6.25 직후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초고속 성장기에 청소년기를 거쳤다는 허윤숙 작가는 전형적인 586세대(나이가 50대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부자 나라 국민이 된 지금까지, 어느 세대보다 역동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세대라 그런지 586세대만이 가진 독특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세련미를 잃지 않는 듯하고, 보수적일 것 같은데도 새로운 문화에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
나는 497세대이다. 586세대보다는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IMF에 휘청이며 힘들어할 때 그 모습을 곁에서 생생히 목도했으며, 고통을 함께 나눈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결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그 세대가 가진 감성에 많이 공감하게 된다.
586세대는 자부심도 강하다고 한다. 그들이 겪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자 나라가 된 지금은 사회가 너무 차가워짐을 느끼게 되고, 그 차가움에 베일 때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이 책에는 외롭지 않고, 무엇보다 따뜻했던 그 20여 년 동안의 키워드가 담겨 있다.
지금은 사라진 것들 중에 ‘식모 언니’가 재미있었다.
나는 물론 ‘식모’를 직접 경험(?)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던 우리 집에는 당연히 식모를 둘 형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았기에 어느 집 식모 살이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영화, 소설 속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캐릭터가 ‘식모’였기에 친숙한 단어이다. 그 당시 등장하던 ‘식모’들의 모습은 대부분 불쌍하고, 안쓰럽고, 부당한 일을 당하는 약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식모’를 부리는 주인들은 내 눈에 늘 악당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분이 언니는 오히려 빌런에 가깝다.
이 책에 나오는 분이 언니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잊고 지냈던 단어에 얽힌 감정들이 소환된 것도 재미있었다.
‘골목길’ 이야기는 읽으면서 울컥했다. 제목 그래도 그 따뜻함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전보다 훨씬 커지고 세련되긴 하지만 허전하다는 골목길의 말이 여운처럼 남는다. 골목길에서 시끌벅적하게 뛰어놀던 친구들의 모습과, 저녁이면 솔솔 풍기던 그 밥 냄새가 그립다.
추석 명절이 바로 코앞인데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는 추석은 정말 보름달처럼 풍요로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우리 아이들은 명절에 대한 감흥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넷플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시리즈를 보면서 나도 예전에 친구들과 뛰놀던 생각이 나서 재미있게 봤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련하게 옛 생각이 나서 좋았다.
한국만이 가진 추억의 장소, 물건, 놀이, 정서까지 잊히지 않고 계속 명맥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