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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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은 intp 까페에서 추천해준 책에서 제일 반응이 좋은 것을 보려다가 본책이다. 생각의 탄생은 생각을 하는 방법을 통해 여러가지 성공을 한 방법들을 추려 놓은 것이다. 생각의 방법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설명한다. 그중에서 관찰은 여러가지 음악을 듣고 여러가지 다른 음악이 무엇인지 구분하여 듣고 관찰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서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좀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다양한 악기를 합쳐서 듣지만, 분할해서 다른 악기마다에 있는 여러가지 관찰을 해서 들을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형상화가 있는데, 형상화란, 생각을 통해 다른 과목에서 주어진것들을 형상화 하여 시각화해서 이미지화하든지 상상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의 도구로 이야기 해서 생각을 이야기 한다. 추상화이라고 하는 도구가 3번째로 설명되는데 이것은 여러 복잡한 개념에 대한 단순화다. 여러 이론들이 있는데 이것을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이야기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추상화이다. 4번째로 이야기하는 생각의 도구는 패턴 인식이다. 수열에서 1 3 5 7 9 여기에서 패턴을 인식을 하듯 하나의 규칙을 수에 나열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런 여러가지 방법을 패턴 인식이라고 한다. 5번째로 이야기 하는 생각의 도구는 패턴 형성이다. 프랙탈과 같이 모든 자연에서 발견할수 있는 무한 등비 급수 같은 패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와 같은 패턴들을 발견하는 패턴 인식과는 다르게 음악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하게 되는 규칙들을 흑인들이 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패턴 형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것들로 인간의 모든 일들을 하는데 그것을 패턴 형성이라고 한다. 6번째로 이야기하는 생각의 도구는 유추이다. 유추라는 것은 비교를 통해 유사한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개발해 나가는 것을 이야기 한다. 7번째로 이야기 하는 생각의 도구는 몸으로 생각하기이다. 잭슨 폴록의 흩뿌려진 그림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온몸의 근육의 조직의 움직임을 아무 생각없이 뿌리는 그런 그림을 통해서 생각을 하며 표현한 그림이 잭슨 폴록의 그림이다. 이렇듯 다른 분야 수학 과학 여러 것에도 표현 할수 있는 여러 종류의 것들을 몸으로 생각하기이다. 8번째로 이야기하는 생각의 도구는 감정이입이다. 대체로 이 방법은 소설이나 희극분야에서 많이 하는데 심리학에서도 많이 한다. 예를들어 감정이입하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관찰하여 표현하거나 이해하기 위해서 이 감정이입을 하는데, 제인구달과 같은 동물학자도 동물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관찰하기에 유익한 방법이 이 감정이입이다. 9번째로 이야기 하는 생각의 도구는 차원적 사고이다. 2차원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던 그림을 3차원적으로 옮길수 있게 생각을 하거나 3차원적으로 생각에 머물러 있던 것을 4차원적으로 생각을 해서 그림을 그리는것을 차원적 사고이다. 대체로 루트번스타인은 그림과 과학과 비교해서 설명을 많이 한다. 10번째로 이야기하는 생각의 도구는 모형 만들기이다. 전쟁 놀이 하기 위해서 만든 장난감처럼 인간은 자신의 모형을 만들어 말로 해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것들을 형상화 해서 전쟁을 대비 해서 이기게 한다든지 하는데 그런것들을 모형 만들기이다. 11번째로 이야기하는 생각의 도구는 놀이 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물리학적 지식을 공부에서만 얻은 것이 아니라 놀이였던 것의 관찰을 통해서 얻어서 물리학적 지식을 창조해내고 발전 시켰다고 이야기 한다. 12번째로 이야기 하는 생각의 도구는 변형이다. 변형은 대체적으로 완성되었던 모든 절차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개념이 다른사람과의 협업으로 통하여 변형되어 발전되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영화에서 많이 있는것으로 안다. 영화 감독이 각본을 쓰고 이것을 구현하는 영상에서는 다른 영상에서 보던 것을 미장센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런것들을 미술감독의 세련된 것으로 다른 영상으로 구현되고 음악으로 다양성을 더 추구 하게 하고 카메라 감독이 찍는 방식의 차이로 여러가지 다양한 영화로 변형 되는것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종합 예술인 영화에서도 생긴다. 다른 과학에서도 이런 생각의 도구가 필요하다. 13번째 생각의 도구는 통합이다. 이는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것으로 공감각적 개념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시에서 말하는 공감각적 시상을 이야기 하는데 이를 과학이나 수학 순수학문에서도 이용할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쓰는 것을 이야기 한다.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성공을 위한 생각의 도구가 이리 많았나? 아니면 더 많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단지 이책이 13가지 생각의 도구에 대한 사례분석을 했다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13가지 생각의 도구를 이야기 함으로써 한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하워드 가드너의 인물 분석으로 자신의 다중지능 이론을 발전 시키기 위해서 말하려고 하던 자신의 논리의 주장이 아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 사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라서 좋았다.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사유의 방법을 추적하기 위해 미술, 과학, 수학 여러가지 학문에 대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사례를 추적하여 완성한 이 책은 경이로울 정도로 다양한 지식이 있음을 알수가 있다. 좀 오래연구한 책으로 느껴졌다. 이책을 쓸정도면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가 될수도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중요한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말한 13가지 생각의 도구가 생각의 모든 도구가 아님을 이야기 해야 할거 같다. 13가지 생각의 도구는 물론 중요하고 좋은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생각의 도구를 이책을 보고 알고 모든 철학자 미술가 예술가 음악가들이 이용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나 그렇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어느정도 세상에 있는 지식자로 살아 남기 위한 생각의 방법으로 참고 하기에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지 않나 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없는 인간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이 방법 말고도 사람들은 더없는 생각의 도구가 있음을 알아야 할것 같다. 사례분석으로 이 모든 것들을 추적 해 냈는데, 대단하기도 하지만, 물론 한사람의 생각에 매몰 될수 있는 위험한 경우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말한 직관은 인간이 생각의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이어야 생기는것이 아니라 그냥 뇌에서 모든 근원적인 진리를 지니는 것들을 탐구하고 근원적인 질문을 지속하는 사람에게 열리는 환희이지 않나라고 생각이 든다. 직관으로 주어진 인간의 통찰을 인간은 미리 주어진 답을 연구해서 증명해야 지식으로 남을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주어진 답이 생각의 도구로서 이용 되는것이 아니다. 직관은 빛과 같아서 폭로성으로 우리에게 주어진것이다. 진리나 답뿐만이 아니라 직관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설명되는 모든 생각의 도구는 자기자신이 하려고 생각의 도구를 꺼내서 하게되는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열려지는 진리의 빛이 우리에게 오는것이다. 그 진리의 빛은 신에게서 오는것이고 인간은 그 진리를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진리에 다다랐다고 닦달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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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2 한길그레이트북스 64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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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책 정신현상학 2권을 읽어서 쓰는 글이다. 헤겔은 정반합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는데, 정신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근데 이 정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정신보다 정반합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에 대해서 설명한다. 정신에서 첫번째로 다루는 것은 인륜성이다. 인륜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에 대한 관념을 설명한다. 이 인륜성은 다시 말해 현재 주어지고 있는 종교적인 관념으로 동성연애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와 동성연애가 있어야 한다는 정반합적인 관념으로 주어져서 설명한다. 인륜성은 타협할수 없는 것과 타협해야만 하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설명하는 것들을 하나의 계몽사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고 이책이 설명한다. 또 다른 기독교적인 교설과 그것에 대해 계몽사상이 존재하는데 계몽사상이 극복되어 하나의 다른 교단으로 발전되어지는 과정이 생기게 된다. 계몽사상은 진리를 말하는 다른 종교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며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자 설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또한 도덕성 양심에 관해서 설명을 하는데 이 양심이 발전되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근데 살짝 지나친 감이 없지않아있었다. 양심에 대해서는 반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양심이 되어지는 도덕성이 인간이 반이라는 양심에 반대되는 것들에 대한 토론이나 본성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발전되어져만 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이 들었다. 정신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헤겔이 의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정반합으로 인해서 발전을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는것들도 정반합으로 발전이 되어진다고 이야기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정신과 그것에 의한 성령의 인도는 종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전세계 종교의 긍정을 통해 악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것들에 대한 긍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사실 이 부분은 짜증났다. 빛의 신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힌두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부분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문제는 헤겔은 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지만, 이단적인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삼위일체를 사위일체니 오위일체니 악에 대한 긍정을 하고 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사실 악은 긍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고 그것이 발전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신 성령의 뜻이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매우 어렵지 않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연종교로서 발전 되어지는 것은 빛의 종교 그다음에는 온갖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들을 설명하는데 이 모든 것이 헤겔은 이야기 하기를 인간이 발전시켜놓은 정신의 뜻에 따른 종교의 발전이라고 이야기 했다. 예술종교로서 추상적인 예술작품과 살아있는 예술작품 정신적인 예술작품이 있는데, 이 모든것은 미학의 발전으로 신의 모습이 변천하는 모습의 확장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 예술종교는 판테온으로 그리스 신화로서의 모든 미학적 발전이라고 이야기 하며 계시종교로서 예수그리스도의 현현은 그리스 신화와 연결시켜 종교로서의 극을 보여주며 세상에 가장 성령의 모습이 드러난 인간으로서의 신을 긍정할수 있는 모습이라고 이야기 했다. 즉, 신에 대한 관념은 자연 종교로부터 예술종교 그리소 계시종교로서의 기독교로 점점 발전되어갔고 그 종교는 성령으로서 이성과 신이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절대지는 성령이자 우리의 이성이었다. 그 이성은 정반합으로 이야기 되는 대표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참으로 하면 안되는 일을 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에 대한 관념을 건들면서 악에 대한 긍정을 하면서 악을 용인 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를 한다. 어거스틴의 말을 빌리자면 악은 신이 없음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없어서 그곳에서 생긴 인간과 천사의 타락의 발현을 긍정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노력일까?라고 해야 할까 궁금했다. 사실 악에 대해서 경험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여겨졌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변증과 토론에 대해서 너무나 긍정을 하지 않았나라고 여겨졌다.

헤겔은 인륜성과 양심 그리고 계몽사상 이 모든것은 사실 절대로 정반합적인 태도나 토론으로 발전되어질수 없는 것임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인륜성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관념이 발전되어 동성연애가 긍정되고 다른 성에 대한 지식이 좋아진다고 한들 변태성욕의 근원이 되어지는 사람과 모든 사람과의 대립은 인륜성의 개발이나 좋아짐이 아니라 인륜성의 반복 혹은 다수와 소수의 대립으로 계속 남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발전인지 성개념의 난잡함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인지 궁금하다. 또한 양심이 인간의 내면에 관해서 이야기 할때 정반합으로 인한 결과로서 인간의 양심이 발전내지 종교와 도덕의 발전이 되는지 궁금했다. 양심이 과연 인간의 도덕성 내지 그 양심의 발전으로 인해서 더 나아가는 발전으로서 변증법으로 우리 인간이 발전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실례로 인간의 역사는 성령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본질이 계속 발전해서 좋아져야 되는데 시대가 가면갈수록 양심을 가진 인간이 보여주는 전 세계적인 만행은 줄어들지 않고 전쟁과 기아 모든 고통이 산재함을 보면 이 양심이 발전되는것인지는 성령의 의도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신학을 하면서 도그마라는 것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계몽사상과 대립되는 기독교 사상이 있는데 그것이 발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다른 교단의 신학이 과연 발전 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인지는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아니었다. 도그마에 대한 도전은 항상 악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자신이 신내지 적그리스도이고 악이고 도그마 진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것을 신에 대한 도전으로 되지 않는 것은 기독교 개신교가 유일하지만, 개신교는 다른 교단과의 분열로 대표되는 여러 이성의 난무로 절대적인 도그마로부터의 탈주가 시작되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에서 존재하는 모든 기독교인이 자신의 몸과 같고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여기에서 산산 조각이 난다. 물론 도그마로부터의 탈주는 교황도 하고 카톨릭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개신교는 자유를 얻고 토론하는 자유로 슐라이어마허를 대표하는 자유주의신학으로 대표되는 예수를 신으로 여기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인정만 하는 신학의 발전이나, 마리아를 창녀로 여긴다는 신학이나 모든 성경이 신화나 인간이 과장되게 쓴 양식에 지나지 않는 다는 이야기는 신학의 발전이라기 보다는 퇴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이 신이라면 그 이성으로 대표되는 모든 역사가 전쟁으로 사람이 상대방을 죽이고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제거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전쟁하는 것은 발전의 과정인지 이성의 민낯인지 궁금하다. 인간의 이성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하고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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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임석진 역을 읽어내셨단 말이지요?! 와~~ 저는 십여페이지 읽고 덮었습니다. 한국어 문장구조를 완전 초월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어...읽기 여간 곤욕이 아니었습니다. 이걸 끝까지 읽으신 님에게 박수를 보내드립니당~~!!
 
사람에로의 인간학
한수환 지음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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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학개론 수업시에 받은 책으로 이걸로 오픈북 테스트를 받으며 요약 하던 책이다. 사실 이책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책이다.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거나 철학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렵다. 이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3명의 철학자들이 있는데, 그 철학자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책을 입문조차하기 어렵다. 그 사람은 하이데거 에브너 부버이다. 맨처음 하이데거의 주관 객관을 설명하며 인간의 인식 이론을 설명하는데,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세상은 기술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계라고 지적하는 책이다. 기술은 상대를 객관으로 깎아 내리며 실재성을 잘 파악 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왜곡이 가득한 진리라는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진 것으로 세상의 모든것을 해석하고 윤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는 객관으로 받아들여선 니체의 신은 죽었다로 대표되는 세계 1차 세계 2차 대전을 대표로 받아들여지는 인간의 몰상식과 죽음으로 대변되는 것으로 나올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진다. 주관 객관으로 우리는 진리를 만들었고 그것은 실재성의 한면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코기토 즉,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속에 착색된 진리만을 말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실재성을 보기 위한 여정을 그리게 되는게 이책이다. 실재성이라면 인간의 새로운 인식 과정을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긴것이 이책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코기토를 비판하며 인간의 모든 철학을 비판하면서 존재상실의 역사라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그 존재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의 답을 마틴 부버와 에브너 하이데거가 했다. 하이데거의 대답은 현존재로서의 가능성을 열면서 존재에 대해서 끊임 없는 물음을 지속해서 그로 존재가 폭로되어 세인이 아닌 현존재가 되어 거기에 있으미 존재가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이 되어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마틴 부버는 인간중심적 편재신론의 대가이다. 하이데거가 가지고 있는 철학의 맹점을 지적하며, 인간의 모든 역사는 나와 너 중에서 너가 없어서 생기는 오해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나는 너없이는 존재할수 없는 너 의존적 존재임을 이야기 한다. 나와 그것 나와 너 이 존재의 두가지 형태를 이야기 하며 우리의 역사는 주관과 객관의역사이고 나와 그것의 역사였다고 지적하는게 바로 마틴 부버다. 주관과 객관은 진리라고 명해지는 실재성이 착색된 인간의 편리성만 부각 되어 기술로 표현되어지는 것으로 말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와 너는 인간과 인간 사이적 존재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중요한 실존 형태임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 사이적 존재에서 중요한것은 우리가 대화를 통해 나와 그것의 존재에서 나와 너의 존재로의 이행을 할수 있는 존재임을 명시했다. 나와 너에서 마틴 부버는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나와 너의 관계를 할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 하지만, 한수환 교수님께서는 동의 하시지 않는 듯 해 보였다. 그다음은 에브너의 이야기 인데 에브너는 언어에서 인간의 실존을 발견할수 있는 키로 보았고 언어적 실존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졌고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 특징이라고 보았다. 에브너는 심리와 심령으로 말해지는 것으로 심리는 나와 그것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심령은 나와 너로 표현되어지는 주관과 주관의 관계로 표현 되어지는 신앞의 인간을 이야기 한다. 에브너와 부버의 차이점은 에브너는 신중심적 편재신론으로 부버는 인간중심적 편재신론으로 차이를 볼수가 있다. 즉, 인간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너가 존재했고 그 너 가 나를 규정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태고적 존재임을 부인할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에브너는 기독교인이 더 알아야 하는 존재임을 이야기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부버가 더 인기가 많다. 그리고 언어적인 특징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이 에브너에게는 많다. 즉, 인간에게는 5가지 언어적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격 여격 소유격 목적격 호격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가 실재성을 객관으로 소유하려는 경향으로 왜곡되어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소유격 여격 목적격 인것이다. 즉, 인간의 실재성이 왜곡되어지거나 착색되지 않는 만남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나와 너인 호격과 주격으로만 되어진 대화에서 실재성이 열리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책은 한수환 교수님의 박사논문에서 나오는 인격 개념을 농축시켜서 한수환 교수님이 기독교인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철학을 아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한 책이다. 그렇지만 의문이 남는 것은 과연 이런 방법으로 인간의 실재성이 드러나는데 기여를 할수 있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한수환 교수님이 책을 쓰면서 나와 너를 강조했는데, 나와 너의 이상적 실재성으로의 탐험은 한수환 교수님 조차도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코기토라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에브너 학회에서 멤버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인지 에브너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다 싶이 우리 인간은 서술을 하지 않고 이름만 이야기 하고 외치는 것으로 실재성이 열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술이라는 것이 왜 모든것이 착색되고 실재성이 닫히는 것인지는 책에서는 설명했지만, 사실 서술이 없는 인간의 학문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로 보여졌다. 나와 그것이 인간의 주된 설명으로 가능태를 여는 문이었다면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을 너로 바꾸는 작업을 설명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너로 바뀌어 실재성이 열리는 문이라고 설명하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수환교수님에 대한 개인적 평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친절하고 모든 개념에 대해서 꿰뚫고 좋은 설명을 하시는 분이라고 느껴진다. 그렇지만, 신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 놓으니 인기 없는 독백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느껴진다. 한수환 교수님의 책을 거의 다 읽어 봤는데, 책은 엄청난 노력의 결실로 진액이 녹아 있는 책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난 학부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나와 너라고 성의없는 대답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책은 구하기는 어려울듯 싶다. 출판사의 농간으로 더 팔릴수도 있는것을 더 못팔게 되는 어려운 책이고 인기 없는 신학에 신앙서적도 제대로 이해 못한 사람들의 너무 어렵다는 핑계로 읽어져도 2번 이상 읽지 않으면 이해 조차 하기 힘든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책이다. 누군가가 이책에 대한 진가를 알고 극찬한다면 읽어질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임을 말하고 싶다. 손봉호 교수님도 화란자유대학교를 나왔지만, 한수환 교수님도 화란자유대를 나온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이책은 절판됬거나 지평에서 팔고 있지는 않는 책이지만 운좋게도 내가 학부생활을 했던 광신대에서는 구할수 있는 책이었다. 내가 쓴 이 글이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도울수만 있다면 좋겠고, 이책을 읽기 위해 도전 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또 말하자면 난 한수환교수님의 수업이 2개가 있다면 그 수업 다에서 F를 두번 맞았던 사람이다. 다시 듣지 못하면 졸업이 어려울 상황이었다. 한수환 교수님은 내가 아픈 사람인지 몰라서 수업에 참가 못했던 나를 다시 들으라며 F를 주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지금도 아픈 나를 생각하면 좀 너무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수환 교수님이 너무 묻히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엄청난 천재임을 부인할수가 없는 분이다. 그러나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책으로 모든 것을 쏟으신 분이시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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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 확대 개정4판
제임스 사이어 지음, 김헌수 옮김 / IVP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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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책은 박영선 목사님과 매형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이책은 세계관을 집대성해서 쉽게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좋은 책임을 부인할수가 없는 귀중한 책이다. 처음 세계관을 설명할때 유신론중에서 기독교 유신론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삼위일체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과 기독교 유신론은 인격신과 항상 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시작한다. 기독교는 사실 기독교인이라면 아 이런것이 원래 있었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어렵지 않게 읽을수가 있다. 그리고 이해하기에도 상당히 편할 뿐이다. 그리고 이 유신론을 설명하고 난 다음에 이신론을 설명하는데, 이 이신론은 로마서에 나와 있듯이 자연을 보면서 사람들이 생기는 신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나와있다. 특히 이신론은 이슬람 문화권에 팽배한 사상이다. 이신론은 다시 말해 세상에 있는 엄청난 질서에 신은관여하지 않고 방관자로 있다가 신이 만들어놓은 규칙 안에 인간이 살아간다는 세계관이다. 이 이신론은 스티븐 호킹이라든지, 아인슈타인이라든지 과학자에게 상당히 많은 면을 기대는 세계관임을 부인할수가 없다. 이 이신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다음을 이야기하는게 자연주의이다. 자연주의는 이신론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하는 이신론 다음의 세계관이다. 자연주의는 우주에 있는 모든것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고 이 세계관은 물리학자나 여러 유물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대가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이 자연주의에 속하였고 이 자연주의에서 말하는 유물론은 자연주의이다. 유물론은 인간이 물질에 의해서 생겨났고 영혼 마저도 인간의 호르몬이나 여러 인간의 물질로 생겨 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연주의 다음에 나온 세계관은 허무주의이다. 이 허무주의는 자연주의에서 신이 없는 빈곳이 생겨나서 생긴 인간의 허무를 표현하는 아주 힘든 상황이다. 허무주의에서는 신은 없고 신 대신에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번째 내용이다. 허무주의는 자연주의의 어쩔수 없는 결과라는 이야기를 한게 제임스 사이어이다. 자연주의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칙과 혹은 신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신이란것은 없고 인간의 절대적 이성만이 있는 곳에 규칙만이 있어서 허무해지는 순간 허무주의가 오게 되는 것이다. 이 허무주의 다음에 실존주의가 오게 되는데,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이 실존주의는 두가지로 분할 된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는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가 나온다. 사르트르의 이론에서는 인간이 무조건적인 선에 이를수 있다는 오류를 가지고 이야기 하면서도 선택을 하면 선해진다고 이야기 한다. 죽음과 삶의 가운데 선택만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인간의 실존은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그 선택을 하는 인간을 선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68세대의 혁명에도 쓰여진 아주 중요한 책을 쓴 사람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키에르케고르에 의해서 쓰여졌고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을 물려받았다고 평가되어지는 신정통주의의 칼바르트에 의해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서 이야기 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는 계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우리는 위로부터 아래의 신학을 할수 밖에 없고 우리가 신학하는 모든것은 의미가 없고 신과 우리의 질적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우리는 신에게 대화를 거는 존재락 아님을 이야기 한다. 신은 우리에게 대화를 거므로 그것만이 진리임을 이야기 한다. 실존주의 다음은 동양의 범신론적 일신론이고 이뜻은 힌두교에서 모든것이 아트만이 되기 위한 아트만은 즉, 신이라고 여겨지는 하나의 신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되기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동양의 종교하나가 더 있는데, 카르마를 이야기 하며 카르마는 곧 업보이다. 윤회의 굴레 속에서 죄를 지으면 좋은 결과로 윤회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카르마이다. 여기서 힌두교와 불교의 공통점은 자기가 신이 되기 위한 여정을 걷거나 수련을 하면 신이 되서 자기를 구원하는 종교라는 점이다. 근데 제임스 사이어는 서양 사람이라서 그런지 사실, 많은 설명에 난점이 있었음을 부인할수가 없는거 같다. 그다음 설명해야 할것은 뉴에이지인데, 주관성이 강조된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강조한 세계관이다. 여러가지 종교에서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경험주의 같이 강조해서 그모든 경험을 아루르는 경험에서의 특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다음은 니체의 작품인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만 남은 비판만 남고 인간의 하나의 실존만 남은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사실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에 살아서 절대적 진리인 성경을 거부하고 살기도 한다.
모든 제반 세계관을 읽고 느낀점을 쓰려한다. 사실 기독교적 유신론이라는 세계관은 개혁주의에서 표방하는 개혁하는 기독교는 없기에 하나의 도그마의 화석화된 사람들밖에 없고 발전된것이 전혀 없고 사실 인간의 쓸데없는 노력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발전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여러 세계관에 의해서 공격 받고 있는것이라고 생각된다. 유신론의 공격을 기독교의 회의에서 예를들면 니케아 회의나 칼케돈 회의에서 만든 사도신경을 아직도 쓰고 있고 그것이 발전되지 않은채 화석화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독교의 무력한 힘만이 남아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책을 읽고 느낀것이지만, 인간에게 윤리가 남아있지 않는 여러 세계관들의 난잡함에 내가 기대고 있는 이 화석화된 도그마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주의에서 이야기 하는 물리학자가 말하는 여러 질서들은 신이 존재함을 이야기 해주는 여러 반증에 지나지 않으며, 그 질서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기 위한 우리 인간의 여러 이성임을 이야기 한다. 사실 내 은사가 하는 말이 있었는데 철저히 이성적인 설명을 이끌어 나가도 인간의 귀결은 기독교임을 부인할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것 같다.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대의 시대임을 부인할수 가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유랑하는 모든 지식인들이 진리를 잃어버리고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을 믿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뉴에이지는 사실 경험주의 데이비드 흄과 로크 이런 사람들의 후예라고 생각이 든다. 사실 영적 경험과 오컬트 이 모든것을 인정하는 사회를 보는것이 세계관으로 뉴에이지인데 이는 다른 종교를 믿던 안믿던 신의 존재에 대한 경험이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반증임을 이야기 할수가 잇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물론적 변증법인 마르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겠다. 헤겔에서 나오게 된 이 내용은 인간에게 있을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 하며 인간은 신없는 사회에서 살게 되는게 이상사회라고 이야기 하는데, 사실 사회는 신이 있어야 함을 부인할수가 없다. 혁명으로 지워질 피의 역사는 신없는 사회의 폐해이고 신없는 사회는 역시 혁명을 한다고 해도 다시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임을 부인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 제임스사이어에 대한 평을 하자면 뉴에이지 를 설명할때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조금은 난잡하게 표현된 작문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가 없다. 또한 범신론적 일신론을 이야기 할때 우리도 서양 학문을 하면서 난잡한데, 동양 이론에 대해서 조금은 정돈된 이론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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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日1食 - 내 몸을 살리는 52일 공복 프로젝트 1日1食 시리즈
나구모 요시노리 지음, 양영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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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식 나구모 요시노리의 식생활 바꾸기에 대한 책이다. 사실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끼리는 이책이 너무 유명했고 그 효능에 대해서는 정평이 난 책이다. 이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의사들이다. 의사들은 병원에 오고 안오고 이 상황이 반복 되어야지 돈을 벌고 안벌고가 결정되기에 병원에 오지 않게 하는 민간 요법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신드롬이 불었던 반신욕은 심장에 무리가 간다며 학을 떼며 싫어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의사들이다. 반신욕은 그 장점이 엄청나게 많고 몸안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요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1일 1식은 인간의 번식력 기아 유전자,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위기 대처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엄청난 것임에도 많은 부분으로 의사들이 하지 말라고 권유를 한다. 그러나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이나, 건강적으로 문제 있던 사람들의 1일 1식의 효능은 생각 보다 크다. 생각 보다 1식에 먹는 양은 적었고 다이어트라면 무조건 단백질의 양을 늘리라고 운동을 늘리라고 대답밖에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이어트의 신세계를 여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문제는 허기를 참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허기라면 죽을듯 싫어했고 이 책에서는 허기 지는 것 시트루인 유전자나 여러 인슐린 작용이나 여러 이점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1일 1식의 가장 눈에 띄는 이점을 이야기 하는 것은 기아가 되는 상황에 있는 모든 나라 즉 아프리카나 가난한 국가의 출생률이 지나치가 많고, 그에 반해 출산율이 현저히 적어진 많은 식사를 하는 나라의 통계를 보고 나는 좀더 설득력이 있는 내용임을 이야기 해주는 것임을 알수가 있다. 기아는 우리의 생존력을 좀더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이야기 해야 한다. 아무튼 이 책은 그런 내용만 있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영양을 얻는 음식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통으로 먹는 생선들 과일들 그로 인한 인간이 얻는 이점들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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