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래도 봄이 다시 오려나 보다
나태주 지음, 박현정(포노멀)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0월
평점 :
#서평단 #도서제공
나태주 시집 『아무래도 봄이 다시 오려나 보다』를 읽는 동안, 이 책이 굳이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삶은 괜찮아질 거라고,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계절은 결국 돌아온다고 말하지만 그 문장들은 늘 낮은 목소리다. 위로를 건네되 앞에 나서지 않고, 감정을 설명하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집은 ‘감동적이다’라는 말보다 ‘곁에 두고 싶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나태주의 시는 여전히 짧고 단정하다. 그러나 그 단정함 속에는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체온이 있다. 이 시집에서도 그는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를 끌어오지 않는다. 대신 산책길, 창밖의 풍경, 오래된 기억, 누군가를 부르는 마음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 사소함을 통해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는 감정들을 다시 불러낸다. 그 감정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과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시집이 ‘봄’을 다루는 방식이다. 제목처럼 봄은 분명 다시 오려는 것 같지만, 이 봄은 환희나 들뜸의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럽고, 아직은 망설이는 봄이다. 시 속의 봄은 겨울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 채, 그 흔적을 품고 들어온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다 보면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희망은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작은 이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집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나태주가 여전히 사람을 믿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주 실망을 안기고, 관계는 쉽게 멀어지며, 말은 때때로 상처가 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를 떠올리는 순간,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지는 장면들이 시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믿음은 낙관적이라기보다 성실하다. 여러 번 상처받았음에도 다시 마음을 여는 태도에 가깝다.
문장 하나하나를 읽으며 자주 책을 덮게 되었다. 더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문장이 만들어낸 여운을 조금 더 붙잡고 싶어서였다. 이 시집은 단숨에 읽어버리기보다, 하루에 몇 편씩 천천히 읽는 편이 잘 어울린다. 마음이 조금 무거운 날, 이유 없이 지치는 날, 혹은 특별한 사건 없이 하루가 흘러간 날에 펼치면 좋다. 읽는 동안 무엇을 깨닫거나 결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아무래도 봄이 다시 오려나 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들을 다시 꺼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시집을 덮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이기보다는,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느슨해진다. 그 느슨함이야말로 이 시집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봄이 꼭 지금 당장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래도 기다려볼 만하다는 것. 이 책은 그 정도의 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조용히 옆에 앉아 있다.
* 이 리뷰는 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무래도봄이다시오려나보다 #나태주 #알에이치코리아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