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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
법정 지음, 김인중 그림 / 열림원 / 2025년 4월
평점 :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법정 스님의 글과 김인중 화백의 그림이 만난 책으로,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서는 깊은 울림을 지닌 철학적 명상록이다. 제목에서부터 이 책이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침묵’과 ‘말함’이라는 상반된 두 행위는, 사실 그 어떤 이분법보다도 더 깊은 연결성을 지닌다. 법정 스님은 이 책에서 침묵의 본질을 단순한 ‘말하지 않음’이 아닌,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길로 제시한다. 말은 때로 진실을 가리지만, 침묵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차원의 진실에 닿도록 한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길지 않다. 간결하고 절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김인중 화백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독서의 리듬과 감성을 섬세하게 조율해준다. 그림 또한 법정 스님의 말과 같이 ‘비워냄’을 통해 여백을 드러내며, 독자의 내면을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 조용하고도 단단한 공명은 독서 자체가 하나의 명상이 되도록 만든다.
책은 ‘무소유’라는 법정 스님의 대표 개념에 닿아 있다. 무소유란 단순히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정신을 “침묵”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풀어낸다. 스님은 말한다. “침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존재와 삶, 진정한 말과 진정한 침묵이 하나로 맞닿는 지점을 본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말과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을 얼마나 흐리게 만드는지를 자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침묵은 단지 소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잔상을 정리하고 맑은 거울을 만드는 일이다. 침묵 후에 나오는 한마디의 말은 더 이상 수다의 연장이 아니라, 숙성된 사유와 감정의 결정체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히려 ‘말 이전’의 세계를 건네주는 드문 책이다.
또한 법정 스님의 글은 단지 철학적인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존중, 인간과 사물 사이의 거리감, 삶의 리듬과 고요한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계발이나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서, 존재론적인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소리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은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결국 침묵 속에 깃든 목소리, 말 너머의 울림, 존재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삶이 복잡하게 얽히고 마음이 시끄러운 날, 이 책은 가장 단순하고 맑은 언어로 나를 다독인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닌 가장 깊은 힘이며, 우리가 왜 다시금 침묵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조용한 설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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