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세계사 - 서양사편 이것만은 알고 죽자 Q&A
김유석.정부원 지음, 심차섭 그림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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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관련된 내용들을 조목조목 나열해 준 책이다. 연대기순으로 설명되어져 있어 책의 중반까지는 학창시절 배웠던 세계가에 대해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있다.

중간중간 결코 적지 않은 일러스트 컷은 좀 더 책을 읽기에 즐거움을 더해준다.

모든 주제는 ' ~ 은?' 또는 "~까? '로 시작하고. 본문 뒤 작은 글씨로 그 답은 간단한 단어 또는 문장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든 편집을 통일시키려고 과하게 본문 내용과 제목. 답을 압축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지만 아무튼 이 한권의 책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말 그대로 상식이 풍부해지도록 알 수 있는 장점을 갖게 해준다.

그리스 신화에서 부터 중/근세 역사의 유명한 내용들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다보니 자칫 좀 더 풍부한 설명이 아쉬워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수많은 내용들을 한권으로 묶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다.

매일 차 안에서 출퇴근을 하며 읽기에 딱 좋은 각 주제별 내용은 이 한권을 다 읽고 나자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사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역시 정치나 사회 상황에 따라 영웅이 죄인으로, 진실이 거짓으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는데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던 인명, 지명 또는 사건들이 의외로 많은 사건들 속에 잘못 알려지고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움도 주었다.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일반 성인들도 나처럼 지루한 시간을 달랠 때 읽기에 무척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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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 베이직 잉글리시 레벨 1 - 케로조의 영문법입문
이시자키 히데호 지음, 송상엽 옮김, Enjc 스터디 감수 / 랭컴(Lancom)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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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3을 읽었다. 이 공부책은 레벨1,2,3 구분은 얼핏 심화과정이 크게 날 것 같지만 예상을 깨고 전체가 무척 쉽게 구성되어 있다. 영어공부라고 하면 머리에 쥐부터 나는 나... 책소개를 읽어보며 한글로 영어를 배운다는 말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요즘도 계속 가방에 넣고 다니며 출퇴근 때마다 꺼내보고, 약속 등 시간이 짬짬이 빌 때마다 읽는데 한편으로 애들 동화책 읽는 기분이다. 그만큼 친절한 설명과 그림이 초보자가 무서움을 버리고 영어입문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공부하려 샀다가 책장에 꽂혀있는 이런 류의 책들을 보면 대개 장문의 독해를 통해 영어를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백투더베이직~처럼 간단한 생활영어를 가지고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책들도 있지만 생활영어 위주의 책들은 손이가질 않았다. 이번에 이렇게 쉬운 책으로 보다보니 새삼 무지한 나의 지적 오만함을 비웃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뒷면에 보면 [꼼꼼하게 읽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확 와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단 레벨1 과정을 보면 매우 간단하고 쉬운 단어의 문장을 갖고 우리말 어순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데 나처럼 늘 갖고 다니며 자꾸 반복해서 술술 읽는 것이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간단한 문장을 통해 문법을 간단하지만 자세히 설명해주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문법의 개념을 예상치 못할 정도로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이건 개인적 생각이지만 난 레벨1을 읽다가 때로는 레벨2,3도 뜨문뜨문 다시 읽고 있다. 이미 전 3권을 한번 훑었기도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어느 레벨을 선택하더라도 무리없이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것 필요없이 영어의 기본을 이 책으로 확실히 머릿속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책 사이즈가 작고 가벼운 것도 휴대하며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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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 Picture Life Classic 4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진근 옮김 / 봄풀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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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우리나라, 정확히 말하면 이 책처럼 현재가 아닌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대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누군가 세계에 조선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의 일본은 유럽도 두려워할 정도의 군사력이 뒷받침 되었던 상황이었지만 아무튼 되돌릴 수 없는 역사가 정말 아쉽게 느껴쪘다.

또한 서양인의 눈으로 일본을 '국화와 칼'이라고 정의한 것에도 그 한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마저도 동양의 관점이 아닌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학문적으로의 큰 수혜를 일본이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보여지듯 일본은 메이지시대로 인해 상상할 수없는 큰 도약을 한 것은 누구나 인정할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칼을 숭상하고 칼로 지배하는 막부시대를 유지하려 했던 끊임없는 반항을 알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메이지 시대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들이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인 그 순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안타까워하며 거울로 비쳐보듯 이 책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것들을...

일본인에 대해 쓴 내용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인의 명예에 대한 의리]와 [일본인의 예의], [일본인의 의무]를 생각하며 절묘한 정의로 그들을 표현했다 싶다.

이것들은 사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그 뜻이 이중적이기에 얼핏 일본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명예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면서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운다든지, 예의를 존중하기 위해 용서를 모르는 복수를 한다든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단은 있으되 개인이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한 국가의 민족성은 역사의 시간과 함께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역사가 전쟁의 궤와 함께 하기에 책에서 언급한 많은 전쟁의 예가 일본을 가장 잘 표현해준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중적인 잣대를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삶 속에서 대대로 이어가고 있는 무서움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문화와 인류학의 관점에서 일본인을 바라보았다고는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인조차 깨닫지 못할 객관적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다분히 담겨있음에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번역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일본과 조선의 입장이 바뀌어서 일본의 고유어와 고유글이, 역사가, 황실이, 수십년간 교묘하고 체계적으로 말살당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인의 그 이중성과 잔인성이, - 조선과 달리 그들이 그러한 역사를 역사로 교육받고서도 섬나라이기에 핏속에 끓는 군국주의에 기반한 민족성이 남을 수 있었을까? 강한 의문이 들게 한 책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전세게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무시하는 사람은 한국사람밖에 없다고-나또한 극단적으로 일본을 폄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칼을 숨기려 국화를 손에든 그들의 이중성이 책을 통해서는 전세계에 일본의 단결성과 우수성(?)을 알려준 매개가 되는 것 같아 이 고전 한권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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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엔젤 - 나는 머리냄새나는 아이예요
조문채 글, 이혜수 글.그림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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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꽃이 생각난다. 강렬한 노란색 표지 때문일까?

이 책을 읽으며 첫 번째는 따뜻했고, 두 번째는 즐거웠고, 세 번째는 슬퍼졌다.

첫 번째는 모녀의 이야기가 내가 지금껏 들어온 아이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와는 비슷하면서도 틀렸기 때문이다.

외국 생활을 해서일까? 엄마의 생각이 따뜻하게 열려 있고, 교훈적 가르침으로 가득하지 않은 것이 결혼 전 아이를 기를 때 꿈꾸던 주변 엄마들의 모습같다. 그렇지만 한결같이 이 책 속의 엄마처럼 대답해주는 걸 보지는 못했다.

 

그런 아이와 엄마의 모습들이 즐거웠다. 어쩜 그렇게 아이의 상상력이 ... 그런데 그건 엄마의 상상력을 꼭 빼닮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의 이야기 속에 끊임없이 함께 하고 있다. 여기서 함께 하다라는 것은 학습지 광고에서 말하는 눈높이가 아니라 그저 함께 있으므로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저 함께 있으면 같아진다는 것이 모든 아이와 엄마들의 모습일까?

미혼인 내게는 친구가 주거니 받거니 꼬마 때부터 청소년으로 자랄 때까지 함께 성장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한편 슬퍼지는 이 기분은 나는 그런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자꾸 놀아달라는, 실수 투성이인데도 고집 부리는  아빠를 보면서도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사랑은 마음이 뚫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수많은 조건과 이유를 뚫린 가슴에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런.... 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없고 생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메마른 생각 속을 봄날의 노란색 향기로 대청소 한 기분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중학생 아이들을 만나는데 아이들은 도통 말이 없는 때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그저 생각이었음을 - 내가 먼저 어떻게 마음을 알려야 할지를 아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림과 함께 하는 이 책을 특히 주변 유치원 교사들에게, 중학생을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지인들에게 추천했다. 모처럼 마음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을 읽게 되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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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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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읽었던 책.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내용의 방대함이란- 내가 말하는 방대함이란 주제의 방대함이 아닌

한 가지 주제를 풀기 위해 저자가 소개했던 방대한 분야의 이해에 관함이다.

 

저자는 진화론을 강력하게 소개하고 있다기 보다는 창조론을 반박하기 위한 집념으로 진화론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을 이론화시킨 것으로 보였다.

역시 리처드 도킨스였다.

솔직히 분야가 전혀 다른 연구를 정리하여 이렇게 시종일관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필설하자면 얼마만큼 노력하고 깊이 있게 연구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럴뿐더러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가며, 한마디로 머리를 비워놓고 읽는 것이 아닌 머리를 가득 채워 놓은 상태에서 책을 읽는 새로움을 저자는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꽤 많은 부분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기에 책있는 속도가 더져지기도 했다.

 

저자는 역사/지리/문화/의학/철학에 이르는 해박한 학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의학 중에서도 유전학, 생태학 등 그의 글을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런데 왜 난 그 많은 이론을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그가 주장하는 창조론의 반박이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을까?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고, 저자가 기독교인을 향해 무지하다고 말하는 범주에 속하는 부류로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가 쓴 책에서는 사실을 말하는 [이론]으로 설명되지만 아직도 과학으로는 [가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앞부분에서 라틴어 교사에 대한 예가 후반부에도 나온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증명]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명을 넘어 인정을 전제로한 설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종에 대한 분류인데 의문이 든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말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원시인이 현대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생명체 역시 시간을 끌어안으며 끊임없이 모양이 변해간다. 그렇다고 저자가 말하는 종과 종 사이의 담이 없다는 것은 그저 이론일뿐이지 제일 처음에 설명한 [이론] =[사실]이란 말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어보인다.

차라리 [지상 최대의 쇼]를 설명하기에 앞서 창조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것이 더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무척 진지하고 깊이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인간이 연구하는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분명 저자는 대답을 하고 있는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이 생긴다.

끝으로 다방면의 분야에 대한 이해없이는 번역 또한 힘들었을 법한데 늘 번역서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내게 원서를 줄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다. 기독교인으로의 마지막 느낌은 이 세상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아 수많은 이론과 학설, 가설이 펼쳐지는 세상. '지상 최대의 쇼'이기에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는 진화하는 것- 그 원초적인 저자의 진화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끊임없는 진화론에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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