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읽었던 책. 책의 두께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 내용의 방대함이란- 내가 말하는 방대함이란 주제의 방대함이 아닌 한 가지 주제를 풀기 위해 저자가 소개했던 방대한 분야의 이해에 관함이다. 저자는 진화론을 강력하게 소개하고 있다기 보다는 창조론을 반박하기 위한 집념으로 진화론에 대해 연구하고 그에 대한 수많은 가설들을 이론화시킨 것으로 보였다. 역시 리처드 도킨스였다. 솔직히 분야가 전혀 다른 연구를 정리하여 이렇게 시종일관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필설하자면 얼마만큼 노력하고 깊이 있게 연구했을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럴뿐더러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가며, 한마디로 머리를 비워놓고 읽는 것이 아닌 머리를 가득 채워 놓은 상태에서 책을 읽는 새로움을 저자는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꽤 많은 부분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기에 책있는 속도가 더져지기도 했다. 저자는 역사/지리/문화/의학/철학에 이르는 해박한 학식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의학 중에서도 유전학, 생태학 등 그의 글을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런데 왜 난 그 많은 이론을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그가 주장하는 창조론의 반박이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을까?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고, 저자가 기독교인을 향해 무지하다고 말하는 범주에 속하는 부류로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가 쓴 책에서는 사실을 말하는 [이론]으로 설명되지만 아직도 과학으로는 [가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앞부분에서 라틴어 교사에 대한 예가 후반부에도 나온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증명]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설명을 넘어 인정을 전제로한 설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종에 대한 분류인데 의문이 든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말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원시인이 현대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생명체 역시 시간을 끌어안으며 끊임없이 모양이 변해간다. 그렇다고 저자가 말하는 종과 종 사이의 담이 없다는 것은 그저 이론일뿐이지 제일 처음에 설명한 [이론] =[사실]이란 말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어보인다. 차라리 [지상 최대의 쇼]를 설명하기에 앞서 창조론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것이 더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무척 진지하고 깊이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인간이 연구하는 깊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분명 저자는 대답을 하고 있는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이 생긴다. 끝으로 다방면의 분야에 대한 이해없이는 번역 또한 힘들었을 법한데 늘 번역서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내게 원서를 줄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다. 기독교인으로의 마지막 느낌은 이 세상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아 수많은 이론과 학설, 가설이 펼쳐지는 세상. '지상 최대의 쇼'이기에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는 진화하는 것- 그 원초적인 저자의 진화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끊임없는 진화론에는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