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과 죽음
마르틴 하이데거 외 지음, 한상연 엮고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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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절대적으로 가둬버리는 난공불락의 괄호, 영원히 해제되지 않는 자물쇠. 죽음이다. 우리는 이 괄호 안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고, 지극한 쾌락과 고통 중에 있다 해도, 결국은 이 괄호 안이다.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이 아무리 먼 곳으로 치닫는다 해도, 우리의 실존은 결국 이 괄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실존주의의 사유가 죽음에서 열려 죽음으로 종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실존과 죽음>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의 단편들을 엮어 모은 책이다. 파스칼,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실존주의의 계보를 잇는 대표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한 문장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자기의 죽음을 향해 존재하면서, 현존재는 실제로, 게다가 부단히 죽는다. 아직 자기 삶이 끝나지 않는 한에서는 말이다.” - 하이데거

“죽음은 세계의 한 가운데서 자기의 객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타인에게 자기를 주체로서 드러낼 가능성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다.” - 사르트르

“오늘날 우리는 꽤 시달리며 산다. 죽음을 속이는 데 너무 열심이기 때문이다.” - 보부아르

“자기 의지로 죽는 자는 살아야 할 어떤 심오한 이유도 없음을, 하루하루 동요하며 사는 것의 어이없음과 고통에 시달림의 무익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 카뮈.

죽음의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철학자들의 사유는 물러섬이 없다. 죽음에 의해 한계상황에 던져진 실존을 드러내고, 그 한계상황이 초래하는 삶의 부조리와 덧없음, 의미를 부여잡으려는 실존의 희극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 너희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의 삶에는 혹독한 죽음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너희는 모든 무상함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자여야 한다. - 니체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가능성을 향한 존재는 죽음이 이 존재 안에서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해 가능성으로서 드러나도록 죽음과 관계 맺어야 한다. ”- 하이데거

“나는 죽어 가려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죽을 자로 자유롭게 존재한다.” - 사르트르

“실존은 자기의 유한성 자체에서 자기를 절대적인 것으로 긍정해야 한다. ” - 보부아르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서 있는 칼날의 다른 한 면은 삶이다. 실존이 지향하는 자유와 존엄의 가능성은 예정된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현재는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실존은 자기의 가슴에 품은 죽음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원해야 한다.” 라는 보부아르의 문장처럼, 우리가 목적 없이 던져진 필멸의 존재라는 진실을 직시할 때, 삶은 도리어 그 오롯한 무늬를 드러낸다.

삶의 비밀은 죽음이 움켜쥐고 있다. 죽음의 방향에서 삶을 바라볼 때 많은 것들이, 지켜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진다. 유한성이라는 인간 제1 조건을 어떻게 사유하고, 그 사유에서 어떤 실천을 이끌어 내어, 어떤 삶을 구상할지는 개별 실존에게 던져진 어쩌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과제일지 모른다.

<실존과 죽음>은 아포리즘 형식으로 구성됐다. 철학자들의 긴 사유의 문맥에서 발췌된 문장들이기에, 책에 실린 문장들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사유가 농밀하게 맺혀진 짧은 문장들은 특별한 장소와 공명을 만들어 낸다. 문장을 감싸고 있는 여백과 침묵의 공간은 독자에게 홀로 그 문장을 대면하고 오래 한 자리에 머물러 문장을 곱씹으며, 그 문장이 건네는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게 한다.

24시간 대낮같이 환하게 자가 발전중인 이 화려하고 스마트한, 누추하고 벌거벗은 시대에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을 경청하려 당신을 기다리는 철학자들이, 여기 이 책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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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의 시간 - 망가진 세상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
사이 몽고메리 지음, 맷 패터슨 그림, 조은영 옮김 / 돌고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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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 아름답다. 천천히 그믐달과 초승달 사이를 오가는 하늘 아래, 그보다 더 천천히 물과 땅을 오가며, 히아신스와 연꽃 향이 은은히 퍼진 대기를 호흡하는 거북이. 초록색 거북이. 반창고로 터진 등딱지를 이어붙인 거북이. 발가락을 활짝 펴고, 깊은 눈을 끔뻑이며, 가장 낮게 누워, 높이 날아오르는 거북이. (표지 그림은 진청 작가가 그렸다.) 평화로운 장면 위로 거북의 시간이 핑크빛으로 반짝인다. “망가진 시간을 복원하는 느림과 영원에 관하여묵상하세요, 라고 거북이가 말을 거는 것 같다.

 

 

책 안에 그림들도 너무 아름답다. 이 그림들은 저자 사이 몽고메리와 함께 거북구조연맹에서 인턴으로 모험을 시작한 맷 패터슨의 그림들이다. 세계에 재난이 닥치고, 그 해 이 두 사람이 연맹에 첫 출근해,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너태샤의 초능력에 대해 알기 직전까지 읽었다. 나는 벌써 생김도, 기질도, 삶의 이력도 가지각색인 거북이들에게, 거북이들과 함께 서로를 살리는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 인간 중심 사고방식의 편협함과 그 답답함을 친절히 깨주는 책들이 있다. <거북의 시간>도 그런 소중한 책이다. 머릿속에 막혔던 것이 흐르고, 순환한다. 이제 막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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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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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몸의 아우성, 그 한복판을 산다. 먹고 마시고, 입고, 벗고, 눕고, 뛰고, 배출하고, 사랑하고, 혼자 있고 싶다고외치는 몸. 더 맛있는 것을, 더 멋진 것을, 더 편안한 것을, 더 자극적인 것을, 더 매력적인 사람을 원한다고속삭이는 몸. 몸이 보내오는 갈증과 다급함의 신호에 우리는 귀 기울이고, 복종하고, 때로는 그것을 물리치려 한다. 우리는 몸의 인질이며, 몸의 연인이며, 몸과의 공범이다.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과학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몸의 요구와 언어도 더욱 섬세해진다. 몸의 욕구와 기호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과연 라는 순수한 주체일까? 그럴 리가, 없다. 개인의 몸은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하고, 사회문화적 구성물로 만들어지고 인식된다.

 

그럼에도 관성처럼, 몸은 지극히 개인적 장소로 여겨지기 쉽다. 개별성의 준거로서 경계가 되는 몸, 성애적 실천과 판타지의 대상이자 주체인 몸, 완벽한 공유가 불가한 쾌락과 고통의 담지자로서의 몸. 신체의 자유라는 자유의 대원칙이 측정되는 몸. 이렇게 몸을 둘러싼 표면적인 이미지는 단독적이고 은밀하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몸은 비정치적이고, 비사회적인 장소인가?

 

 

 모든 몸은 수신기이자 발신기이다



이 책 <바디올로지>는 저 질문에 대한 집요하고 치밀한 탐구서이다. ‘(body)’(-logy)’의 합성어인 <바디올로지>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몸에 관한, 몸을 둘러싼 담론들을 의학,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심리학, 여러 장르의 예술과 대중문화의 렌즈를 통해 조망한다. 그야말로 몸에 대한 다학제적 문화서이다. 여러 학문과 미디어를 넘나들며 교차하는 몸에 관한 저자의 해석과 통찰은 풍성하고 예리하다.



몸은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억압과 폭력이 새겨진 텍스트다

 


책은 막연하게 느끼던 몸을 향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뚜렷하게 인지하게 해준다. 몸에는 공동체의 성원권(“장애 운동과 퀴어 운동”)이 등록되고, 계급적 삶과 취향이 기입되며 (“계급을 가로지르는 냄새의 지리학”), 젠더의 수행양식이 입력되고 (“엉덩이의 성애화”), 자본주의의 기호들이 각인되며 (“일상화된 몸 관리 프로젝트”), 가부장제의 명령이 선포되고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인가”), 우생학적 편견 (“각선미의 계량화”)이 새겨지며 인종과 연령에 대한 통념이 (“매끄러우면서도 하얀 세계”)이 유포된다. 그 뿐인가 그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법과 제도의 무능과 폭력(“포르노와 성폭력”, “여성, 인구 재생산의 도구”)이 고스란히 몸에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몸 자체가 삭제되기까지 한다. (“동성애 혐오”, “헤아려지지 않는 몸들”). 저자의 몸 이야기는 계속 확장된다.

 


저자는 몸에 내려진 억압과 폭력의 분석에 머물지 않는다. 적응하고, 저항하고, 탈주하고, 그리고 기억하는 몸의 주체적인 반응에도 공평한 연구와 해석을 할애한다. 주체성의 실현으로서 성형을 연구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성형 연구자들,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며 여성 해방과 노동 운동의 절박함을 외친 여성들, ‘제모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여성들, 가부장적 질서에서 탈주하면서도 교섭하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연구되는 거식증과 프로아나 당사자들, 메타언어로서 타투를 새기는 사람들, 식생에 대한 생태적 관점으로 경합하는 페미니스트들, 저항과 투쟁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느닷없이 사라지고, 헤아려지지 않는 몸들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사람들. 몸의 메아리가 향하는 방향을 저자는 성실히 추적해 간다.

 


인간의 몸은 권력이 행사되는 핵심적인 장소이고 건강과 성별, 생식, 출산, 사망, 외모 문제가 모두 결부되어 있다.”

 

 

거칠게 요약해 보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잔주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요인들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몸은 권력과 자본이 경합하는 장소이며, 그 결과다. 동시에 몸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생존과 욕망을 외치고, 낡고 억압적인 과거를 기각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 간다.

 


몸의 역사에 타인의 마음과 손길이 깃들었다

 


저자가 조밀하게 일별해 보여주듯, 결국 몸의 이야기는 마음의 이야기다. 삶의 이야기다. 모성의 신비를 상징하는 가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로 맺어진다. 우리 몸이 느끼는 희노애락, 몸이 통과해가는 생로병사는 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 매개된다. 더불어 우리 몸에 가해지는 이 유무형의 외적 영향력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인 대응은 또 다른 요인으로 우리에게, 다음 세대에게 되돌아온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저자가 이 책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몸의 안전과 자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몸의 안전과 몸의 자유, 그리고 몸의 기쁨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각자의 책임도 온전하다.

 


내 몸과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권력과 협상해 나가기 위해서는 몸에 새겨진 욕망의 패턴, 적응과 저항의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 이 책은 탁월한 바디올로지이다.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저자는 이 책에 담았다. 독자는 몸에 관하여 듣는, 듣지 못한,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듣게 된다. 몸은 더 없이 취약하다. 우리는 모두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말했듯 함께 - 생존하기위해 몸의 기억을, 몸들의 연대를 거듭 고쳐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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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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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이유진 기자의 바디올로지 연재가 시작됐을 때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그의 전작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를 읽고 또 한 번 제대로 깨어났던 나는 그의 기사들에 감질이 났다. 그런데 연재라니, 그것도 영영 화두일 몸에 관해서! 매회 바디올로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이 연재는 단행본으로 나와야 돼. 나올 수밖에 없어!’

“‘원래 그렇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 책날개 저자 소개의 마지막 문장이다. 세계와 현상에 관한 저자의 질문과 탐색의 근원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만큼 바디올로지라는 타이틀 아래 쓰인 몸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글들도 과녁을 향해 날카롭고 정확하게 날아오른다. 주제를 향한 사유의 집중력은 몸을 둘러싼 담론의 맥락과 이동을 집요하게 추적해 간다.

글을 읽으며 연재가 끝나면 긴 호흡으로 세심하게 재독해야지, 했는데 이렇게 더 풍요롭고 세밀해진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니,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1부 타이틀처럼 타오르는 몸의 기억들로 내 몸(마음)이 수런수런 무질서하게 많은 말을 걸어온다. 쌓인 게 많은 가보다. 나에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독일 베를린 훔볼트포럼 한국 유물 특별전의 해프닝(?)이 불과 2년 전 일이라니. 1930년대 화백 안석주의 만평 속 여성들의 다리 위에 새겨진 여성 혐오의 유구함은 또 어떤가. 과학의 이름으로 송두리째 유린됐던 사르키 바트만의 삶부터 수백년, 아니 수천 년 몸에 가해졌던 낙인과 폭력을 확인하는 일은 인식의 각성과 재정비로 이어진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스스로 몸을 대상화하고 자주 몸과의 바람직한 관계(참, 문제적이다.)를 모색한다. 중년의 몸은 사회문화면에서, 기능면에서, 또 심리적으로 기존과는 다른 요구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당황하고, 움츠러든다.

몸에 관해서도 인식과 현실, 의지와 실천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이 모순과 혼란을 이 책을 읽으며 들여다봐야겠다. 몸에 관한 사회적, 개인적 인식이 어떤 담론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당대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확인하게 되리라. 이유진 저자가 이번에는 나를 어디까지 멀리 데리고 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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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수업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안온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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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소리는 속살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게.”

거문고 연주자 성현은 제자 백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음악의 본질이 소리에 있지 않다면 음악의 속살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까.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수업> 중 세 번째 에피소드는 스승과 제자의 음악 수업을 따라간다. 그러나 스승 성현의 교수법은 우리가 종래에 알고 있던 음악 수업과는 결이 다르다. 이 이야기는 제자 백아뿐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음악의 기원은 무엇인가?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가르침의 방식으로 전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가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졌다면, 첫 번째 에피소드는 17세기 프랑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각각 모티브로 삼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세 번째 에피소드가 던진 질문에 관한 긴 그림자이다. 파스칼 키냐르는 시공간을 넘어 음악에 대한 사색을 공명시켜간다. 시원, 시간, 언어, 문학, 예술, 그리고 생과 사. 그의 사색은 한지에 떨어진 먹물이 번지듯 농담을 달리하며 수묵화를 그려낸다.

“이 목소리가 영원히 부서졌다. 영원히 사라졌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키냐르의 또 다른 작품 <세상의 모든 아침> 그 마랭 마레이다. 16살 마랭 마레는 변성을 이유로 성가대에서 쫓겨난다. 곧 마레는 인간 목소리의 가장 아름다운 매력을 악기로 모방하겠다는 결심한다. 그는 생트콜롱브의 제자가 된다. 생트콜롱브는 당대 최고의 비올 비르투오소이다.

변성. 이것은 결손이고 결여이며 허물벗기이다. 변성이라는 허물벗기를 통과한 청년은 욕망한다. 재-허물벗기. 이번에는 스스로에 의한, 평생에 걸친 허물벗기이다. 이 소명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목소리를 갈고닦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나무의 육체에서 울려나온다. 청년은 악기, 기악의 세계로 망명한다. 망명지는 비올라 다 감바이다. 그는 다시 고음을 되찾는다. 그는 소리의 영역을 재구성한다. 그는 스승의 ‘뽕나무’ 오두막으로 기어든다. 그는 작곡가, 연주가가 된다. 변성, 변환은 음악이 된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

“음악은 조바심과 분노라는 동일한 얼굴에 쓰인 또 하나의 가면이다.”

키냐르는 인간은 무엇인가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이 무엇의 괄호 안을 당신은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 이 기다림에 대한 분노, 이 분노에 들러붙은 권태의 나른함. 이 공허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순간, 운명의 은혜로 만드는 음악. “그것은 충치 위에 살짝 올려놓는 각설탕의 부서진 조각이다.” 음악이 블랙 유머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키냐르의 문장에 나는 웃는다. 동의한다.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인간을 좌절시키고, 고통스럽게 하며, 죽음으로 이어지는 시간. 이 시간 위에 노니는 음악은 필멸의 존재들에게 달콤한 위안을 안겨준다. “음악은 시간의 유령이다.” 이 유령은 “사라지고 회귀하는 감미로운 것”이다.

“모든 소리는 숨결이 저버린 몸뚱이를 죽음에서 소생시켜 숨결의 경이를 회복시킨다.”

키냐르는 마랭 마레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인간의 목소리들’을 듣는다. 키냐르가 인용한 수도원장 라이히헬름의 문장들은 음악의 비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되살리는가. 음악이 회복시키는 경이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도원장 라이히헬름은 묻는다. “음악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이 질문을 나는 이렇게 바꿔본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음악이 일으키는 작용, 결과, 청음의 효과에 대해 묻는다.

키냐르는 말한다. “음악은 살아 있는 자를 유혹한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음악의 무엇인가? 음악이 깨우는 것들은 무엇일까? “소리는 정령을 호출하고 정령은 흉내 내거나 목 놓아 부른다.” 나는 키냐르의 이 문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자연은 무의미한 산 것을 생산한다. 예술은 유의미한 죽은 존재를 생산한다.” 마랭 마레의 ‘인간의 목소리들’가 들려주는 선율들이 누군가의 음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악기는 이미 관이라네!” 그렇다면 그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정혼의 음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마크로의 양손은 죽어가는 황제의 울부짖음을 거의 아득하고 유순하게, 마치 어린애의 소리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파스칼 키냐르는 묻는다. “내게 음악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과, 고통과, 사라짐에 깊게 관여한다. 그것은 최초의 허밍, 추방, 상실, 탄식, 침몰, 소리의 분비물, 반영, 숨결, 향수, 빈 서사, 길들임이다. 키냐르의 음악에 관한 사색은 수면 위의 고요한 파문처럼 서서히 더 큰 원을 그리며 번져간다. 그 파문은 독자에게 밀려오며 묻는다. ‘당신에게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에게 그것은 진통제, 환각, 띄어쓰기, 폭죽, 걸어 잠금이며 기도, 망아이다.

“플라톤에게 첫인사를 드릴 때 새파랗게 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했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독자가 만나는 인물은 이제 막 청년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가 저술한 <동물의 역사>는 남성의 2차 성징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특히 목소리 변성을 자세히 언급한다. “마치 현이 느슨해져 걸걸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상시킨다. 소위 ‘염소처럼 매애매애 운다’는 떨리는 목소리다.”

“병든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그것이 마지막 허물벗기이다.”

키냐르는 프랑스어 비극(tragedie)이 그리스어로 ‘염소의 노래’(tragodia)인 것을 밝힌다. 얼마나 흥미로운지. 변성(mue)은 뮈토스(muthos, 신화의 언어)에서 로고스(logos, 이성과 진리의 언어)로의 변환(mue)이라고 키냐르는 적는다. 이 또한 얼마나 흥미로가. 키냐르의 사색은 봄, 숫염소, 허물벗기, 껍질, 극장 같은 수많은 언어의 기원들로 뻗어간다. 이 언어의 고리는 음악의 비밀을 에워싼다. 말년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독서를 멈추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데 열중했다고 한다. 그에게 “우주는 마치 대형 극장 같았다.” 비극을 좋아했다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거대한 우주는 어떤 선율을 들려주었을까. 우주는 거대한 허물을 벗고 또 벗는다.

“성련의 모습이 슬며시 물 위에 나타났다. 백아는 성련이 장대로 미는 배에 올라탔다.”

세 번째 에피소드로 되돌아온다. 키냐르가 난해한 음악 수업을 묘사한 이 이야기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음악 수업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음악의 기원과 본질, 그것의 작용과 결과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키냐르는 은퇴 후 최고의 연주 기량에 달한 마랭 마레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자신이 물 위에 기보했노라고 믿었다. 흐름을 거슬러, 다시 근원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이 문장과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파스칼 키냐르가 엿본 음악의 비밀에 관한 암시가 설핏 비쳐진다.

결락과 상실을 안고 근원으로 회귀하는 목소리, 물결처럼 다시 되돌아오는 선율, 다시 멀리 사라지고 회귀하는 목소리들의 파장,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허물벗기. 이 근원으로의 의지가 반영되는 음악. 이것은 물 위에 기보된다. 첫 음을 새기기 전에 사라지는 기원의 흔적. 불가능한 욕망을 담은 불가능한 움직임. 표현할 수 없는 시원의 물결들. 작곡가는, 연주자는 물이 된다. 음악은 물이 된다. “그는 장대로 배를 밀며 떠났다.” 이 작은 책은 심연 앞에, 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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