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과 죽음
마르틴 하이데거 외 지음, 한상연 엮고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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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절대적으로 가둬버리는 난공불락의 괄호, 영원히 해제되지 않는 자물쇠. 죽음이다. 우리는 이 괄호 안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고, 지극한 쾌락과 고통 중에 있다 해도, 결국은 이 괄호 안이다. 인간의 이성과 상상력이 아무리 먼 곳으로 치닫는다 해도, 우리의 실존은 결국 이 괄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실존주의의 사유가 죽음에서 열려 죽음으로 종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실존과 죽음>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의 단편들을 엮어 모은 책이다. 파스칼,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실존주의의 계보를 잇는 대표 철학자들의 죽음에 관한 문장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자기의 죽음을 향해 존재하면서, 현존재는 실제로, 게다가 부단히 죽는다. 아직 자기 삶이 끝나지 않는 한에서는 말이다.” - 하이데거

“죽음은 세계의 한 가운데서 자기의 객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타인에게 자기를 주체로서 드러낼 가능성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다.” - 사르트르

“오늘날 우리는 꽤 시달리며 산다. 죽음을 속이는 데 너무 열심이기 때문이다.” - 보부아르

“자기 의지로 죽는 자는 살아야 할 어떤 심오한 이유도 없음을, 하루하루 동요하며 사는 것의 어이없음과 고통에 시달림의 무익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 카뮈.

죽음의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철학자들의 사유는 물러섬이 없다. 죽음에 의해 한계상황에 던져진 실존을 드러내고, 그 한계상황이 초래하는 삶의 부조리와 덧없음, 의미를 부여잡으려는 실존의 희극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 너희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의 삶에는 혹독한 죽음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너희는 모든 무상함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자여야 한다. - 니체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가능성을 향한 존재는 죽음이 이 존재 안에서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해 가능성으로서 드러나도록 죽음과 관계 맺어야 한다. ”- 하이데거

“나는 죽어 가려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죽을 자로 자유롭게 존재한다.” - 사르트르

“실존은 자기의 유한성 자체에서 자기를 절대적인 것으로 긍정해야 한다. ” - 보부아르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서 있는 칼날의 다른 한 면은 삶이다. 실존이 지향하는 자유와 존엄의 가능성은 예정된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현재는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실존은 자기의 가슴에 품은 죽음을 부정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원해야 한다.” 라는 보부아르의 문장처럼, 우리가 목적 없이 던져진 필멸의 존재라는 진실을 직시할 때, 삶은 도리어 그 오롯한 무늬를 드러낸다.

삶의 비밀은 죽음이 움켜쥐고 있다. 죽음의 방향에서 삶을 바라볼 때 많은 것들이, 지켜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진다. 유한성이라는 인간 제1 조건을 어떻게 사유하고, 그 사유에서 어떤 실천을 이끌어 내어, 어떤 삶을 구상할지는 개별 실존에게 던져진 어쩌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과제일지 모른다.

<실존과 죽음>은 아포리즘 형식으로 구성됐다. 철학자들의 긴 사유의 문맥에서 발췌된 문장들이기에, 책에 실린 문장들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사유가 농밀하게 맺혀진 짧은 문장들은 특별한 장소와 공명을 만들어 낸다. 문장을 감싸고 있는 여백과 침묵의 공간은 독자에게 홀로 그 문장을 대면하고 오래 한 자리에 머물러 문장을 곱씹으며, 그 문장이 건네는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리게 한다.

24시간 대낮같이 환하게 자가 발전중인 이 화려하고 스마트한, 누추하고 벌거벗은 시대에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을 경청하려 당신을 기다리는 철학자들이, 여기 이 책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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