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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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몸의 아우성, 그 한복판을 산다. 먹고 마시고, 입고, 벗고, 눕고, 뛰고, 배출하고, 사랑하고, 혼자 있고 싶다고외치는 몸. 더 맛있는 것을, 더 멋진 것을, 더 편안한 것을, 더 자극적인 것을, 더 매력적인 사람을 원한다고속삭이는 몸. 몸이 보내오는 갈증과 다급함의 신호에 우리는 귀 기울이고, 복종하고, 때로는 그것을 물리치려 한다. 우리는 몸의 인질이며, 몸의 연인이며, 몸과의 공범이다.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과학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몸의 요구와 언어도 더욱 섬세해진다. 몸의 욕구와 기호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과연 라는 순수한 주체일까? 그럴 리가, 없다. 개인의 몸은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하고, 사회문화적 구성물로 만들어지고 인식된다.

 

그럼에도 관성처럼, 몸은 지극히 개인적 장소로 여겨지기 쉽다. 개별성의 준거로서 경계가 되는 몸, 성애적 실천과 판타지의 대상이자 주체인 몸, 완벽한 공유가 불가한 쾌락과 고통의 담지자로서의 몸. 신체의 자유라는 자유의 대원칙이 측정되는 몸. 이렇게 몸을 둘러싼 표면적인 이미지는 단독적이고 은밀하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몸은 비정치적이고, 비사회적인 장소인가?

 

 

 모든 몸은 수신기이자 발신기이다



이 책 <바디올로지>는 저 질문에 대한 집요하고 치밀한 탐구서이다. ‘(body)’(-logy)’의 합성어인 <바디올로지>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몸에 관한, 몸을 둘러싼 담론들을 의학,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역사,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심리학, 여러 장르의 예술과 대중문화의 렌즈를 통해 조망한다. 그야말로 몸에 대한 다학제적 문화서이다. 여러 학문과 미디어를 넘나들며 교차하는 몸에 관한 저자의 해석과 통찰은 풍성하고 예리하다.



몸은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억압과 폭력이 새겨진 텍스트다

 


책은 막연하게 느끼던 몸을 향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뚜렷하게 인지하게 해준다. 몸에는 공동체의 성원권(“장애 운동과 퀴어 운동”)이 등록되고, 계급적 삶과 취향이 기입되며 (“계급을 가로지르는 냄새의 지리학”), 젠더의 수행양식이 입력되고 (“엉덩이의 성애화”), 자본주의의 기호들이 각인되며 (“일상화된 몸 관리 프로젝트”), 가부장제의 명령이 선포되고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인가”), 우생학적 편견 (“각선미의 계량화”)이 새겨지며 인종과 연령에 대한 통념이 (“매끄러우면서도 하얀 세계”)이 유포된다. 그 뿐인가 그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법과 제도의 무능과 폭력(“포르노와 성폭력”, “여성, 인구 재생산의 도구”)이 고스란히 몸에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몸 자체가 삭제되기까지 한다. (“동성애 혐오”, “헤아려지지 않는 몸들”). 저자의 몸 이야기는 계속 확장된다.

 


저자는 몸에 내려진 억압과 폭력의 분석에 머물지 않는다. 적응하고, 저항하고, 탈주하고, 그리고 기억하는 몸의 주체적인 반응에도 공평한 연구와 해석을 할애한다. 주체성의 실현으로서 성형을 연구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성형 연구자들,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며 여성 해방과 노동 운동의 절박함을 외친 여성들, ‘제모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여성들, 가부장적 질서에서 탈주하면서도 교섭하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연구되는 거식증과 프로아나 당사자들, 메타언어로서 타투를 새기는 사람들, 식생에 대한 생태적 관점으로 경합하는 페미니스트들, 저항과 투쟁으로 단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느닷없이 사라지고, 헤아려지지 않는 몸들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사람들. 몸의 메아리가 향하는 방향을 저자는 성실히 추적해 간다.

 


인간의 몸은 권력이 행사되는 핵심적인 장소이고 건강과 성별, 생식, 출산, 사망, 외모 문제가 모두 결부되어 있다.”

 

 

거칠게 요약해 보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잔주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요인들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몸은 권력과 자본이 경합하는 장소이며, 그 결과다. 동시에 몸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생존과 욕망을 외치고, 낡고 억압적인 과거를 기각하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 간다.

 


몸의 역사에 타인의 마음과 손길이 깃들었다

 


저자가 조밀하게 일별해 보여주듯, 결국 몸의 이야기는 마음의 이야기다. 삶의 이야기다. 모성의 신비를 상징하는 가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로 맺어진다. 우리 몸이 느끼는 희노애락, 몸이 통과해가는 생로병사는 정치사회적 요인에 의해 매개된다. 더불어 우리 몸에 가해지는 이 유무형의 외적 영향력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인 대응은 또 다른 요인으로 우리에게, 다음 세대에게 되돌아온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저자가 이 책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몸의 안전과 자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몸의 안전과 몸의 자유, 그리고 몸의 기쁨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각자의 책임도 온전하다.

 


내 몸과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권력과 협상해 나가기 위해서는 몸에 새겨진 욕망의 패턴, 적응과 저항의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 이 책은 탁월한 바디올로지이다.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저자는 이 책에 담았다. 독자는 몸에 관하여 듣는, 듣지 못한,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듣게 된다. 몸은 더 없이 취약하다. 우리는 모두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말했듯 함께 - 생존하기위해 몸의 기억을, 몸들의 연대를 거듭 고쳐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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