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 토킹
미리엄 테이브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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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토킹 / 미리엄 테이브스 / 박산호 / 은행나무



메노파 공동체에서 추방된 후 가족이 해체되어 떠돌다 감옥까지 가게 된 에프. 출옥 후 자살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간 도서관에서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사서이며 여성이다. 공동체 신앙의 그늘 아래 청년기를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에게 사서는 그는 특별난 사람이며,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한다.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가부장적 남성 신이 죄와 벌로 신도들을 다스렸다면, 인간의 언어로 지은 도서관이라는 장소에서 인간 언어를 돌보는 여성 사서가 그에게 용서와 존재의 존엄함을 이야기하니 말이다.

성경에 대한 독단적 해석의 권력이 지배했던 중세가 저물고 문자와 서적의 공급이 죄와 벌로 상징되던 신앙의 감옥으로터 인간을 해방시킨 후 수세기가 지났음에도, 메노파 공동체는 여전히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한다.

그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으나 아직도 죄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 에프에게 죄를 벗으라고 말하는 여자 사서는 가부장적 남성 신에 대항하는 여성 신이다.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언어로 축적된 사유의 궤적을 관리하는 여성 신. 이 여성 신은 ‘존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는 에프에게 존재를 긍정하라고 말한다.

책의 도입 부분 에프와 사서와의 이 짧은 대화는 이 소설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죄와 벌이라는 중세적 가치에 묶여 있는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에게 가해진 죄를 해석할 것이며, 가해자들에게 죄에 합당한 처벌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

이 소설은 메노파 공동체의 강간 피해 여성들이 범죄 이후의 삶을 도모하기 위해 헛간 다락방에 모여 주고 받는 이야기의 기록지이다. 폐쇄적 신앙 공동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행된 남성 집단에 의한 집단적 성폭력은 종교와 죄, 벌이라는 문제와 함께, 성폭력과 관련된 주요 이슈들을 전면에 드러낸다. 성폭력 관련 원탁 회의장에 참석해 테이블 한 귀퉁이에 앉아 말없이 열띤 토론을 듣다 온 기분이다. 오가는 이야기들이 여전히 너무나 시의성이 있어 한마리라도 놓칠세라 집중해서 읽게 된다.

처음으로 남성 신도, 남성도 없는 공간에서 신앙의 이름으로, 전통의 이름으로, 공동체의 이름으로 오랜 동안 자신들을 억압했던 폭력들을 낱낱이 분해해 가는 여성들. 볏짚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둘러앉은 그녀들을 수없이 많은 질문의 문들이 에워싸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문의 문을 열고 나가면, 그 질문과 연결되는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 문은 또 다른 문으로 연결된다. 그렇게 그녀들은 겹겹으로 둘러싸인 질문의 문들을 지금까지 폭력의 장소였던 자신들의 몸으로 스스로 통과해간다.

종교적 신념 아래서 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종교가 죄책감으로 어떻게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가, 종교 공동체에서 피해자는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용서란 무엇인가, 가해자의 사과 없는 용서란 가능한가. 완벽한 감시와 폐쇄로 지배와 억압을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피해사실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본능적 앎을 언어가 없을 때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자기 서사(내러티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한가. 싸움의 목적은 무엇이 되야할까. (파괴하기 위해 싸울 것인가? 얻기 위해 싸울 것인가?), 싸움의 대상은 어떻게 한정해야 할까. (메노파의 모든 남성인가? 메노파를 지배하는 특정 이데올로기인가(기독교적 가부장제) 돌봄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여성들의 안전과 남성들의 갱생 가능성 중 선택해야 한다면?, 신이 전능하다면 왜 강간을 막지 않았을까 (신앙에 대한 의심). 폐쇄적 종교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동력은? (고립과 스토리텔링, 잔인함) 기존 종교를 토대로 새로운 종교 만들기가 가능한가? 기존의 가족, 집, 안정, 안전이 사랑과 등치될 수 있는가? 이때 사랑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가? 피해 이후 미래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사건을 바라보기 위한, 즉 관점을 갖기 위한 거리두기가 왜 중요한가. 여성들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을까? (가축, 상품으로서의 자신들을 자각), 성경을 해석할 권리는 누가 갖는가. 성폭력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은폐했던 남성들에게는 죄가 없을까. 지속적인 성폭력의 가장 큰 배후는 무엇인가? 권위란 무엇인가? 성폭력 가해자들과 은폐자들 또한 메노파 교단의 피해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정이 사랑이고, 사랑이 안정일까?, 교단 내에서 서열관계는 여성 지배를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권력 의지는 본능일까? 진보와 진화의 목적은 현세대를 위한 것일까. 괴로움과 죄책감은 어떻게 다른가? 도망치는 것과 떠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피해자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왜 여성들은 추방자이자 남성인,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에프에게 회의록을 작성하라고 했을까?

최초로 개인으로서 공동체와 미래를 위해 말하기 시작하는 여성들. 이어지는, 이어지는 질문들. 질문이 거듭될수록 질문은 정교해지고 투명해진다. 질문이 얇은 막처럼 세밀해질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자각한다. 물리적으로 메노파 공동체를 떠나기 위해 지도가 필요하듯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종교 공동체와 남성들을 떠나기 위해서도 그들에게 지도가 필요하다.

그 지도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간다. 끝없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은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고 걸어야 할 길들을 예측하며, 당도해야 할 장소를 설정해간다. 이 용감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도를 만드는 힘 자체이자 지도 그 자체이다. 그들은 말하며 미지의 지도 위에 길을 만들어간다. 그 지도 위를 걸으며 미지의 미래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이 위민 토킹인 이유다. 말하는 그들은 이미 여신들이며, 그들의 회의록은 이미 신화이다.

@ehboo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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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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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샬롯 맥거너히

지구의, 생명의 경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땅과 하늘, 바다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지쳐 이 곳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의 내면은 어떤 것일까. 인간들이 펼쳐놓은 불행들. 그것에 대한 민감한 감각 때문에 이미 풍화된 마음. 떠난 이들이 남긴 상실과 트라우마, 죄책감, 그리고 고립감, 자기혐오, 자기 파괴.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간 세계와의 불협화음.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마이그레이션’의 프래니가 이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프래니가 지키고 싶어 하는 북극제비갈매기를 따라 바다를 항해하며 시작된다.

새장은 새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새장은 인간 중심적인 구조물이다. ‘필요’하다면 ‘본능’을 길들이는 것이 왜 나쁜가. 의문을 허용치 않는 이 반문. 이 의문이 가둔 것은 새만이 아니다. 21세기의 인간들이 자유의 수단이라며 향유하는 창궐한 자본주의와 디지털 기술 또한 보이지 않는 새장이다. 프래니와 사가니호의 선원들은 이 새장의 보이지 않는 창살들을 보는 사람들이다. 자연을 길들이고, 착취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은 동식물뿐만이 아니라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자유(쇼핑몰에서 물건을 선택할 자유와는 다른 자유)와 본능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프래니 같은 이들에게 이 세계는 거대한 새장이다.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어디 새뿐이겠는가. 인간들도 또 다른 의미로 날지 못할 때 생명력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프래니와 선원들은 육지에서 바다로 이주해온 이들이다. 바다 위에서의 삶은 프래니의 말처럼 다른 방식의 삶을 제공하니까.

“사가니호에 오른 선원들은 여느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처럼 다양하고 서로 다르지만, 나는 이들이, 여기 있는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똑같다고 말할 수 있다. 육지에서 이들의 삶은 어딘가 비어 있었고, 그래서 이들은 답을 찾아 나섰으니까. 그게 뭐든 간에 각자의 답을 찾았다고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육지에서 이주해 온 이들은 삶의 다른 방식을 제공하는 이곳 바다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이 배를 사랑하고, 또 서로 다투고 싸우는 만큼이나 서로를 사랑하기에. 그리고 언젠가 이런 생활도 끝날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는 모른 채,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하고 있기에” p 140

북극제비갈매기를 따라 남극을 향해 나아가는 사가니호 위의 프래니는 미지의 미래를 향해 이주하는 동시에 4년 전, 8년 전, 12년 전, 19년 전으로, 그렇게 과거로도 하염없이 이주 중이다. 책 ‘MIGRATION'(이주,이동)은 생존을 위해 본능에 따라 이주 중인 새들의 이야기이자 역시 같은 이유로 이주 중인 프래니로 대표되는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엄마가 말한 삶을 살게 할 단서들을 찾기 위해 그녀는 과거로, 과거로 거듭 떠난다. 그 과거에는 어린 그녀가 어찌할 수 없었던 상실, 슬픔, 불가해한 부적응과 고독, 트라우마, 그리고 깨닫지 못했던 사랑이 있다.

삶의 발목을 잡던 그것들이 잘 들여다보고 소화해 내면, 삶을 해방시켜 주는 단서가 되는 아이러니를 이 책은 정교하게 짜여 진 이야기 망으로 잘 드러낸다. 마치 북극제비갈매기가 물어다 준 것같이 느껴지는, 과거에서 찾아온 삶의 단서들을 양식 삼아 그녀는 미래를 향해 이주 중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과거로, 동시에 미래를 향해 동시에 이주해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안정과 정착을 견딜 수 없어 늘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런 그를 사랑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 양보해야 해결될 문제일까. 떠나야만 숨 쉴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 사이의 허공. 하지만 이 둘 모두 새장을 열어 새를 날려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새장을 열어준 그 손길과 눈길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것 같지만 너무나 닮은 두 사람, 프래니와 나일. 북극제비갈매기를 이해했던, 사랑했던 연인들.

이주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강요된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으로의 적극적인 이동이다. 그리고 삶의 목적에 따라 이주의 이유와 목적지는 변경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에서 이주는 애도의 한 방식이다. 누군가를 애도하기 위해 자기 몫의 남겨진 삶을 남김 없어 살아내는 것. 이 이상의 애도가 있을까.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된 세계에서 과학자들은 살아남은 몇 종을 보호하기 위해 토론하지만, 역시 지지부진하고 상충되는 의견들은 흥미롭다. 바다 생물의 멸종과 어업에 관한 엇갈리는 입장들,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전한 기후 변화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위선. 몇몇 사람의 뒤 늦은 후회와 각성. 여성에 대한 폭력.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인간들은 시혜적인 입장으로 자연과 동식물들을 호명하는데 익숙하다. 기후 위기 한복판에서도 자연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 속에서 북극제비갈매기는 그들의 생존 본능 하나로 이주를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의 인물들은 이 작은 새에게 개입하지 않는다. (위치 추적기를 달기는 한다.) 그들을 따라가고, 지켜볼 뿐이다. 나일의 말처럼 변화된 환경에 동식물들을 적응시킬 것이 아니라 적응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인간이 하던 일(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여행, 더 많은 계발과 발전)을 하지 않을 때 기후 변화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멸종되는 건 인간 외 동물들만이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재로, 자의적으로. 그 사라짐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기술 만능 자본주의의 인간이란 종이 대거 이중 중인 세계는 살만한 곳인가? 이 거대한 이주 앞에 프래니와 선원들 같은 이들은 어디로 이주해야 할까. 이들에게 너무 큰 동질감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은? 북극제비갈매기는 언제까지 본능대로 이주하며 지구상에 머물 수 있을까.

책을 펴고 꼬박 밤을 새워 다 읽었다. 뒤가 궁금해서 덮을 수 없는 책. 그만큼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하지만 읽는 동안 자주 책을 덮고 쉬어야 했다. 프래니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세밀하고 설득력 있어 프래니의 마음에 자주 겹쳐지는 내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다 읽고 나니 아침 7시, 슬펐다. 첫 새가 발작적으로 첫 울음을 울고 난 뒤 집 앞 작은 동산의 새들이 이미 시끄럽게 아침 수다들을 나누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 아침에 저 청량한 지저귐을 들을 수 없다고. 상념 한 스푼 더. 그리고 오랫 동안 이 책을 책상 위 한편에 그대로 두었다. 마음이 아파서. 뭐라고 쓸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눈길이 가면 마음이... 그리고 오늘 다시 펼쳤다. 여전히 아프군. 수 없이 그어진 밑줄이 나에게 수없는 말을 걸어오는, 이미 친구가 된 프래니와 나일, 에스니, 샤무엘... 그리고 많은 이들. 그러니 나에겐 우정이 생긴 참 좋은 책이다. 인용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읽으실 분들을 위해 아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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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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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샬롯 맥커너히

서른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북극제비갈매기와 프래니에게,

에스니와, 사가니 호의 여섯 명의 선원

그리고 나일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바다에

흠뻑 빨려 들어간다.

왜 영화 제작사들이 이 책의 영화화 판권을

사기 위해 경쟁했는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클레어 포이가

왜 제작과 출연을

결심했는지 책장을 넘기며 알게 된다.

작가 샬롯 맥커너히의 데뷔작이라니.

문장들마다 어디에도 마음을 정박시킬 수 없는 고독한 사람들의 내면,

기후 위기, 해양학, 조류학, 그리고

루미, 바이런, 키츠, 마거릿 애티우드....

문학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린란드의 검푸른 바다,

희다 못해 파란 거대한 빙하들,

아일랜드의 푸른 벌판, 목화솜 같은 야생화들, 피오르 계곡..

나무집과 은빛으로 빛나는 돌담들..

무엇보다 인간의 지력으로는

끝내 도달할 수 없을

바다, 하늘, 대기, 청어 떼, 북극제비갈매기들의 경이로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프래니의 말처럼

독서는 실제로 떠나지 않으면서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처럼 프래니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한 문학의 약속이

이 책 ‘마이그레이션’으로 실현되가는 것을

경험 중이다.

현실을 벗어남은 회피가 아닌,

더 넓고 깊은 세계 속으로의 떠남이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이 책은

나를 호주로, 아일랜드로, 그린란드로,

북대서양으로 다시 캐나다로, 노르웨이로,

적도로 데리고 떠난다.

그 뿐인가? 프래니와 나일, 에스니, 사무엘,...

타인의 삶 속으로, 타인의 마음 안으로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저벅저벅 데리고 들어간다.

태풍을 막 지난

북극제비갈매기와 선원들의 여정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무사히 남극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한 근미래의 이 세계는?

조마조마하고, 기대되고, 안쓰럽고,

그럼에도 계속 응원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고

이렇게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인물들이고,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북극에서 여름을 보내고

다시 남극으로 이주하는,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인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따라서.

하지만 의지란 강력한 것이고,

내 의지는 끔찍하리만큼 강력했다.

P27

우리 인간이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의 리듬이다.

P32

엄마는 내게 단서를 찾으라고 말하고 했다.

"뭐에 대한 단서요?"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물었다.

"삶에 대한 단서. 곳곳에 숨어 있단다."

내 마지막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될 이 배까지.

P55

바다의 흐름과 겹겹이 쌓인 얼음들,

날개를 빼곡하게 수놓은 섬세한 깃털들,

나는 이토록 놀라운 것들이 가득한 삶에 지쳐 있지 않았다.

단지 나 스스로에게 지친 것 뿐이다.

P74

전속력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면 아래 깊숙이 잠수해 들어갔다.

이곳이 하늘이다.

소금기를 머금은 무중력의 하늘.

이곳에서 나는 날 수 있었다.

P83

특히 다른 무엇보다

새의 죽음에 대해 더욱 그랬다.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생명력 없이

쳐져 있는 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없었다.

P86

내 살갗을 그 깃털과 섞고

공기를 다시 그 폐에 불어 넣고 싶었다.

P87

바람이 갈매기의 깃털을 가득 채운 것처럼

남편이 그들의 용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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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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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하고, 아름답고, 아슬아슬하고, 아름답고, 아프고, 슬프고..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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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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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관한 감격

베르톨트 브레히트 /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브레히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

‘시에 안 좋은 시대’를 읽으며

구절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얼마나 여전히 유효한 시들인지.

얼마간의 조증을 장착하고 만면에 미소를 지며

기름지고 상쾌한 목소리로

형식적인 립서비스를 해야 모두를 안심시킬 수 있는,

그리고 뒤돌아 서서 각자 그 피로감을 안으로 삭혀야 하는,

그리고 다시 그늘진 얼굴들은 감추고 서로 외면해야하는 기괴한 세태.

주접 든 나무가 의미하는

초라하고 우울한 행색과 표정, 진실을 말하는 넋두리는

브레히트의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가장 환영받지 못한다.

그 주접과 우울이 안 좋은 토양, 나쁜 환경, 조건을 의미해도,

그것을 보려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무시하고 조롱한다.

브레히트의 눈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닻들보다는

찢어진 그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피로에 지친 마을 아낙의 안부가

궁금하다. 미래와 희망에 중독되어 정작 현재의 찢어진 그물은 돌볼 줄

모르는 시대에 대한 비애가 묻어난다.

브레히트도 꽃을 피우는 사과 나무에 대한 사랑을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싶다.

그것이 사랑이고, 운율에 맞춰 쓰여 진다면 어떤 것이라고 노래가 되지 못할까.

하지만 그에게 사랑은, 운율은, 리듬은...

서정을, 낭만을 노래함은 아직은, 사치다.

현실은 딱딱하고 메말라 융통성을 앗아가고, 자주 끊어지고, 서로 고립된다.

그는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애정은 묻어둔 채,

안 좋은 토양의 주인인 페인트공(히틀러를 의미)을

고발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누군가는 브레히트를 극작가로, 누군가는 시인으로 기억하고 편애할 것이다.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에게 이 시집은 반가운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 속에는 극작가 브레히트가 살아있다.

특히 장시들은 바로 무대 위에 올리면 한편의 연극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현실의 단면들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가 시집이라는 종이로 만든 연극 무대에 상연하는 현실들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과 그리 겹쳐지는지.

100년 전 시인이 띄운 편지를 받아보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서정시를 쓰고 싶으나 쓸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브레히트의 비애와 분노.

동시에 그런 시대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이 시집에는 시인의 그 마음들이 담겼다.

계절을 찬미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서정시를 읊을 수 있는 시대.

그런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시대를 만들 위해

시인은 주접 든 나무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 시집은 꽃이 피는 사과나무를 욕망하지만

병든 토양을 고발하기 위해

스스로 주접 든 나무가 된 이가 보내는

과거에서 보내졌지만,

현재를 울리는,

미래에는 필요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되는,

많은 이들의 비통함, 한숨, 눈물, 땀으로

얼룩진 한통의 간곡한 편지다.


시에 안 좋은 시대

물론 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얼굴은 밝다.

뜰에 있는 주접 든 나무가

안 좋은 토양을 암시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접 들었다고 놀린다.

그럴 만도 하다.

해협의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돛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어부의 찢긴 그물만 보인다.

나는 어찌하여

구부정하게 걷는 마흔 살의

마을 아낙네 이야기만 하는가?

처녀의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뜻하거늘.

내가 운율에 맞는 노래를 쓴다면

마치 들떠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마음속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공이 연설을 하는 소름 돋는 광경이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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