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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평점 :
마이그레이션 / 샬롯 맥커너히
서른 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북극제비갈매기와 프래니에게,
에스니와, 사가니 호의 여섯 명의 선원
그리고 나일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으로 꿈틀거리는 바다에
흠뻑 빨려 들어간다.
왜 영화 제작사들이 이 책의 영화화 판권을
사기 위해 경쟁했는지,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클레어 포이가
왜 제작과 출연을
결심했는지 책장을 넘기며 알게 된다.
작가 샬롯 맥커너히의 데뷔작이라니.
문장들마다 어디에도 마음을 정박시킬 수 없는 고독한 사람들의 내면,
기후 위기, 해양학, 조류학, 그리고
루미, 바이런, 키츠, 마거릿 애티우드....
문학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린란드의 검푸른 바다,
희다 못해 파란 거대한 빙하들,
아일랜드의 푸른 벌판, 목화솜 같은 야생화들, 피오르 계곡..
나무집과 은빛으로 빛나는 돌담들..
무엇보다 인간의 지력으로는
끝내 도달할 수 없을
바다, 하늘, 대기, 청어 떼, 북극제비갈매기들의 경이로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프래니의 말처럼
독서는 실제로 떠나지 않으면서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이처럼 프래니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한 문학의 약속이
이 책 ‘마이그레이션’으로 실현되가는 것을
경험 중이다.
현실을 벗어남은 회피가 아닌,
더 넓고 깊은 세계 속으로의 떠남이다.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이 책은
나를 호주로, 아일랜드로, 그린란드로,
북대서양으로 다시 캐나다로, 노르웨이로,
적도로 데리고 떠난다.
그 뿐인가? 프래니와 나일, 에스니, 사무엘,...
타인의 삶 속으로, 타인의 마음 안으로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저벅저벅 데리고 들어간다.
태풍을 막 지난
북극제비갈매기와 선원들의 여정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무사히 남극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동물이 멸종한 근미래의 이 세계는?
조마조마하고, 기대되고, 안쓰럽고,
그럼에도 계속 응원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고
이렇게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인물들이고,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북극에서 여름을 보내고
다시 남극으로 이주하는,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인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따라서.
하지만 의지란 강력한 것이고,
내 의지는 끔찍하리만큼 강력했다.
P27
우리 인간이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의 리듬이다.
P32
엄마는 내게 단서를 찾으라고 말하고 했다.
"뭐에 대한 단서요?"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물었다.
"삶에 대한 단서. 곳곳에 숨어 있단다."
내 마지막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될 이 배까지.
P55
바다의 흐름과 겹겹이 쌓인 얼음들,
날개를 빼곡하게 수놓은 섬세한 깃털들,
나는 이토록 놀라운 것들이 가득한 삶에 지쳐 있지 않았다.
단지 나 스스로에게 지친 것 뿐이다.
P74
전속력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면 아래 깊숙이 잠수해 들어갔다.
이곳이 하늘이다.
소금기를 머금은 무중력의 하늘.
이곳에서 나는 날 수 있었다.
P83
특히 다른 무엇보다
새의 죽음에 대해 더욱 그랬다.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생명력 없이
쳐져 있는 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없었다.
P86
내 살갗을 그 깃털과 섞고
공기를 다시 그 폐에 불어 넣고 싶었다.
P87
바람이 갈매기의 깃털을 가득 채운 것처럼
남편이 그들의 용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도록.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