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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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관한 감격

베르톨트 브레히트 /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브레히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

‘시에 안 좋은 시대’를 읽으며

구절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얼마나 여전히 유효한 시들인지.

얼마간의 조증을 장착하고 만면에 미소를 지며

기름지고 상쾌한 목소리로

형식적인 립서비스를 해야 모두를 안심시킬 수 있는,

그리고 뒤돌아 서서 각자 그 피로감을 안으로 삭혀야 하는,

그리고 다시 그늘진 얼굴들은 감추고 서로 외면해야하는 기괴한 세태.

주접 든 나무가 의미하는

초라하고 우울한 행색과 표정, 진실을 말하는 넋두리는

브레히트의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가장 환영받지 못한다.

그 주접과 우울이 안 좋은 토양, 나쁜 환경, 조건을 의미해도,

그것을 보려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무시하고 조롱한다.

브레히트의 눈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닻들보다는

찢어진 그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는 피로에 지친 마을 아낙의 안부가

궁금하다. 미래와 희망에 중독되어 정작 현재의 찢어진 그물은 돌볼 줄

모르는 시대에 대한 비애가 묻어난다.

브레히트도 꽃을 피우는 사과 나무에 대한 사랑을 운율에 맞춰 노래하고 싶다.

그것이 사랑이고, 운율에 맞춰 쓰여 진다면 어떤 것이라고 노래가 되지 못할까.

하지만 그에게 사랑은, 운율은, 리듬은...

서정을, 낭만을 노래함은 아직은, 사치다.

현실은 딱딱하고 메말라 융통성을 앗아가고, 자주 끊어지고, 서로 고립된다.

그는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애정은 묻어둔 채,

안 좋은 토양의 주인인 페인트공(히틀러를 의미)을

고발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누군가는 브레히트를 극작가로, 누군가는 시인으로 기억하고 편애할 것이다.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에게 이 시집은 반가운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 속에는 극작가 브레히트가 살아있다.

특히 장시들은 바로 무대 위에 올리면 한편의 연극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현실의 단면들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가 시집이라는 종이로 만든 연극 무대에 상연하는 현실들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과 그리 겹쳐지는지.

100년 전 시인이 띄운 편지를 받아보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서정시를 쓰고 싶으나 쓸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브레히트의 비애와 분노.

동시에 그런 시대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이 시집에는 시인의 그 마음들이 담겼다.

계절을 찬미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서정시를 읊을 수 있는 시대.

그런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시대를 만들 위해

시인은 주접 든 나무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 시집은 꽃이 피는 사과나무를 욕망하지만

병든 토양을 고발하기 위해

스스로 주접 든 나무가 된 이가 보내는

과거에서 보내졌지만,

현재를 울리는,

미래에는 필요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되는,

많은 이들의 비통함, 한숨, 눈물, 땀으로

얼룩진 한통의 간곡한 편지다.


시에 안 좋은 시대

물론 안다. 행복한 사람만이

인기 있다는 걸, 그런 사람의 목소리는

듣기 좋다, 얼굴은 밝다.

뜰에 있는 주접 든 나무가

안 좋은 토양을 암시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접 들었다고 놀린다.

그럴 만도 하다.

해협의 초록색 배들과 펄럭이는 돛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어부의 찢긴 그물만 보인다.

나는 어찌하여

구부정하게 걷는 마흔 살의

마을 아낙네 이야기만 하는가?

처녀의 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뜻하거늘.

내가 운율에 맞는 노래를 쓴다면

마치 들떠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마음속에 서로 다투는 것이 둘 있으니, 그것은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과

페인트공이 연설을 하는 소름 돋는 광경이다.

하지만 후자만이

나를 책상으로 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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