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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속의 유령 ㅣ 암실문고
데리언 니 그리파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평점 :
목구멍 속의 유령 / 데리언 니 그리파 / 서제인 / 암실문고
재생산과 모성은 여성의 본질적 속성이다? 이 명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여성이 지속적인 재생산의 욕구를 가진다고 해서, 그 욕구가 타인에 의해 의심되거나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책 “목구멍 속의 유령” 저자인 ‘데리언 니 그리파’의 목소리가 투영된 “나”는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아들을 셋 낳고, 이 책을 쓰는 동안 딸을 낳고, 남편이 정관 수술을 하기 전까지, 또 다른 출산을 욕망한다.
벌들, 윙윙거리는 벌떼들. 책의 마지막, “나”가 이사한 새 집 정원에 다채로운 꽃을 심어 벌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먹이듯, 그녀는 생명을 잉태하고,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자신의 쾌락에 충직하다. 파트너에 대한 욕망도 숨기지 않는다. 욕망, 출산, 수유, 양육으로 이어지는 “나”의 삶. 이 반복, 이 순환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당신은 자신을 던져 버리죠...” (23P, U2의 노래, With or Without You)
11살의 소녀를 놔주지 않았던 저 노래 가사처럼, “나”는 “나”를 이끄는 것들에 나를 던져 버린다. 누군가는 시대착오적이라 비평할지도 모르는 지속적인 출산과 양육. 그녀는 그 반복에 몸을 담근다. 그렇게 정해진 매뉴얼대로 흘러가는 바쁜 일상. “나”는 “나” 자신조차 해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열망으로 200년 전 쓰여진 아일랜드의 시 한편, 그리고 그 시를 쓴 아일린 더브 니 호널이라는 여성에게 사로잡힌다.
누군가의 삶 안으로 들어가기. 그것은 불가능한 목표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무모한 일을 뛰어든다. “나”가 그렇다. 아이를 임신하듯, “나”는 아일린 더브의 생이 자라날 공간을 “나” 속에 늘려간다.
1773년 어느 화창한 날, 아일린 더브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는다. 그리고 그 애통함과 그리움, 쏟을 길 없는 남겨진 남겨진 사랑을 “아트 울리어리를 위한 애가”라는 시 한편에 남긴다.
“몰두를 통해 나는 그의 생각이 방향을 바꾸는 독특한 방식을 발견했고, 또 그의 언어 속에서 뛰는 맥박을 감지했다. 그렇게 나는 아일린 더브와 천천히 친밀해졌다” 60P
영아에서 유아로 딸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아직 작은 소년들일 뿐인 아들들이 자라는 동안, “나”는 아일린 더브가 살았던 장소들, 그의 부모, 그의 쌍둥이 자매, 그의 남편 아트 올리어, 그리고 그의 아들들, 손자들의 삶을 추적해 간다. 스스로도 이해시킬 수 없는 집요함으로, 식힐 수 없는 열망으로 자신을 던진다.
“나는 내가 아일린 더브의 작품에서 가장 소중하게 요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 내가 좋아하는 그 요소는 텍스트 너머에서, 연과 연 사이의 공백에서, 번역할 수 없는 곳에서 맴돌았다. 그 공백에 난 계단 위에 서면 한 여자의 숨결을, 여전히 남아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61P
아일린 더브의 시 사이에서 여전히 숨쉬고 있는 시인의 숨결, “나”는 그 숨결을 느끼며, 동시에 “나”의 한숨들을 그 숨결 속에 섞는다. 숨결들, 시의 행간에 녹아드는 구분할 수 없는 시인과 “나”의 숨결들. 자신의 욕망을 안다고 여기고, 그것에 충실하고자 하는 “나”는 이 행간에서 거할 곳을 찾는다. 번역 할 수 없는 곳, 공백, 텍스트 너머란 바로 “나”의 숨겨진 방을 역설한다. “나” 안에서 번역되지 못하여, 발화되지 않는 이야기들.
"나는 이 여성을 누군가의 고모와 아내로, 남자들의 그림자에 가려진 빈약한 역할로 그려 내던 둔감하고 짧은 글들을 다시금 떠올린다. 아일린 더브가 자신이 알고 지내던 여자들의 관점에서 그려졌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104P)
“나”의 추적으로 드러나는 아일린 더브의 얇은 삶의 막들 위로 “나”의 과거, 현재들이 겹쳐진다. 가족을 버리고 남편을 선택하는 아일린 더브의 욕망, 해부학실에 놓여있던 시체들, 그 시체들의 장기들, 남편을 잃은 아일린 더브의 절망, 딸 아이의 탄생과 아이의 취약함, 수유, 육아, 사고의 목격, 방들을 삼켜버린 수몰, 육체의 이상 증후들. “나”는 아일린 더브의 욕망과 출산, 상실을 따라가며 “나는 내 딸 안에 어떤 어둠을 심어 놓게 될까, 나는 궁금해 한다.” (172P) 왜냐하면 “과거는 우리에게 자신이 맞이했던 결말을 계속 말해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맨 처음 내가 차에서 뛰어나간 건 나 자신을 던져 버리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219P)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욕망은 내가 가속하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225P)
“나 자신이 그토록 쓸모 있는 존재라는 느낌 속에는 일종의 즐거움이 남아 있다” (278P)
“나 자신을 다른 누군가에게 내던지는 의식은 너무도 달콤하니까. 나는 나 자신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280P)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281P)
“나”는 이렇게 변주해 말한다. 타인에게 나를 던져 나를 무화시키는 일의 달콤한 쾌락. “나”는 이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자기 소멸이 잉태하는 생명들, 사건들, 삶들, 그것들의 소멸, 상실. 반복되는 이 세계의 거대한 율동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주는 “쾌락”
"우리는 우리가 내 놓은 메아리가 누구의 입을 통해 퍼져 나갈지 알지 못한다. 아일린 더브의 목소리를 반사해 우리 속으로 울려 퍼뜨린 사람은 노리였다. 그는 하나의 표면이자 진앙지였다.” (253P)
“나”의 일관된 투혼은 타인이나 사건에 나를 던져버리기, 타인의 목소리가 되어주기이다. 타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비명의 공명판이 되기로 기꺼이 결심하기. 그리하여 수몰된 누군가의 과거를 홍수 같은 구름으로 형상화하기로 결심하기.
“어쩌면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내 몸 바로 저편에서 들려오는 한결같은 콧노래를, 꿀벌만큼이나 진짜처럼 느껴지는 그 노래를 듣고 있었으니까. - 중략 - 그러니 그때 내가 확실히 알았던 건 하나뿐이다. 그곳이, 함께 모인 것들이 외쳐 대던 그 메아리 속이 안전하게 느껴졌다는 것” (282P)
탄생과 죽음의 이야기들, 메아리들. 반복되어 울리는 이 이야기들이 삶을 이루고, 세계를 지속시킨다. 꽃밭을 찾아드는 벌떼들처럼 분주히 야단스럽게 욕구하며 세계는 일렁인다. 이야기들의 복원,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서 누락된 인물과 또 다른 이야기들. 그를 사로잡는 것은 이렇게 이 세계를 지속시키는 욕망들과, 그것들의 흥망성쇠, 그 거대한 순환의 반복이다.
목구멍 속의 유령은, 욕망하는 여성이다. 연인을 욕망하는 여성이며, 생명을 욕망하는 여성이며, 세계의 지속을 욕망하는 여성이다. 따라서 그 유령은 연인의 상실로 비탄에 빠진 여성이며, 세계의 사라짐을 두려워하는 여성이다. 그래서 결국 목구멍 속의 유령은 “나”에게 정원을, 벌떼들이 날아들어 떠나지 않을 정원을 가꾸도록 만든다.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을 살리라고 속삭인다. 벌떼와 작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 수 있는 세계를 가꾸라고. 나는 목구멍 속의 여성들의 비명에 따른다. “나”의 몸 저편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에 나를 내어준다.
“모음으로 된 그 비명은 결국 잦아들고, 소리는 말들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고, 그 말들은 어째선지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그렇게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그 모든 여성의 목소리는 하나의 커다란 합창으로 변한다. 모두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고, 모두가 이 순간의 고통을 말하면서 그 오래된 말들의 황홀경 속을 맴돈다. 어떤 마법 같은 힘이 이 내밀한 순간을 공적인 것으로 만든다” (200P)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읽고, 사적으로 기록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