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노동 - 산업혁명부터 데이팅 앱까지, 데이트의 사회문화사 Philos Feminism 11
모이라 와이글 지음, 김현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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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돌봄은 천연자원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결과로 여성의 노동은 계산에 반영되지 않는다.”p30

 

재생산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여성의 본성이라는 이와 같은 허구는, 여성에게 막대한 중압감을 안긴다. 그리고 많은 여성을 옥죈다.”p386

 

 

신랑(?) 밥은? 애들 요즘 시험기간 아니야? 요점은 너는 지금 네 몫의 노동을 하지 않고 밖에 나와 있다는 의미다. 남성들은 평생 들을 일 없는 질문들이다. 살림과 양육, 재생산 노동은 여성의 책임이다. 왜냐고? 정상적이고, 좋은 엄마라면 가족들을 사랑하니까.’ 정상성과 도덕, 애정의 진위까지. 삼중의 구속이 여성을 억누른다. 내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나쁜 배우자, 양육자인가. 자체 검열에 들어간다. 노동은 사회적 정상성의 기준, 그리고 감정의 정동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필로스 시리즈 신간 <사랑은 노동>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해 보이는 감정과 사회경제적 동인으로 기획되고, 거래되는 노동이 만나는 접점들을 미국 현대사와 문화사를 통해 분석한다. 미국을 배경으로 연구가 진행됐지만, 한국의 현실도 여실하게 투영된다. 정치경제, 기술, 대중문화가 하나의 리듬으로 출렁이며 급변하는 세계이니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지닌 현실감은 자연스럽다.

 

 

데이팅의 구조에 깊이 내재한 거래 논리는, 사랑을 남들과 경쟁해서 얻는 어떤 것으로 바라보도록 부추긴다.” p426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은 없다. - 중략 - 하지만 우리 문화는 노동과 사랑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동도 사랑도 평가절하한다.” p17

 

하버드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저자 모이라 와이글이 이 책을 쓴 동기가 읽히는 문장들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구조를 영속하기 위해 사랑과 노동을 왜곡시키고, 비틀고, 쥐어짠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탁해 만들어내는 사랑에 관한 이미지들은 정상성이라는 명령어로 개인들을 특정 역할과 노동의 실천으로 몰아간다. 시즌별로 갱신되는 사랑의 이미지 속에서 실속을 차리는 것은 언제나 권리로 무장한 가부장들, 거대한 플랫폼들과 소비시장을 소유한 자본들이다.

 

"사랑을 수행하는 방식을 우리가 마음대로 이끌어 갈 자유가 있을 때, 노동은 골칫거리가 아니다." p428

 

모이라 와이글은 사랑과 노동의 가치를 되찾아 오기 위해 사랑의 역사, 데이트의 사회 문화사를 써내려간다. 산업 혁명기부터 데이팅 앱의 대중화까지 데이트의 변천사는 실로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지리멸렬할 정도로 일관되다. 그것은 젠더 이분법에 기초한 불평등과 차별이다. 차별과 폭력을 은폐하고, 유포하는 기술과 화법이 더욱 세련되어지고, 기만적으로 변해왔을 뿐이다.

 

 

욕망이 거래되는 장면을 포착한 속임수’, 가용자원으로서 취향을 분석한 애호’, 데이트의 대중화와 직결되는 공간으로서 ’, 욕망의 교환(훅업) 장소였던 학교’, 장기 투자로서 선호된 오래 사귀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포된 평등이 어떻게 여성에게 재갈이 됐는지 묻는 자유’, 비지니스가 된 데이트를 파헤치는 틈새 시장’, 데이트 쇼핑을 위해 소비자가 지켜야 할 소통 규약’,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압력을 파고드는 계획’, 감정노동의 메뉴얼로 여성을 비인간화시키는 사회문화적 명령으로서 조언’. 모이라 와이글은 이렇게 열 개의 키워드로 데이트의 변천사 속에서 개인들이 수행한 역할, 노동을 분석한다.

 

 

이제 사람들은 연애의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하고 가벼운 성관계의 낮은 위험부담과 낮은 투자비용운운하며 스스로를 포지셔닝 해 낭만적 관계의 선택지를 최적화하려고 씨름한다.”p40

 

이 최적화 방법으로 와이글이 가져온 구체적 사례들에 끄덕이게 된다. 와이글은 상품과 서비스가 된 사랑과 노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태들을 분석한다. 영화, 음악, 드라마, 매거진 등 대중 문화는 자본화된 욕망을 반영한다. 저자의 분석은 탁월하다. 한 시절을 함께한 너무도 친숙한 영화, 팝송, 드라마들이 호명되고, 발가벗겨진다. 너무도 흥미롭다.

 

기후 위기, 심화되는 양극화, 구조적 장기 침체, 불안정한 노동, 사회적 불안. 와이글은 미국의 정치경제 현실의 렌즈로 욕망의 변천사를 들여다본다. 2016년 출간된 이 책에서 와이글이 묘사하는 당시 미국 노동자 계층의 현실(시간제 노동, 프리랜서, 긱 노동, 투잡과 쓰리잡)은 지금 우리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그런 현실에서 개인들이 사랑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또는 포기하는 모습도 또한 유사하다.

 

개인의 욕망 실현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다. 하지만 개인의 범주는 늘 문제적이다. 사회경제적 소수자들은 여전히 개인의 범주에서 자주 탈락된다. 와이글은 이렇게 기울어진 세계에서 소수자들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노동을, 역할을 수행해왔는지도 또한 탐색한다.

 

젠더화 된 노동 분업은 여성을 정서적 과로 상태, 남성을 정서적 무능 상태로 만든다.”p146

여성은 사랑을 위해 성관계를, 남성은 성관계를 위해 사랑을 교환한다.”p410

 

이 책은 우리가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정치경제적 구조에 의해 설계되고, 주입되는 경로를 잘 보여준다. 와이글은 감정이 자원화 되어 관리되고 거래되는 무수한 장면들에 주목한다. 이 장면들에서 여전히 여성들은 더 취약하고, 더 착취당하고, 더 기만당하고, 더 소진된다. (8장 자유, 9장 계획, 10장 조언은 한숨과 분노로 눈을 뗄 수 없다.)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 사랑은 노동이다. 어떻게 이 문장을 부정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밥을 짓는 것은 노동이다.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취향을 관리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도 노동이다. 환전 가능한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노동이다.

 

빛에 따라 다양하게 발색하는 매혹적인 핑크색 책 표지에 이끌린 나의 선택은 현명했다. 로맨틱한 핑크색을 정중앙에서 날렵하게 가르는 쟁기를 닮은 대문자 L의 존재를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린 나는 우둔했다. Love(사랑)Labor(노동)는 떼려야 땔 수 없다. 사랑이 곧 노동이며, 노동이 곧 사랑이다. L, 사랑은, 노동은 굳은 대지를 깨부순다. 악습을 깨부순다. 협소한 자아를 깨부순다. 우리는 이렇게 창조적인 사랑과 노동의 의미를 재인식할 수 있을까. 그 가치들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얼마 전 여성은 소유물이다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중인 텍사스 주립대 남학생의 사진이 SNS에 공유됐다. 개인의 일탈이라기엔 최근 몇 년 국내외 분위기가 너무도 증후적이다. (여기에 쓰기도 어려운 최근 기사까지 생각하니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사랑?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노동해야 할까.

 

정희진 선생은 이 책을 사랑에 대한 최고의 교과서라고 평했다. 좋은 교과서는 문장을 낭비하지 않는다. 모든 장에 대해 할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여성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특히 후배나 딸에게는 이 책을 꼭 선물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성들이 깨닫고, 재확인해야 할 여성들의 위치, 조건, 상황들을 이 책은 상세하게 탐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아니 절실한 분석과 통찰이이다.


(여성들이여, 더 정신 차리자. 제발 정신 똑바로 붙잡고 살자. 이 책에 관해, 와이글이 시작한 대화에 응답해, 하고 싶은 말은 넘치지만, 일단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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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노동 - 산업혁명부터 데이팅 앱까지, 데이트의 사회문화사 Philos Feminism 11
모이라 와이글 지음, 김현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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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정상성’이란 허울은 여성의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에 의해 작동되고 유지된다. 여성의 노동이 ‘사랑’이란 철갑의 외피를 쓰는 순간 노동으로서의 모든 쟁점과 논쟁들이 일순에 음소거 된다. 그 첫 번째 도미노 조각이 연애, 즉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수사 아래 숨겨진 교환과 거래의 원리는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자본의 기획 아래 더욱 치밀해지고 세련되어져 왔다. 유혹, 데이트, 결혼. 이 간단해 보이는 삼단 계단 사이마다 무수한 정치적 기제와 변인들이 존재해왔다. 지금도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현상의 이면에는 복잡한 사회경제적 맥락들이 작용 중이다.

가부장제를 움직이는 사랑이라는 진실, 혹은 환영, 혹은 분열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철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이 책을 통해 공부해 볼 계획이다. 아르테 출판사의 필로스 페미니즘 시리즈 전편 ‘자본의 성별’을 통해 여성의 물적 토대의 취약성을 여실히 확인했다. 이 책은 그 취약성의 근본적인 바탕, 가부장제 사회의 두터운 베일 ,사랑의 민낯과 구조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몹시 기대된다.

(이 필로스 시리즈 중 하나인 다크룸은 내 2024년 올해의 책 중에 하나다. 정말 수전 팔루디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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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저항이다 - 시스템은 우리를 가질 수 없다
트리샤 허시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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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 이 네 글자는 처음 본 이후(아마도 중학교 교과서이지 않을까)부터 지금까지 내게는 난센스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데!, 혹시 내가 안 보이나? 뭘 실현하라는 거지?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건가?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야 내가 나라는 말인가. 실현하지 않으면 나는 없는 건가. 이상하게도 아직도 가끔 저 글자들이 불쑥불쑥 머리에 떠오른다.

자아실현에서 발아된 흑마술은 노력, 인내, 극기, 극복, 도전, 경쟁, 자기계발, 성취, 성공이라는 주문들로 자본주의의 폭력과 모순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한다. 주문에 마취된 개인들은 열심히 자기를 채굴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본주의는 저항과 파괴에 직면해야 한다. 우리의 시간과 능력을 끊임없이 탈취하는 전 지구적인 폭력이다. 교정이 불가능하며, 언제나 신성한 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사악한 힘으로 작용해왔다.” p146

<저항은 휴식이다>의 저자 트리샤 허시의 진단이다. 너무 과격한가? 나의 어떤 시간들, 어떤 이름들, 어떤 얼굴들, 어떤 기사들이 떠오른다. 저 문장들은 과격하지 않다. 허시는 이 책에서 ‘과로 사회’와 그 원인인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갈아 넣는다’, ‘영혼까지 털린다.’는 말이 일상어로 쓰이는 한국 사회에서 허시의 자본주의에 관한 문장들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휴식은 저항이다”는 허시의 정치적 선언이다. 이 선언은 유구한 자본주의 착취로부터 해방되어 소진된 삶과 해체된 공동체를 복원하고, 우리 육체와 영혼의 신성성을 회복할 것을 지향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허쉬는 휴식을 탐구하고 공동체를 꾸리는 단체 ‘낮잠 사역단’을 창립하고, ‘낮잠의 주교’로서 휴식을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활동 중이다.

“나에게 진정한 해방이란 끊임없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면서 할 일 목록에 오른 일들을 지워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었다.” p88 ‘존재 함’ 자체로 존중 받는 것. 허시가 생각하는 해방의 정의다. 허시는 과로 문화의 속도와 지속불가능성을 인식하는 정신적 전환이 휴식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휴식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과로문화에 대한 대항 서사로서 휴식이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가차 없고 지속적이며 전복적, 의식적인 전 지구적 사고의 전환”p73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는 쉬는 법을 모르고 과로 문화의 독성에 노출된 채 휴식을 이해해왔다. 우리는 휴식이 사치이자 특권이며, 탈진과 수면부족으로 시달린 후에야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는 특별조치라고 믿는다.” p70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수면 부족, 피로, 단절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온전하고 풍부하게 누리기를 원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대상을 극구 칭송한다.”p94 허시는 휴식을 보상으로 인식시키고, 피로를 소비와 중독으로 해결하게 하는 과로 문화를 직시한다. 특히 계급, 인종, 젠더,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들은 이 과로문화에서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p88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는 점을 허시는 놓치지 않는다. 더불어 그는 피로 문화가 야기하는 개인의 몸과 정신의 소진이 어떻게 공동체 파괴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허시에게 휴식은 해방의 도구이며, 몸과 마음은 무한한 지혜의 공간이다. 그는 “과로는 우리를 트라우마의 순환 고리에 붙들어두지만 휴식은 그 고리를 헤집고 뒤집는다.”p89라고 말한다. 휴식은 몸과 마음을 연결시킨다. 이 연결은 자본주의가 주입해온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다주며, 해방의 출구를 찾아갈 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용기를 되살린다. 이는 우리를 제3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휴식은 발명, 상상, 회복을 위한 현실을 뒤흔들며 공간을 만들어낸다. 휴식은 그저 존재할 공간을 만들어주기에 상상의 도구이다.”p161 휴식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문화적 전환이며 탈식민화이다. 급진적인 휴식은 제3의 공간을 만드는 정치적 운동이다. ‘낮잠 사역단’이라는 집단적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흑인은 자본주의의 잔인성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몸은 미국이 가진 최초의 자본이었고, 그로 인해 휴식과 꿈의 공간을 끊임없이 탈취 당했다.”p81 “나는 미국 도망노예의 능력에서 영감을 얻은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면서 휴식을 재상상한다는 개념을 발굴했다. - 중략 - 그들은 달아난 것이 아니라 노예 역할을 거부하고 플랜테이션 농장을 집으로 삼지 않기로 했을 뿐이다. 내가 꾸준히 과로문화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며 스스로를 바라본 방식과도 직결되는 태도이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맹렬히 기세를 떨치는 지금 당장 휴식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다를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허시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과 해방에 관한 영감을 준 건은 역사이다. ("역사는 낮잠 사역단의 대단히 중요한 기반이다."p110) 흑인노예역사를 자세히 알게 된 후 허시는 그 앎이 준 슬픔이 영원히 자신의 몸에 새겨졌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준 것은 슬픔 이상의 것들이다. 조상들의 유산은 허시를 살게 했고, 상상하게 했고, 창조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더불어 살도록 했다. 허시 철학의 출생지, 정치적 실천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 사실들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나에게도 소중한 앎의 기회를 주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허시의 전복적 사유가 시작된 이 출발점들이다. 2024년 11월 6일 이후니까, 더욱.


휴식과 치유를 말하는 책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꺽이고, 베이고, 움추린, 식은 마음들을 다독여 주는 고마운 책들이다. 그 책들의 많은 진단과 처방은 사적이다. 또한 많은 책들이 사적 트라우마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은 곱게 접어 보이지 않는 곳에 간직해 둔다.


트리샤 허시의 <휴식은 저항이다>는 다르다. 허시는 많은 치유서 저자들이 고이 접어 한쪽에 얌전하게 치워 둔 역사와 체제, 구조에서 휴식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시는 개인이 역사와 정치의 후손들임을 정확히 인식한다. 20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를 가진 우리 몸과 정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휴식의 실종, 휴식의 정의, 휴식이 필요한 이유(세상에! 휴식의 이유를 재정의하고, 재탈환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휴식의 방법, 휴식이 가져오는 무궁한 가능성들까지 모두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다. 이 책은 휴식에 관한 이런 재발견들로 넘실거린다. 그러니 이 책은 휴식에 관한 철학서, 정치론, 명상록, 전략서, 수행서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모 카드 회사의 유명한 카피문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쉼은 조건이 붙는다. 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휴식은 죄책감과 불편함을 동반한다. 자본이 허락한 휴식이라야 온전하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과 하모니를 이룬다. 역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늘 함께이다.)


스파, 요가, 명상, 리조트, 휴양림의 광고들은 하나 같이 모두 쉼과 치유를 약속한다. 야무지게 값을 매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휴식을 ‘각오’한 개인은 꼼꼼하게 계획하고, 살뜰하게 휴식을 ‘노동’하고 ‘소비’하고 돌아온다. 휴식마저 이미 자본에게 넘어갔다.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호기심, 주의력, 시간, 마음까지 그야말로 참깨처럼 털린 시대에 휴식이라고 침범 불가의 성역일까... 라는 냉소야말로 고이 접어두자. 이 책은 ‘휴식’이야말로 우리가 끝가지 사수해야할 성소라고 말한다. 허쉬가 말하는 그 이유들에 나는 절절하게 공감한다. 허쉬의 강령대로 자본주의의 틈을 파고들어 제3의 공간으로 나는 매 순간, 매일, 있는 힘껏 탈주할 것이다. 일단 , 허쉬의 제안처럼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닌 하지 않을 일 목록을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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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저항이다 - 시스템은 우리를 가질 수 없다
트리샤 허시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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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저항이다> 와독(?) 전용 돋보기를 쓰고 옆으로 누워 책장을 넘기니 이런 말이 나를 맞이한다. “이 책은 누워서 읽기를 바랍니다!” 어떤 저자도 지금까지 나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준 적이 없다. 이 말을 전하는 글씨까지 나를 마주보며 누워있다. 이렇게 다정할 수가!

 

열린 창으로 산들바람이 달콤한 노래를 부르며 불어올 , 바로 낮잠을 잘 때이다. 할머니는 현관에 앉아 있고 할아버지는 잔디를 깎는다.” p12 추천의 말을 읽자 마음이 물속의 잉크처럼 풀어진다. 추천사는 이어진다.

 

인간답게 존재한다는 아름다운 실험에 몸을 맡긴다.”p12,

"저자는 마치 고통 받는 우리를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조상들의 목소리처럼, 자신이 걷는 길에 함께하자고 우리를 초대한다.“p13

"<휴식은 저항이다>는 그저 한권의 책이 아니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개입이다.”p14

"저자의 거센 외침은 휴가를 보내야 한다고 호소하는 수준을 넘어 포획의 정치에 붙들린 우리를 구출하고자 정교하게 짜낸 주문과 다름없다.” p15

"이 책에서 허시는 휴식을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치유와 상상력의 관문으로 삼는 해방의 자장가를 들려준다. 더 깊이 호흡하며 세상을 더 선명히 바라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책을 펼쳐보자”p15

 

마음이 뜨끈해진다. 추천사로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다니. 이 책을 소개하는 이들의 절실함이 문장들로 뜨겁게 전해진다. 그만큼 이 책이 많은 이에게 공감과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겠다.

 

저자 트리샤 허시는 미국의 시인, 공연 예술가, 신학자, 공동체 조직가이다. 그리고 낮잠사역단낮잠의 주교이다. 세상에 나와 처음 들어보는 사역단이며 소임이다. 동시에 세상에 나와 처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런 신성하기 그지없는 교단이 이제야 생긴 거야? 인류에게 가장 절실한 소명이잖아! 낮잠 자기!!’

 

나는 쉬었기에 살아남았다.” 서문을 여는 허시의 문장이다. 너무도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서 가슴을 친다. 무슨 긴 말이 필요할까. 많은 이들이, 다음이 아닌 바로 지금 쉬지 못해 아프다, 몸과, 정신이. ‘다음이란 말처럼 무용하고 무력한, 슬픈 말이 있을까. “나는 쉬었기에 살아남았다쉬이 잊지 못할 말이다.

 

버티기와 견디기, 힘내기가 덕담과 자기주문이 된 사회는 병든 사회다. 저자 트리샤 허시는 이 책을 우리 조상들로부터 탈취해간 노동력과 꿈의 공간에 여전히 빚지고 있는 체제에 내 몸을 바치기를 거부한다는 선언이자 서약이다."p19라고 말한다. “급진적 회복을 위한 거부와 저항으로서의 휴식. ‘낮잠사역단의 교리를 베개로 베고, 삶을 탐색할 수 있는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허시의 해방의 자장가가 열린 창의 산들바람처럼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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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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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변부는 우리에게 늘 불가사의한 무력함을 안겨주므로.”p47 는 단편 ‘녹색 아이들’의 마지막 문장이다. 화자인 폴란드 국왕 주치의는 우크라이나 서부에 볼히니아 숲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피부가 녹색인 두 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이 아이들의 존재와 이 아이들이 떠나온 미지의 세계는 그야말로 낯설고 기이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야기의 기묘한 허구성을 현실에 대한 의심으로 전도시킨다.

현실은 얼마나 불투명한가. 중심은 얼마나 허구적인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단편집 <기이한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익숙함에 질문을 던지도록 집요하게 독자를 몰아간다. 현실의 허구성은 비현실적인 것을 통해 드러난다. 중심의 기만성은 주변주의 생생함을 통해 누설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무지는 우리의 앎을 통해 밝혀진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카르추크의 국내 최초의 단편집 <기이한 이야기>는 놀랍도록 기이한, 놀랍도록 예민한 장소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낯선 장소는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세계(승객, 병조림, 실화, 솔기, 모든 성인의 산, 인간의 축일력)이거나 이미 당도했을지 모를 미래의 세계(방문, 모든 성인의 산, 인간의 축일력)이거나, 혹은 한때 우리 자신이었으나 잃어버린 세계 (심장, 트란스푸기움, 녹색 아이들, 모든 성인의 산)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세계들은 하나이다.

토카르추크가 그려내는 미지의 영역은 동시에 인간 의식의 무능 또는 소실 또한 드러낸다. 우리는 ‘자연(인류를 포함한)’이라 부는 것의 정체를 알지 못하며 (녹색 아이들, 심장), 우리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승객, 병조림, 솔기, 실화, 심장, 인간의 축일력),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트란스푸기움, 모든 성인의 산). 따라서 우리는 조금 자중해야 한다.

‘승객’은 이 단편집의 승선 세리머니 선물 같은 작품이다. ‘녹색 아이들’로 고도가 높아지고, ‘병조림’과 ‘솔기’로 토카르추크 월드의 기류를 타기 시작한다. ‘방문’으로 고도가 한껏 높아지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들은 더 깊은 음영의 낯선 상공 속을 여행한다.

공포, 상실, 죽음, 익숙함, 냉혹함과 취약함, 어리석음과 폭력성, 잔인함과 나약함, 구원의 가능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들은 너무도 기이하고, 낯설어서 한번 읽으면 쉬이 잊히지 않을 선명한 이미지들을 마음에 새긴다. "언어나 말은 그 뒤에 이미지가 버티고 있어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p82 ‘방문’ 속 화자의 말처럼 토카르추크의 단편들은 이미지로 각인된다. 작가가 ‘실화’에서 인용한 네덜란드 화가들인 멜키오르드 혼데쾨터와 헤리 멧 드 블레의 그림들처럼 이야기들은 “불길한 징조”와 “의미와 숨겨진 징후”들로 가득 차 있다.

번역자인 최성은 선생은 올가 토카르추크를 ‘단편 장인’라 평가한다. 과연 그렇다. 책을 읽다 덮고,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마지막 읽은 문장은 독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문장에 갈고리라도 달린 것처럼.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은 불가사의한 공모로 서둘러 독자를 기어코 책 앞에 앉힌다.

“목걸이를 손에 집어 드는 순간, 녹슨 줄이 끊어지면서 빛바랜 구슬들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졌고, 그는 결국 꽤 많은 구슬을 찾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잠 못 드는 밤이면, 그 구슬들이 과연 어디에서 무념무상의 둥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먼지 덩이 속에 정착했으며, 바닥의 틈새 어디쯤 둥지를 틀었는지 종종 궁금한 마음이 들곤 했다.”p59

구슬들이 아직 목걸이였을 때를 기억하기에, 그 목걸이를 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간직하기에, 남자는 흩어져 사라진 구슬들의 현재가 궁금하다. 올가 토카르추크야말로 기억하고, 간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사라지고, 망각되고, 다가오는, 그리고 되풀이되는 세계에 대한 연민과 애도의 마음이 이 책 <기묘한 이야기>들 전편에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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