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일기 : 영원한 여름편 -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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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날씨의 친구다. 그는 365일 날씨의 안색, 소리, 감촉에 주의를 기울인다. 날씨가 뿌리고, 키우고, 거둬들이는 동식물에도 살뜰히 관심을 나눈다. 1855년 1월 26일 일기에는 각별하게도 1월의 날씨들이 날짜별로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루도 같지 않은 빛의 색채, 바람의 방향, 그늘의 음영, 대기의 습도와 향기, 촉감으로 매일 매일 날씨의 안부를 묻는다. 소로는 날씨 그리고 날씨의 아이들과 진심어린 우정을 나눈다.

소로는 뛰어난 화가다. 그의 붓은 펜이다. 펜 끝으로 드로잉하고, 채색한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 한 쌍, 눈 속에서 몸 전체로 발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스컹크, 맑은 겨울날 희디흰 눈밭에 드리운 파란 그림자, 한 해의 첫 무지개, 해동기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새의 발자국들. 그의 펜은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의 생명을 고요히 안으로 품어 간직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누어 준다.

소로는 사색가다. 물질적인 풍요가 가져가버린 축복과 가져온 재앙에 대해 그는 고민한다. 기쁨이 되어야 할 노동이 과도해지면서 사람들이 자극에 탐닉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는 “삶을 만들고 살찌우는 것은 혼자만의 자잘한 탐험”임을 잊지 않는다. “자기 천성에 따라 주어진 수백 가지 작은 일을 의도적으로 충실히” 할 때 삶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소로는 안다. 소로는 이 세계가 인간만이 아니라 거북알을 위해서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명상한다.

소로는 산문가다. 진솔함은 산문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는 ‘삶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글쓰기를 우려하고 ‘어떻게 삶을 실제적으로 영웅으로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쓴다. 그런 이유로 위대한 시인들의 실제 삶을 그는 궁금해 한다. “강연자가 듣는 이의 반응에 맞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알랑거리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당신인 것처럼 말해주길 바란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8) 삶과 글쓰기 사이의 평화는 소로가 가꿔가는 일상의 소임이었다.

소로는 삶의 장인이다. “나는 삶의 열매를 남김없이 따려고 가장 정직한 삶의 기술을 차례차례 실험해 보고 싶었고 또 실제로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직한 삶의 기술이라 하더라도 절제하지 않는다면, 즉 필요한 양 이상으로 곡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땀을 흘린다면 아주 많은 양의 밀을 추수하더라도 적은 양의 왕겨를 추수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충만한 삶을 위해 멈추기의 지혜를 익히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임을 소로는 명심한다.

소로는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 삶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다른 비인간 존재들과 거대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자명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몰과 일출은 일깨운다. 햇살을, 대기를, 물을, 바람을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과 매순간 함께 호흡하고 나눈다. 이 진실을 기억하며 일분일초를 사는 것 이상의 삶의 축복이 있을까. 소로가 발견한 이 명약은 오만과 폭력성, 나약함, 자기연민이라는 인간종의 고질적인 질병에 특효이다.

이번에 출간된 소로의 일기는 ‘영원한 여름’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였다. “한 겨울 등허리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발”은 소로에게 겨울 속 영원한 여름을 일깨우는 정령이다. 까마귀의 울음소리, 수탉의 홰치는 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에서도 소로는 여름의 약동하는 생기를 감지한다. 소로는 봄 속의 가을, 여름 속의 겨울, 가을 속의 봄을, 각각의 사계절 속에 모든 사계절이 씨앗처럼 깊이 박혀 있음을 안다. 한 계절 속에 모든 계절이 고갱이로 살아 있듯, 우리의 현재 속에 우리의 모든 시간이 알알이 녹아 있음을 그는 안다. 아름다운 섭리이고, 아름다운 자각이다.

이 간명한 진리 속에 내 삶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단순한 삶이 필요하다고 소로의 일기는 말한다. 이 일기들은 소로가 매일의 삶 속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자연을 바라봤는지 전한다. 자연을 향한 깊은 응시가 그의 사유와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또한 이야기한다. 지구 안의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연스러운 삶을 일구기 위해서, 관성이 된 복잡한 사고 패턴과 습관을 간소하게 꾸려야 한다. 소로의 일기는 이 다짐을 마음에 새긴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 그 날의 산책로가 고요히 나를 기다린다. 그 길 위에는 “태고의 착실함”을 간직한 깃털의 새들과 “시큼하고 쌉싸래한” 야생 사과,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잔잔한 호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찬찬히 눈에 담는 동행인, 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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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4호 - 2024.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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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창작과 비평 여름 204호는 한국 시 특집이다오연경 평론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약진 중인 젊은 여성 시인들을 소개한다. 노동 현실, 교차하는 정체성, 변태하고 확장하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 저항과 투쟁의 동력인 유머. 오연경 평론가는 이 네 가지 이슈를 최세라, 주민현, 한여진, 임유영 시인들의 시에서 읽어낸다.


‘헤드셋의 검은 쿠션 사이에 끼어서 존재 할 때’로 시작하는 최세라의 ‘콜센터 유감:뮤트’는 상품과 정보의 교환이라는 공식만이 앙상하게 남은 소비 사회에서 감정 노동이라는 옵션을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여성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주민현의 시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여러 정체성이 복합된 이국으로서의 여성 존재를 발견한다. ‘내가 포착한 에리카와 그 포착을 빠져나가는 에리카 사이’라는 구절은 폭력적인 외부 규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여성의 자유가 느껴진다. 


‘나는 솥의 자랑일 것이다’로 호기롭게 마무리되는 한여진의 ‘솥’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대문자 여성 너머, 무수한 여성들의 가능성이 펼쳐 보일 ‘폭과 깊이’를 가늠한다. 임유영의 시 ‘오믈렛’에 대해 오연경 평론가는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낸 상처에 관한 농담‘이라고 말한다.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과 ‘묶인, 찔린, 찐긴. 손.’은 같은 손이다. 이 두 손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각성은 블랙 유머의 쓴 맛이다.


오연경 평론가는 리부트 이후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파편화되거나 분절된 언어 또는 환상성의 언어’로 시도되는 독특한 모험들을 감지한다. 나는 이 모험들이 여성의 경험을 배신하고 기만하는 언어들을 폭로하고, 그것들의 저열한 민낯들을 광장에 매달 언어들을 수확해내리라 기대한다. 놀이이자 축제의 언어들, 처음부터 철지난 줄 몰랐던, 제 철이 없었던 언어들을 각성시켜 추방할 여성 시인들만의 만남은 언제나 신난다. 그런 면에서 오연경 평론가의 이번 글은 지면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슈의 발견과 시인들의 소개 면에서 모두 값지다.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들이 여러 매체에서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메타 비평글인 되찾은 의 시간에서 송종원 평론가는 최근 한국시 비평이 시의 공공영역(커먼즈)을 적극적으로 독해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는 요즘 비평담론은 작품의 진실에 접근하는 매개로서가 아니라 작품을 새롭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면이 있다고 최근 비평들을 진단한다. 그에게 소비로서의 시 비평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성을 소거한 해석들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독법의 대척점에 서는 비평으로서 시의 역사성 위에서 시 자체가 거대한 협동작업임을 이수명과 박노해의 시 겹쳐 읽기를 통해 보여준다.

시인들이 서로의 꿈과 기록으로 현실의 모습과 의미를 한층 선명하고 두텁게 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듯이 비평 역시 민주적 대화의 공간을 열어 협업해야 한다고 송종원 평론가는 단언한다. 비평의 협업은 축적된 작품들의 관계 맺음을 통해 시간을 품는 문학사를 쓰는 동시에 서로가 꾸었던 꿈을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실천적 장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과도한 특권을 반성하는 것과 인간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일은 당연히 다른데도 종종 혼동된다.’ 송종원 평론가는 시 비평이 기다리는인간의 자리를 상징했던 의 자리를 망각하지 말기를 주문한다. 시의 공공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을 설명할 책임이 여전히 비평가들에게 있음을 그는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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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작은 선물 - 어른들을 위한 동시
최승호 지음, 준한 옮김 / 담앤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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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으면 밤하늘은 깊고 푸르다. 공기는 상쾌하고 검푸른 하늘에 별빛이 노랗다. 파랗게 투명한 어둠, 노란 별빛은 절 마당 청삽살개를 깨운다. 멍 멍 멍, 밤의 환함은 멍 멍 멍, 청삽살개의 불성을 환하게 비춘다. 최승호 시인의 동시집 ‘부처님의 작은 선물’은 한 밤중의 고요를 깨는 ‘청삽살개’의 일갈, 멍 멍 멍으로 시작한다.

청삽살개의 짖음은 진리의 공명으로 밤공기를 쾌청하게 가른다. 상쾌하게 무명을 깨뜨리며 동시집은 이렇게 열린다. 청삽살개의 꿈벅 큰 눈, 과묵한 입은 노랗고, 정리되지 않은 긴 털들은 밤빛이 물든 남색이다. 최승호 시인이 크레파스로 쓱쓱 낳은 청삽살개다. 의뭉하고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부처님에게 연꽃 공양을 바치려 연못에 들린 고라니, 고운 꽃등을 들고 연등행렬에 나선 너구리와 다람쥐, 스님과 함께 마루 위에서 비 구경에 하염없는 개구리, 사바세계를 번쩍번쩍 일깨우는 범종소리, 싱싱한 햇빛에 감사 인사 절하는 금개구리, 부처님 말씀을 우물우물 씹어 먹는 염소, 제비와 제비꽃 소식을 동시에 날아다주는 봄바람, 그리고 자라와 땅강아지, 조랑말과 우산 버섯이 최승호 시인의 동시 안에 그득하다.

시인의 시집 바구니 안에는 개구리들의 노래로 시끌벅적한 봄날의 논과 연못, 늪이, 거위와 오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해질녘이, 스님을 쫓아가는 꿀벌의 야무진 날갯짓이, 나물 캐러 간 스님을 길 잃게 만드는 숲속의 안개가, 돌미륵과 두꺼비를 걱정시키는 빗줄기도, 오소리도 숨게 만드는 소소리 바람이 가득하다.

유정의 존재들과 무정의 존재들이 서로 곁을 내주고 어우러져 하루를 지나고 계절을 지난다. 시인이 채집한 바구니 속의 법계에 부처님의 미소가 달빛으로 비치고, 바람으로 스치고. 빗물로 내린다.

시인이 부처님의 작은 선물이라 부른 삼라만상은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이, 표표히 인연 따라 머물고, 인연따라 떠난다. 무심하고 청정한 세계다. 시인은 깨끗한 언어 속에 그 시절인연의 풍경을 담는다.

동시들은 저마다 최승호 시인이 직접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들 위에 편히 앉아 있다. 분별과 논리에 무겁게 발목 잡히지 않은 언어와 그림들은 매임이 없어 홀가분하다.

최승호 시인의 이번 시집 모든 동시들 옆에는 영문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역 감수는 홍대선원 준한 스님이 맡았다. 한글 동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란히 영문 번역문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수풀 수풀, 떠들썩 떠들썩, 미르 미르 푸르미르, 쓱싹쓱싹. 시인의 언어유희가 한글에, 영문에 실려 살아있는 입말이 된다. 일체가 청신한 문자와 그림에 이어서 소리로 장엄되는 순간이다.

다시 깊고 푸른 밤. 청삽살개는 곤한 잠에 들었고 칠성장어와 칠성무당벌레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가끔

내가 북두칠성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지

칠성무당벌레야

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니

- 칠성장어가 칠성무당벌레에게, 128

동그란 몸을 더욱 동그랗게 모으고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참일지도 모를 칠성무당벌레는 칠성장어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까. 어쩌면 칠성장어는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칠성장어는 이 질문을 세상의 일체만물에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갑니까. 나는 불성에서 나서 불성으로 돌아갑니다. 부처님의 작은 선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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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숨결 가까이 - 무너진 삶을 일으키는 자연의 방식에 관하여
리처드 메이비 지음, 신소희 옮김 / 사계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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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성. 작가 리처드 메이비가 2년여를 앓던 우울증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며 발견한 가치이다. 하지만 오해 없길. 그가 되찾은 ‘야생성’은 미개발되거나 오지로 남겨진 특정 장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야생성은 그가 인용한 콜레트의 정의, ‘꿈꾸는’ 장소이다. 어딘가를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닌 인류가 되찾아야 할 정신의 능력이다.

작가가 인용한 소로의 문장. ‘우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우리가 돌아다니지 않을 곳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는 생명체를 목격해야 한다.’ 현대인은 과연 감각할 수 없는 어딘가 다른 장소에, 다른 존재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온대의 우리는 냉대의 아무르 표범이 사냥하는 모습을 눈 감고 목격할 수 있을까. 그의 생존을 믿을 능력이 있을까.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자연 작가인 리처드 메이비는 심각한 우울증에 앓는다. 어느 날 그는 수 십 년 동안 모아왔던 장서들, 그가 써왔던 책들을 낯선 사물처럼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글쓰기는 그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었다. 본능이었다. 사물을 인식하는 본능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이 자각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식물적 후퇴의 과거를 뒤로 하고, 식물적 전진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친구들의 우정 어린 도움과 연인 폴리의 사려 깊은 보살핌, 그리고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 ‘이스트 앵글리아’ 그 곳의 찬란한 자연은 그를 서서히 회복시켜 준다.

이 책 ‘야생의 숨결 가까이’는 정신적 위기를 자연의 치유력으로 극복하는 개인의 서사를 저만치 넘어선다. 저명한 식물학자로 리처드 메이비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 병력, 현재를 냉철하게 서술한다. 동시에 그는 투병과 회복 기간 동안 머물렀던 장소들의 생태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 기록의 결과가 이 책이다. 과학자인 동시에 자연 작가로서 글을 써온 그의 글은 유려하기 이를 데 없다. 과학자의 정밀한 시선과 비판적 안목, 그리고 다정하고 따스한 정서가 문장에 배어있다.

공유지의 상실, 현대에도 막강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생태학적 폐해, 생태계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기후 위기, 인간 중심주의, 생물종 다양성 감소, 산업형 농축산업, 전쟁과 생태계, 미디어에서의 자연 재현의 문제, 공유지의 실험 등등.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고민들이다. 식물학자로서, 그리고 한때는 자신 소유의 숲에서 공유지의 부활을 실험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연과의 최소한의 소통마저 불가능했던 질병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를 바라보는 리처드 메이비의 시선은 날카롭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질문들과 곱씹어야 할 의문들을 남기는 책이다. 지구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 한권에서 복잡한 생태 이슈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개되고 인용되는 책들과 작가들 또한 더 없이 풍요롭다.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책에는 그가 막 떠나온 영국 남동부 칠턴의 숲지대, 그가 이제 막 도착한 이스트 앵글리아 늪지대의 생태계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여기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사상가, 과학자, 문학가, 여러 장르의 예술가의 연구들과 작품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신화, 민담, 일화, 향토사들이 자연에 대한 그의 사유를 확장시키며 인용된다. 자연 묘사는 사실적이며 무엇보다 아름답고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포도꽃이 필 때면 잘 숙성된 와인에도 갑자기 탄산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난 이 이야기가 너무 좋다. 달 표면에 영원히 토끼가 살게 된 이유의 중국 버전은? 등등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다. 정말 재미있다.

해야 할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가장 편안한 시간에 이 책을 아껴 읽었다.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서 나는 작가, 그리고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칼새, 흰턱제비, 검은머리흰죽지, 검은다리솔새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두루미의 춤을 보려고 수풀을 헤치며 돌아다니고, 쇠물닭과 회색기러기를 피해 날아가는 백로를 보았다. 구별조차 어려운 다채로운 난초들과 사초들의 싱그러운 여름 축제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매혹적인 구애의 춤을 추는 유령 나방을 목격하기도 했다. 셀 수도 없는 다양한 동식물의 생의 한 순간들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만끽했다. 그 자체로 충만한 순간들이었다. 매일 밤 한 권의 책이 생태계의 찬란한 순환 속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리처드 메이비는 셀본(그가 한때 머물렀던 곳이다)의 명물인 1500살 수령의 주목 나무가 강풍에 쓰러지자, 작은 토막을 간직했다가 조각가 친구에게 준다. 조각가 친구는 그 주목 토막에, 새를 조각하기로 한다. 잘라진 주목의 균열과 틈새에 맞춰 새가 조각되면, 주목 토막은 그 새들의 둥지가 되는 것이다. 나무의 결에 따라 탄생하는 새, 그 새들의 은신처인 나무, 그것들을 연결해주는 예술가. 이 상상력.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숨결을 감지해내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상상력이야말로 리처드 메이비를 회복시켰던 ‘야생성’이 아닐까.

주목 나무가 쓰러졌을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셀본을 찾는다. 그들은 주목 토막을 나누어 간직한다. 목공예 작가들은 셀본의 주민들을 위해 그릇과 걸상을 만들어 준다. 마을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 둥치 옆에 잘라낸 주목 가지를 심는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리처드 메이는 생각한다. 주목 나무에 어쩌면 1500년 동안 주민들의 숨결에서 나온 분자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주목 나무는 세상의 고른 숨결 그 자체라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생각한다. 인간과 비인간들이 서로 나누는 숨결처럼 우리의 마음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하나의 장이라고. 작가의 이 상상의 능력 혹은 통찰력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할, 우리를 살릴 ‘야생성’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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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가면 일곱 번 태어나라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해설 / 아티초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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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1937년, 시인 아틸라 요제프가 입사를 위해 쓴 자기소개서의 일부이다. 그는 이 글을 쓴지 10개월 후 화물열차에 몸을 던졌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자각. 32살 젊은 시인의 문장이 가슴을 때린다. 이 독백은 삶이 자신을 강인하게 단련시키는 중이라고 위무하며 오랫동안 스스로를 단속하고, 닦아세우고, 몰아세웠던 청춘의 자기 고백이다.

사면초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련 속에 시인은 던져진다. 극한의 가난, 세 살 때의 아버지 가출, 열네 살 때의 어머니의 죽음, 일을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가난, 낙인과 조롱, 차별과 처벌.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철벽의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시인은 어떻게 정신을 가다듬고, 분투할 수 있었을까.

아틸라 요제프의 바리케이드와 횃불은 시였다. “뼈가 닿는 소리를 아는 나”는 “우리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이 아닌 비겁한 침묵”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끼와 칼과 돌을 집으려 손을 내민다.” 그의 시는 세계의 비참과 고통을 증언하고, 반역과 저항의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이번에 재출간된 아틸라 요제프 시집 ‘세상에 나가면 일곱 번 태어나라’는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시집이다. 시편마다 남겨진 거의 1세기 전, 다른 공간을 살았던 청년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 청년의 목소리와 공진한다. 여전한 불평등과 차별, 여전한 배제와 억압 속에서 아틸라 요제프의 시들은 일깨운다. 늪이 깊을수록 각성과 저항의 언어를 길어내라고, 어둠이 깊을수록 자기 안에 빛을 스스로 밝히라고. 아틸라 요제프의 음성으로 묻는다.

대답해 보오,

원래 여기 사는 사람이요?

그리움이 무섭게 사무쳐

그치지 않는 이곳

억겁의 세월에 눌린

비참한 현인

말마다 주름마다 표정마다

일그러진 얼굴들

24페이지. <애가> 중에서

우리 각자가, 아니 우리 모두가 무서운 그리움에 사무쳐 그리워하는 그 장소는, 시간은 어디인가? 그곳에 사는 사람은,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틸라 요제프는 그를 일곱 번째 사람이라 부른다.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할 때에는

적에게 일곱 사람을 보여라-

일요일 하루는 쉬는 사람

월요일에 일하기 시작하는 사람

대가 없이 가르치는 사람

물에 빠져 수영을 배우는 사람

숲을 이룰 씨앗이 되는 사람

야만의 선조들이 보호해 주는 사람

하지만 그들의 재주로는 충분하지 않아 -

너 자신이 일곱 번째라야 해!

29페이지. <일곱 번째 사람> 중에서

아틸라 요제프는 우리에게 태어날 때에도, 저항 할 때에도, 사랑에 빠졌을 때에도, 시인이 되어도 일곱 번 변신하라고, 다시 태어나라고 선언한다. 자기 갱신과 자기 변용. 시인인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과 권력에 의해 대량 복제되는 복사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발명해내는 해방적 주체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라는 기도이다. 일곱 번에 머물 이유도 없다. 여덟 번, 아홉 번... 거듭 태어나는 존재는 전체주의적 폭압에 포획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아틸라 요제프의 ‘일곱 번째 사람’의 무덤에는 단정할 수 없는 무수한 사람이 묻힐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세상이 너의 비석이 될 거야-” 세상 전체를 비석으로 가진 사람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인다.

젊은 시인의 전망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나. ‘서리’, ‘누런 풀’, ‘유리 제조공’, ‘어머니’ 등 다른 시들을 읽는다. 출구 없는 가난과 노동에 꺾이고 꺾이는 신체와 정신. 이 고단한 목격 속에서 정신의 창발을 위해 애썼던 부단한 그의 고투는 어떤 것이었을까. 시집에 실린 시들이 보여준다. 그의 사랑과, 그의 이상과, 그의 낙담과, 그의 절망을. 그리고 그의 애씀을.

어깨에 봄을 두르고 다니며

가슴에 봄을 먹이는 나

- 중략

아무것도 나의 무릎을 꿇리지 못한다.

잡초로 무성한 어머니의 무덤 말고는, 아무것도.

75페이지, <격려의 노래> 중에서

다시 처음으로. “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금쯤 조금은 편안해졌을까. 앞서 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고된 삶을 살고, 살았던 모든 이들, 그리고 스스로를 애도하는 시를 그는 남겨 두었다. 고즈넉한 별 아래, 따뜻한 빵 조각의 온기를 간직하고 그가 영면하기를.

나는 어른도 아이도

‘헝가리인’도 ‘동포’도 아니다-

여기에 누운 나는 당신처럼 지친 한 사람.

저녁은 고요를 퍼 담고

나는 따뜻한 빵 한 조각인데

고즈넉한 하늘의 별,

강가에 나앉더니 내 머리를 밝히네.

56페이지, <지친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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