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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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24년 봄 203호는 ‘세계서사,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화두로 시작된다. 기후 변화, 전쟁들, 양극화, 우익화와 반지성주의가 휩쓸고 있는 세계사의 위기 속에서 한국은 현재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특집으로 구성된 ‘세계서사,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서동진 교수, 박노자 교수, 이일영 교수, 이혜정 교수가 글을 보탰다.

서동진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개인의 경험과 자본주의의 총체성을 연결하는 대안적 상징 서사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박노자 교수는 한국의 글로벌 담론의 변화 과정을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별할 수 있도록 서구 중심주의와 주체적 담론의 저항적 움직임으로 큰 맥을 잡아 살펴본다. 이일영 교수는 우리 경제의 현 상황을 세계 경제라는 복잡한 맥락 안에서 분석, 예측하는 ‘한반도 경제’라는 총체적 인식의 틀로 현재의 한국 경제를 읽어낸다. 끝으로 이혜정 교수는 “패권 불가능/부재의 궐위 시대”를 맞아 여러 위기들이 착종되어 나타나는 국제 정세의 지형을 미국의 정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창비 2024년 봄호에서 눈에 띄는 소설은 전춘화의 ‘여기는 서울’이다. 작가 전춘화는 87년생으로 길림성 화룡시 출신으로 2023년 소설집 ‘야버즈’로 국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에 실린 단편은 20대 조선족 여성이 서울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다. 화자는 제도권 교육의 경험 차이, 역사에 대한 상이한 이해와 해석, 자본주의의 적나라함을 경험하면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아를 이해해 보고 싶은 갈증”과 “사춘기 때보다 더 결렬한 혼란”을 겪는다. 우리 사회의 뚜렷한 구성원이지만 그 내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주체의 목소리이다.

‘이토록 문제적인 인간’이란 타이틀로 황정아 문학 평론가는 켄 리우의 포스트 휴먼 소설들을 들여다본다. 켄 리우의 소설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포스트 휴먼 되기의 기만성과 폭력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의 소설 속에서 “알고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단독성의 성취”라는 과제를 황정아 문학 평론가는 발견한다. 단독성의 성취는 “가상화 되지 않은 물질 세계”를 돌보는 일로 이어짐을 평론가는 강조한다. 포스트 휴먼 소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물음으로써, 인간 ‘되기’에 대한 질문에 답하도록 한다.

작가 조명 코너에서는 작년 ‘니들의 시간’을 출간한 김해자 시인의 육성을 듣는다. 화석처럼 굳지 않기 웃는 ‘생존형 웃음’들을 알아보는 시인에게 ‘희망’이란 발굴해내려 노력해야 하는 투쟁이다. 시인은 비극과 참극 속에 울고 있는 사람에게 ‘내 탓이 아니다’라고 말해 줄 있는 반대의 거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부려 앉아야 얼굴이 보이는 코딱지풀 같은 말, 흰 부추꽃이나 무논 잠시 비껴가는 백로 그림자 같은”(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 중) 382 시의 귀는 심장 가까이 있어야만 한다는 시인의 목소리는 백로 그림자, 코딱지풀 같이 고요하고 낮은 곳을 향한다.

4.16재단 상임이사 백래군 선생은 4.16운동 10년을 되돌아본다. 10년은 네 시기로 나뉜다. 모든 시민이 참담함과 애도 속에 참사에 주목했던 참사 직후 시기인 첫 번째 기간, 두 번째 시기는 “시민의 힘으로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린 승리의 시간이다.” 세 번째는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 마지막은 윤석렬 정부다. “기소된 관련자들은 무죄로 석방되거나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났다. 생명안전공원 건립은 지연되고 있고, 4.16 재단에 대한 예산 지원은 삭감되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참사인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사회적 참사를 해결하는 정부의 태도는 더욱 퇴행했다.

박래군 선생은 4.16운동이 이전의 사회적 참사 이후의 운동들과 구별되는 사회적 운동의 이정표로서 갖는 의미들을 발견한다. 먼저, 유가족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운동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 이 운동의 우선순위가 보상이 아닌,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이었다는 것, 또한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워 수많은 기록물들을 축적했다는 점, 더 나아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과 모여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구성했다는 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 끝으로 기후 위기와 결합된 재난들이 예정된 시대에 생명 존중과 안전 사회를 공공의 의제로 만들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후진적인 정치, “재난 참사를 지우려고만 하는 국가와는 결별”해야만 한다고 박래군 선생은 말한다. 희생자들에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줄 책임이 시민들에게 있다.

“장터가 아름다워서인지 여느 장과는 다르게 대맹장은 왠지 고즈넉하다. 흔한 호객 소리, 흥정하는 소리, 엿장수의 트로트 메들리.... 같은 소리가 없다. 조용히 팔고 조용히 산다. 다만 장터의 하늘을 뒤덮은 고목 나무 속에서 새가 울고 매미가 울고 가을에 낙엽이 우수수 쏟아지면 어물 장수는 낙엽이 묻은 생선을 팔고, 옷장수는 낙엽이 내려앉은 옷을 팔고 채소장수는 낙엽과 함께 채소를 판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엄나무, 말채나무, 벚나무 이파리들이 1648년의 이파리가, 1717의 이파리가, 1854년의 이파리가 2024년의 생선과 함께, 옷과 함께, 채소와 함께 장바구니에 담겨 온다” 404

이번 203호에 실린 공선옥 작가의 산문 ‘담양산보’의 일부분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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