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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고 투쟁은 진행 중 - 운동 좀 하던 할머니들의 현재진행형 인생 이야기
변정정희 지음 / 현암사 / 2026년 8월
평점 :
83회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시상식에서 이창동 감독은 영화 ‘가능한 사랑’이 “노동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영화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고 소회를 밝혔다. 노동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AI에 의해 대체되는 직업군의 확산을 의미하는 걸까. 여전히 존재하지만 점점 비가시화 되는 노동의 ‘모습’을 의미하는 걸까. 둘 다일 것이다.
무엇을 먹고, 입고, 어디를 가고, 어떻게 자기를 계발하는지가 SNS의 중요 관심사다. 어디서든 소비자 정체성, 자본가(?) 정체성 (놀랍게도 자본 없는 자본가, 자기 신체가 유일한 자본인 자본가)은 환영받는다. 그러니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자본가는 꽤 만족할 것 같다. 노동자가 각자도생을 내재화해 서로 경쟁하기에 여념이 없고, 소비로 하루하루의 불안과 불만을 땜질하면서, 노동자 정체성을 스스로 녹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자본가들이 기대하듯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에 관해 무지하고 무관심할까. 그럴 리가. 하지만 부의 양극화와 고용 불안정성이 이렇게 심화된 현실에서 노동 이슈가 뒷방의 쿰쿰한 곰팡이처럼 취급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는 무엇일까. 무엇이 노동의 의미와 조건에 대한 질문을 지우고, 노동자들이 서로의 노동을 바라보지 못하게 시야를 가리는 걸까. 마른 가루처럼 흩날리는 노동의 미래의 어떤 모습일까.
노동은 복잡한 문제다. 특히, 여성의 노동은. 내 안에는 흘러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여성의 시간, 노동의 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있다. 그래서 이 책 속 여성들의 얼굴이 반가웠고,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 노동은 무엇이냐고, 당신은 어떻게 저항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냐고. 밤마다, 한 명의 여성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감사했다.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여성 노동의 이야기. 그들 각자가 들려주는 노동과 삶의 이야기에, 내 인생의 여자들과 그들의 노동이 겹쳐지고, 내 노동의 시간도 겹쳐진다. 그러다보면 깊은 밤 정신이 말똥말똥 해졌다. 분리조차 어렵게 서로 얽히고설킨 여성들의 노동사. 서로 버티고, 지지하고, 밀고, 당기며 엮어온 여성들의 삶. 여성 노동자의 끈질긴 삶과 존엄. 마음이 얼얼해지고 말개지기를 반복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육성은 자본의 모순, 가부장제의 모순, 정치권력의 모순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야합해 일터에서 여성의 노동을 착취해왔는지 증언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권위주의, 여성혐오 중, 그 어떤 것도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가 있어야 완전체가 된다. 이 공고한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투쟁은 그 만큼 험난하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각자의 노동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중첩된 착취와 억압 속에 연대하고 맨 몸으로 싸웠다. 철벽같은 불평등과 불의의 벽들을 매우 힘겹게, 더디게, 조금씩 허물어갔다. 거대 담론의 틀 안에 박제된 하나의 사례가 아닌, 투쟁의 주체였던 자신의 목소리로 저항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당시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상황들과 함께, 분노와 두려움, 혼란과 보람이 전해진다.
여성 노동자 개인의 미시사를 읽다보면 정치경제의 거시사가 한 타래로 엮인다. 미시사는 거시사를 통해, 거시사는 미시사를 통해 선명해진다. 교과서나 역사책의 한 귀퉁이에서 반복해서 봐온 여성노동 운동사가 여성 노동자 본인의 육성으로 구술되니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해진다. 흡수된다. 이것이 육성의 힘인가 싶다.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책은 묻는다.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냐고. 70년대 한국 여성 노동 운동의 정오, 가장 불같았던 그 현장에 있었던 여성들이 묻는다. 당신들의 노동은 제대로 대접받고 있냐고. 나는 선뜻 그렇다고, 50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더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성 월 평균 임금의 64%에 미치는 여성의 월평균 임금(2024년, 성별 임금격차 OECD 평균의 3배), 남성보다 1.6배 높은 저임금 노동자수(2025년) 등 통계는 50년이라는 시간이 여성의 노동 지위를 충분히 견인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여성 노동의 현실은 어떨까. 이 책과 현재 사이를 오가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확고부동한 결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것을 뿌리 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서리치게) 확인한다.
하, 오해들마시라, 이 언니들은 비장하지 않다. 이 언니들은 담담하다. 모든 것을 넘어온 자의 초연함과 여유가 책 전편에 유유히 흐른다. 언니들은 고뇌하는, 멋있는, ‘~척’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껍데기들은 가라, 알맹이만 주련다! 책의 정서는 대략 이렇다. 비장해지는 건, 이 언니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투쟁을 외칠 때, 기저귀 차던 독자, 나일뿐이다.
50년 세월, 있는 자리와 외형만 바뀌었을 뿐, 이 여성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현실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고 일상을 직조하며 톡톡한 삶의 무늬를 새겨 넣는다. “그만 좀 쉬어!”, “여행 다니고, 원 없이 놀아” 내 인생의 여자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해온 말이다. 책의 마지막, 나는 얼굴이 화끈했다. 산책하다가도, 설거지 하다가도 화끈거린다. 국공립기관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하라. 만국의 노동자여, 오늘 당신의, 노동의 안부를 묻는 이 책을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