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평점 :
언제부턴가 나는 세상이 낯설다. 이 낯설음의 기저에는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는 정서의 변화가 있다. 최소한의 위선마저 벗어던진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 혐오의 만연, 이 혐오와 폭력을 지렛대 삼는 정치. 이 낯설음에 기름을 부은 것은 12.3 내란이다. 내란 이후 국내외 뉴스에 대한 체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라는 걸 경험한 후의 불안은 신체적이다. 12.3 내란은 일상의 안전과 안정에 대한 감각이 집단적인 무지와 기만에서 기인한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일깨웠다. 오늘 국내외 뉴스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체감시켜 준다.
이것이 <어제의 세계>를 읽게 된 계기다. 진행 중인 침략 전쟁들, 요원해 보이는 내란 진상 규명과 청산(과연?), AI로 재편되는 경제구조. 내란 이후 몸에 입력된 불안은 현실을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인식한다. 낯섦과 기시감, 이 모순적인 감각을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이 책을 찾았다. 물론 현재의 국내외 정세와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정세 사이에는 상이한 맥락이 있고, 작가의 어제의 세계와 나의 어제의 세계도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의 징후와 거의 유사한 어떤 것들을 감지하고도, 결국은 고립감과 무력감 속에서 그것들을 혹독하게 겪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기록한 증언은 거울상처럼 오늘의 세계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의 세계를 읽는 일은 오늘의 세계를 읽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평생 평전과 소설로 사랑 받아온 슈테판 츠바이크가 생의 마지막에 쓴 작품이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장소에 대한 평전, 동시에 자신의 회고록이라니. 그다운 마무리다. 앞날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쓸 수밖에 없던 책. 그래서인가 작가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넣은 책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삶이 그에게 허락한 기억들, 그 날카로운 환희와 절망을 고스란히 책에 옮겨 놓으려는 절박함이 깊고 빼곡하다.
역사 비평과 세대 비평, 인물 비평 그리고 작가 자신의 회고가 맞물려 전개되는 이 책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독자를 격변기 유럽 한 복판으로 빨아들인다. 사건들은 긴박하며 인물들은 흥미롭고, 통찰은 매섭다. 독자는 꼼짝없이 작가의 그물망에 걸려든다. 7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가 숨 가쁘게 넘어간다. 열을 식힐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20세기 초중반 유럽을 짓누른 불안과 긴장의 압력, 그 과잉된 힘이 폭발하고 분출되는 과정이 작가의 펜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이성과 기술을 향한 맹목적 신뢰, 절정에 달한 낙관주의가 어떻게 재앙의 징후를 외면하고 붕괴와 폐허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기록한다. 대중의 공포와 불안 속에 틈입해 입지를 넓혀가는 파시즘의 용의주도함을 파고든다. 역사적 소용돌이에 휩쓸려 나가는 사람들의 운명에 독자는 숨을 고르며 읽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어제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오늘의 세계를 두려운 시선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어떤 페이지들은 주어만 다를 뿐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심리의 대가답게 작가는 재앙 직전 대기를 떠돌던 시대의 정신적인 분위기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두 전쟁 전후로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대중 심리, 극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성의 만화경을 증언한다. 열광과 냉소, 맹신과 불신을 시소 타는 대중적 혼돈, 한계 상황으로 치닫는 혐오의 광기. 동시에 작가는 평화와 연대의 가능성을 찾아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양심과 실천 또한 잊지 않고 증언한다. 역사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있던 인물들에 대한 날카로운 인물 비평은 역사 비평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격변기를 통과하는 츠바이크의 자신의 내면과 삶의 태도이다. 그가 가리키는 달, 그가 기록한 양차 대전 중의 유럽은 더할 나위 없이 여러 갈래의 통찰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증언하는 사람 츠바이크도 역시 각별한 깨침과 영감의 원천이 된다.
기록에 관한 집념과 거의 초인적인 기억력, 그리고 무엇보다 시종일관 윤리적 성찰을 견지하려는 지성의 힘. 경탄스럽다. 이 책의 집필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41년, 망명 중이던 뉴욕 호텔에서 시작됐다. 서문에서 작가는 자료 하나 없이 이 책을 쓰고 있다고 기록한다. 책의 초반부터 기록의 세밀함에 압도당한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글의 정치함은 더해간다.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이렇게 밀도 높은 증언으로 작가를 떠밀었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반추 또한 계속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얻은 성공과 명성, 그 빛과 그림자, 평생 추구해온 가치가 철저히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는 무력감, 막바지의 고립감도 감추지 않는다. 책의 막바지 유대인이자 침략국 국민이라는 이중의 굴레로 유럽에서 완전히 뿌리 뽑혀 타국을 전전하며 버티다 결국 이 침착한 인물이 생에 대한 피로감을 내비친 대목은 먹먹하기만 하다.
츠바이크가 역사와 사람을 관찰하고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극한의 격변 속에서도 작가는 거리두기를 유지한다. 흥분과 냉소에서 벗어난 냉철한 관찰은 이 증언록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 진실에 가깝도록 부단하게 자신의 관점을 교정해가는 신중함과 겸손함도 인상적이다. 그의 사유가 확장되는 젊은 날의 경험을 기록한 글들에서 보여지는 배움에 대한 열망, (아카데미 밖의 배움, 현실과 사람을 통한 배움, “끊임없이 배울 수 있었다.”) 비판적인 외부 관찰에 동반되는 자기 평가는 생의 종결부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츠바이크의 감동하는 능력, 사랑하는 능력,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에 놀란다. “어떤 사람을 혼자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두 배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법이다.” 시인 에밀 베르하렌을 향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 말이다. 책을 덮으면 저 문장이 삶을 향한 츠바이크의 애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로 다시 읽힌다.
사랑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랑해서 그토록 오래 기억하고, 정확하게 표현해내고야 마는 능력. 사람이든 어떤 순간이든, 그가 사랑한 대상을 묘사한 문장을 읽다보면, 독자까지 사랑에 빠진 기분에 물든다. 그렇기에 역사의 참극을 기록한 이 책을 읽고 독자의 마음은 마냥 절망스럽지만은 않다. 인간의 무참한 야만성과 취약성을 기록한 책을 읽고 나서, 여전히 환하고 따스한 마음을 봐버린 것 같은 느낌. 놀랍고 당혹스럽다. 어쩌면 츠바이크가 쓰고 싶었던 마지막 책이 바로 이 책 그대로가 아닐까도 싶다. 비극을 잊지 않게 전하되, 인간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존엄과 품위 또한 전하는 책. 책의 막바지에 이르면 일몰 직전 화려하게 쏟아지는 황혼의 광채에 자신의 삶을 마지막으로 비춰보는 애수가 문장에 깃든다.
이 책은 츠바이크가 사랑했고, 절망했던 20세기 초중반 유럽에 받친 추도사이자 자신의 길고 긴 유서다. “한 인간이 어린 시절 시대의 공기로부터 핏 속으로 받아들인 것은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남는다. (중략) 나는 내 어린 시절에 빛나던 저 오래된 별자리들을 자꾸 올려다본다.” 핏 속에 남은 환한 빛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늘 오래된 별자리들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은 어제의 세계에서 그 별자리를 올려다본 사람과 만난다, 반짝하고 빛나는 별빛에서. <어제의 세계>는 그 별빛이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