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한국사 입문 수업에서 들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한반도가 중국에 붙어 있어서 턱없이 작아보이지만 한반도를 유럽에 갔다 놓으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꿀리는것 없이 한판 붙어볼 만하다고.
순간 우와, 하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렇게 생각하고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커도 너무 큰 중국 등살에 살아남느라고 정말 고생 많이 했겠구나 싶어 한반도가 살짝 안스러워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이 다시 생각난다. 일찌감치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돈황 막고술 같은 석굴, 만리장성의 불가사의, 자금성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기가 죽고 한글은 있어도 우리 말의 수많은 한자어 표현들은 중국에서 유래햇으니 수업 시간에 이 말을 듣고 '우와!' 할지언정 그것은 초라한 변명으로 들렸고 우리 역사는 변명이나 늘어놓아야 하는 좀 찌질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구려 이후의 역사, 근현대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뒤틀림이 있었다.
요즘의 한류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이런 역사에 대한 뒤틀림은 나만 가지는 것만은 아닌가보다. 중국 답사를 시작하며 저자는 문화유산을 볼 때는 절대 이리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중국에 막고굴, 맥적산 석굴 같은 거대 석굴이 있는 이유는 그곳의 자연 환경이 곡괭이질 몇 번으로도 쉽게 파들어갈 수 있는 사암이나 역암 지질을 가지고 잇어서이지 그네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서, 우리는 못나서 석굴이 없는게 아니라고 했다. 단단한 화강암을 쪼개고 다듬어 석굴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무모한 짓인지,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무모함 대신 우리네 아름다운 산 속에 산사를 지어 마음을 다스리는 고즈녁하고 아름다운 산사의 전통을 낳았단다. 문화유산을 대할 때는 이렇게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발디디며 터잡고 사는 자연을 함께 생각하며 보면 괜한 열등감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그렇다고 교만해지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자의 이 글을 대하며 그 동안 좋기는 하지만 왠지 변명처럼 들렸던 스무살 때 들은 선생님 말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그래, 우리한테서 전수받은 주제에 무슨 문화유산이니 뭐니 까불지 마라 하며 중국에서 뺨 맡고 분풀이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일본 문화유산에 대한 뒤틀린 심사도 풀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과는 다른 우리 삶에 어울리는 문화를 지어나갔듯, 일본도 지리적 여건 때문에 우리에게 영향받음이 많았겠지만 그네들의 풍토와 삶에 맞는 문화를 지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터인데. 그 말이 맞습니다, 라며 고개 끄덕이며 이런 구절들을 읽어내려갔다.
사실 나는 아마추어다 보니, 그리고 글만 많이 대하다 보니 불상의 조형미와 석굴의 배치도, 미술 양식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재미있게 읽은 반면 문화와 역사 전반에 대한 이런 설명들은 맞다, 맞아 하며 글과 내가 대화라도 나누는 양 흥미진진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보니 얼어붙은 월아천을 보며 느끼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감상과 가도가도 끝 없는 고비사막을 오가며 느낀 감상들들 읽으며 나도 저런 사막을 맥없이라도 한번 지나가보았으면, 그러고 나면 나도 좀더 커져 있고 너스러워져 있을텐데 싶었다.
차는 문화제가 있는 곳 저 멀찌감치 세워 두고는 전기차와 도보로 사람들을 오가게 하여 유적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중국의 문화제 보호 노력은 관광을 위해서는 계발, 관람객은 왕이니 편하게 모십니다를 연발하는 우리네 문화제 관람 정책과 관광지 계발 정책을 돌아보게 한다. 중국은 후진국이 아니잖아!
돈황 문서를 둘러싼 제국주의의 약탈과 결과적으로는 문화제 보존이지 않았느냐며 발뺌하는 그네들의 행태를 보면서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병인양요 때 훔쳐가 놓고 임대라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반출시켜 준 프랑스의 규장각 의궤 사건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조선총독부가 훔쳐온 돈황 유적과 중앙아시아 유적들을 우리 박물관에 상설전시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것을 돌려달라고 하면 우리는 선뜻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생각은 또 왜이리 복잡해지는지.
손 안에 스마트폰이 있는 요즘은 백과사전적 지식은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다. 이 책도 그런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다. 미술사가나 불교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특히나 필요없는 책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삶에 대한 저자의 경탄과 아쉬움, 훌륭한 업적을 이루며 고단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숙연한 마음들,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있기에 현재의 내 삶으 돌아보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함부러 펀단하고 비난하지 않기 위해 나를 가다듬게 해 주는 삶의 길라잡이로 다가온다. 원래 여행과 답사가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이런 삶도 있으니 내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러니 함부러 단정해서 남에게 상처주지 말자 다짐하며 돌아오는 것 말이다.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책상에 앉아 이런 여행을 떠날수 있게 해 준 책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