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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42
맥스 아마토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꼭 우리 집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어지르고 나는 조금 치우고, 나도 조금 어지르고 남편은 많이 많이 치우고.
나는 아이들에게 따라다니면서 제발 제자리에 놓든지, 한 쪽으로라도 치워서 지나다닐 때 걸리지 않게 하라고 야단친다.
남편은 나에게 제발 책 좀 치우라고, 제자리에 놓으라고 잔소리 잔소리 해 댄다.
분홍색 지우개는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여백을 보며 너무나도 행복해 한다. 자기 소임을 다하고 뿌듯해 하는 남편을 보는것 같아 웃음이 난다. 그러다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서 돌아오고 장난감이 여기저기 뒹굴고 내 책들이 식탁과 소파와 책상에 한 두 권씩 펼쳐지기 시작하면 남편은 쫓아다니면서 치우느라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한다. 노랑이 연필이 하얀 여백에 까만 자국들을 남기기 시작하자 바빠지는 재우개처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지우개는 지치고, 자기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연필은 지우개를 약올리는것 마냥 온 종이를 까맣게 물들이느라 몽당몽당 키가 줄어들면서 지처가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지우개의 노력은 가상하다. 어떻게든 까망을 하양으로 바꿔내려고 온 몸을 바치며 돌아다닌다. 하나는 그러야 하는 본성으로 태어났고, 하나는 지워야 하는 본성으로 타고났으니 애초에 타협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누구 하나가 지처 나가떨어질 때까지 이렇게 되풀이되어야만 할까?
책을 덮으며 조금 서글퍼 진다.
함께 보던 아들도 우리 집을 떠올렸는지 지우개가 아빠같다고 낄낄 웃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지처 화내고 짜증내기 전에 적당히 어지르고 대충이라도 치우자고 말해 본다. 서로서로 조금은 반성하며 책상 위의 종이들을 한 줄로 쌓고 버릴 건 버리고 만화책들은 제자리에 꽂는다.
남편이 한 말을 다시 떠올린다. 정리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기도 적당히 봐줄테니 장난감은 다 놀고 카펫 위에라도 모아 놓고 내 책들은 내 책상에서만 마음껏 어지르라고. 식탁에서 책을 읽은 다음에는 식탁 아래 앉은뱅이 소파에 쌓아두라고.
남편이 지우개처럼 지치지 않기를 바라고 아빠가 장난감을 장농에 다 집어 넣고 며칠 동안 못 가지고 놀게 하는 일 없도록 반성 또 반성하면서 정리 좋아하는 아빠를 존중해주자고.
이렇게 그림책 한 권으로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시 끄집어 낸다. 그림책에 나오는 분홍 지우개와 연필보다는 행복한 결말을 위하여!
하얀 도화지에 아들에게 이야기 한 두 컷을 덧붙여보자고 했더니 노력은 하겠지만 아빠의 참을성도 조금은 더 필요할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니 쬐끔은 봐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글도 별로 없고, 그림도 지우개와 연필처럼 단순한 어찌 보면 벌것 아닌 그림책이지만 아들과 나는 한동안 즐겁게 놀고 의미 있는 되돌아봄과 깨달음과 실천의지도 불태우며 즐겁게 즐겁게 놀았다. 평범한 일상이기에 십게 공감하고, 여백이 많기에 더 많이 조잘거릴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간만에 재미있는 그림책 한 권이 이렇게 행복할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