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9시 뉴스데스크를 보는데, 생전의 고우영 선생님 인터뷰 자료화면이 나왔다.
뉴스가 끝나고나서 바로 '명품 사극 드라마'라고 MBC가 자부한다는 <돌아온 일지매>가 방영되니까 자사 드라마 홍보라고 돌을 던지는 분 혹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만화가가 아닌 고우영 화백, 그리고 고우영 화백의 작품 중 <일지매>를 다룬 뉴스였으니 그리 돌을 던지면 안 될 일이다. 뉴스가 나가는 지금의 때가 어떠하며, 뉴스에서 다루는 작품이 어떠한가를 보면 단순히 '드라마 홍보용 뉴스'라는 말은 못할 것이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은 30대 이후 세대에겐 참으로 친숙하다. 아니, 어찌보면 지금의 30대가 고우영 작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작가와 같은 숨을 쉰 마지막 세대라고 하는 게 맞겠다. 70년대 생인 지금의 30대 남성들은 고우영 화백에게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 말해도 틀림이 없다. 예쁘게 커가는 토끼같은 아이와 자기만을 바라보는 여우같은 부인을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하는 30대. 현재에는 효용가치가 높지만 몸값이 떨어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는 40대를 바로 눈앞에 둔 30대. 그러기에 정치와 경제가 돌아가는 판국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30대 남성이라면,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부모님은 IMF를 겪으셨다. 난 IMF를 피해 군대에 갔다. 군에서 2년 2개월을 보내면 좀 나아지려나 했다. 그닥 나아진 것은 없지만 아쉬우나마 조금씩 회복하는 듯했고,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도 보았다. 평생 야당만 할 것 같던 당이 정권을 잡아 10년의 호사를 누리는 것도 보았고, 10년 후 다시 '작아진 야당'으로 회귀하는 것도 목도했다. 그리고 또다시 IMF와 같은 끔찍한 불경기가 도래했다. 이십대 어릴 적엔 군대라는 도피처가 있었지만, 이제 난 가장이다. 도망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즐기기엔 쉽지가 않다, 지금의 상황이.
아아, 고우영 화백의 만화가 연재되던 신문은 그 만화 하나만으로 신문의 판매부수가 좌지우지 될 지경이었다는데. 고우영 화백이 인기몰이를 하던 저 70년대와 내가, 30대 가장인 내가 살아가는 21C는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 9시 뉴스를 보니 <일지매>를 낸 출판사에선 당시의 검열 상황 때문에 삭제된 부분을 '복간'한 완전한 판본 출간에 큰 의미를 두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 집필진은 무시된 채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게 지금 세상 아니던가. 네티즌은 자판 하나 두드리기가 겁나고, 부동산 전문가나 경제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경제성장률과 시장 회복 예측을 눈치껏 상향발표, 무조건 '물이 반이나 차있다'고 말해야 하고, 무고한 시민이 불에 타 나가떨어져도 책임지는 이 없으니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울부짖을 일이 아닌가? 지금의 비정규직이 전태일 시절의 미싱 시다에 비해 과연 몇 보나 더 걸아나갔단 말인가? 그럼에도 비정규직 관련 악법은 더한 악으로 치닫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일터와 삶의 터에서 과연 30년 전보다 무엇이 더 나아졌다는 말인가? 고우영 화백의 만화가 왜 30년이 지난 지금에 재조명을 받고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MBC는, 방송 언론계에서 '바보회'로 자처하는 듯하다. 저 평화시장의 바보회가 그러하였듯, 요즘 MBC 앵커들은 클로징 멘트를 유독 다듬고 다듬어 때론 칼날처럼, 때론 항변처럼, 때론 한숨처럼 내뱉곤 한다.
그런 MBC가 '돌아가신 고우영 화백의 작품이 왜 30년 넘도록 사랑받을까욤?"하고 질문을 날려주고 계시다. 왜일까? 왜 30년 넘도록 사랑받을까? 컬러 만화와 3D 애니메이션, 총질 칼질에 쭉쭉빵빵 미녀는 세트로다가 출연해 주시는 자극적이며 신기하고 겁나게 웃긴 만화들이 판을 치는데, 글자도 많고 온통 흑백에다가 권수도 많아 한번에 세트로 장만하면 다음달 카드 결제일이 무서워지는 이 책들이 왜 30년 넘도록 사랑을 받는 것일까? 왜일까?
고우영 화백의 대표작인 <삼국지>, <십팔사략>, <조선야사실록> 등은 기존의 고전인 나관중의 <삼국지>, 증선지의 <십팔사략>, 우리의 역사이자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고우영 화백 특유의 재치와 해학을 버무려 새롭게 엮은 것이다. 하지만 <일지매>는 극히 적은 사료에 고우영 화백의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살을 덧붙여 8권의 대작을 만들어낸 경우이다. <일지매>는 거의 전부를 창조한 경우이므로 그 어떤 작품, 어떤 대표작보다 더 고우영 화백의 세계관, 정치관을 깊이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당쟁과 자신의 부귀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 지배계급을 그리는 것으로 70년대의 암흑의 삶을 풍자했다.
_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일지매> 평 중에서)
고우영 화백은 일지매를 참으로 암울한 시대에 던져놓았다. 청나라 첩자가 판을 치며, 나라의 녹을 먹는 고급 공무원은 제 잇속을 위해 나라를 야금야금 팔아먹는다. 이런 망할 간신배가 오히려 명줄은 징그럽게 질기고, 오히려 청렴하고 의로운, 게다가 로맨티스트이기도 한 어느 관리는 비참하고 억울한 최후를 맞는다. 도려내기도 힘들 정도로 썩어가는 세상이니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고 소설가 김훈이 읊조린 남한산성의 치욕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한 치욕의 필연은 썩은 세상과 썩은 관리가 불러온 게 분명하며, 조금 더 앞선 삶을 살다간 일지매는 그러한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온 일지매>라는 돈 좀 들인 듯한 자기네 드라마 시작하기 직전의 뉴스에 일지매가 어쩌니 저쩌니 들먹인다고 돌 던지지 마시라. <일지매>는 신필 고우영 화백이 가장 애정을 보인 작품이며, 30년 만에 무삭제 완전판으로 복간되자마자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된 도서이다. 고우영 화백은 군홧발에 자신의 자식 같은 지면이 짓밟힘에도 풍자의 펜을 굽히지 않았고, 치욕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지매라는 영웅을 통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
그리고 '일지매가 돌아왔다.' 1977년 12월 31일에 대미를 장식했던 일지매가 무삭제 완전판으로 돌아왔고, 드라마로 돌아왔다. 고우영 화백은 돌아가셨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다시 일지매를 불러내었다.
우리는 1977년으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가? 우리 앞에 필연의 치욕이 웅크리고 있다가 혹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돌아온 일지매가, 다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