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까마득한 이야기 1
편해문 글, 노은정 그림 / 소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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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확인한 후 알라딘에서 구매한다면 모르겠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 책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주의하셔야할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초등학생 용입니다. 저학년이 보기에도 조금 어려울 듯싶네요. 3,4학년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보여요.

저는 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모양은 꼭 그림책 같아서 책장을 열었더니 글씨가 정말 깨알같아요. 아들놈에게 책부터 보여줬다간 큰일 날 뻔했습니다. 세살 된 아이가 이정도의 텍스트를 다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겠지만, 이 정도의 분량을 읽어주다간 아빠가 먼저 나가떨어지겠지요. ^^;;;

삼신할머니의 역할이 결국 산파이므로, 임신과 출산 등에 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있는 아이들이 읽어야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미취학 아동들도 출산에 대해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이런 장문의 옛이야기보단 가볍고 짧은 은유와 설명, 친절한 그림을 덧붙인 그림책이 적당할 듯싶구요. 이 이야기는 산파의 역할과 함께 우리 옛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으므로 '옛이야기'를 소화 가능한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는 되어야 술술 읽힐 듯해요. 희랍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 옛 신화와 전설이 그러하듯, 우리 옛이야기의 남성상과 여성상도 현재의 남녀 위치와는 많이 다르므로, 그런 차이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아이가 독자라면 더욱 좋겠구요.

사실 그렇잖아요. 제우스는 엄청 바람둥이에다 뻔뻔한 철면피이고, 삼신할머니에 나오는 신들이란 존재도 인간의 욕망을 가장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집약한 존재들이잖아요. 가부장의 화신들이고, 여성성이란 것은 밟히거나 길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따위의 것들이고요. 옛이야기니까 삼신 할머니나 바리공주라는 캐릭터가 존재 가능하지, 21c 우리 아이들이라면 어디 가당키나 할까요? 딸은 없지만, 삼신 할머니나 바리공주처럼 희생이 미덕이라고 가르치진 않을 생각이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변했잖아요. 옛날과 지금은. 옛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옛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옛 것으로 새 것을 읽혀 배울 수 있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이 접하면 좋겠네요. 그저 이것은 옛이야기니까 읽어둬라, 라고, 고전이니까 필독서다, 라고 던져주는 것보단 아이와 이 내용이 맞는지 한번쯤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표지는 팬시용품처럼 화사하고 밝고 예쁜데, 본문의 그림은 좀 아쉽네요. 색이 선명하지 않기도 하고, 옛이야기라는 테두리 안에 너무 갇힌 느낌이에요. 왜 옛이야기의 호랑이는 꼭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그리듯이요. 희화화되고 과장된, 옛이야기 특성에 맞게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그림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인물들이 표정이 없고 심심하네요. 캐릭터의 특성이 크게 부각된 인상도 적어서 누가 삼신 할머닌지, 누가 누군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 것도 아쉽구요.

시누이 잔소리하듯 조금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말들을 늘어놓았는데, 그건 더 좋은 책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이나 애원쯤으로 생각해 주세요. 사실 이 책, 잘 만든 책이거든요. 어린이 책 중 정말 북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없고 본문 편집 디자인 같은 거 나몰라라 하는 책들도 의외로 많은데, 이 책은 단단한 상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본문 그림의 임팩트가 약한 것에 비해 표지 그림의 인상은 참 좋구요. 별은 다섯 중 네 개 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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