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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ㅣ 문학동네 청소년 1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우리 교육과학기술부가 이 책에 '18금' 딱지를 붙이고 불온 도서로 지정하고 싶어 할지도...
_시사인 설 합병호 / '불온한 우리 시대를 가차 없이 질타하다' / 표정훈(출판평론가)
시사인, 참 사연 많은 매체다. 저 유명한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독립한 언론자유 수호의 투사들이 모인 곳 아니던가. 마치 동아일보에서 민주주의와 양심의 펜을 위해 독립한 저 한겨레처럼. 시사저널에서 펜의 날을 세운 유명한 지식노동자 김훈 역시, 시사저널 사태로 인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지 않은가.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의 소설과 <강산무진>등의 주옥같은 소설집으로 유명세를 타고 덩달아 자전거까지 타며 전국을 유랑하는 한량 예술가 김훈도, 한때 몸담으며 치열한 젊음을 살랐던 정신적 고향 시사저널이라는 둥지를 잃었으니, 번주로부터 버림 받은 사무라이, 낭인 신세가 되었을 터. 칼이 꺾이고 펜이 꺾인 낭인의 눈물은 참으로 진하고 진하다 하겠다.
그런 시사인에서, 참 시사인 스러운 책을 소개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아직 지각이 있는 이들이 교육계에 있어서인지, 다행히도 이 책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불온서적' 딱지를 하사받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혹 모를 일. 국방부로부터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들이 '민간인'들은 모른 채 조용히 불온서적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지 않았던가. 이 책 역시 학부모 모르게 '불온서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교단에서 '금서'로 지정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 된다면 우선 사립학교 도서관에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일제고사 등등 성적지상주의의 사회로 변하였으니 학교에 도서관이 있으려나 모르겠고, 있다 한들 학생들이 찾을까 모르겠고, 그러므로 이 책은 수서 목록에 포함되기도 힘든 노릇일 것이다.
무규칙 이종소설가 박민규 님이 <지구영웅전설> 등에서 미쿡 히어로와 원숭이스러운 동양인 히어로를 등장시켜 사회를 비비 꼬아 밥말아 주시는 풍자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살짝 보여주었다지만, 우리 나라엔 제대로 된 풍자소설이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최근의 용산 참사 등으로 눈물 젖은 서민의 삶을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재조명 받고 있다지만, 사회비판의 날을 세운 소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니, 리얼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운동권의 땀내 가득한 작품은 많았지만, 아닌척 능글능글하게 사회를 씹고, 뱉고, 주무르는 '풍자 소설'이 없다 하겠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어찌되었든 겉으로는 태평성대가 이어졌던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그 10년간 투쟁의 격함은 줄어들었으되 먹고사는 것 자체가 너무 바빠서 그랬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풍자 소설' 자체가 비주류 분야여서 그런 것일까.
지적 내공과 큰 시야를 확보해야 집필이 가능한 풍자소설은, 확실히 도전하기 어렵다. 책이 나와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입바른 소리했다고 잡아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선, 더더군다나 가망이 없다. 심폐소생술로 겨우 숨이나 살릴까 말까인 상황이 바로 요즘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요즘 같은 시기야말로 풍자소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 국민 모두가 정치 논객이 되고 경제 논객이 되는 시대, 눈만 뜨면 판타지 같은 일들이 뻥뻥 터지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오늘이 아니던가.
그런 와중에 이 책, 참으로 시사인에서 소개할 법한 이 책이 나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청소년들이 꼭 읽어주었음 하는 이 책은, 문방구에서 천 원 주면 살 수 있는 촛불 하나로 여론마저 움직여버린 우리의 싱그러운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다. 판타지의 꼴을 쓰고 있으나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닮아있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하나 들어 볼까. 책에서는 밤낮이 바뀌었다. 왜냐,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하는 저 초강대국의 시간을 세계 표준시로 삼아, 그 강대국와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밤낮을 바꿔버린 것이다. 아, 좋다. 간, 쓸개 다 빼준 덕에 비자 없이도 갈 수 있게 된 그 나라에, 이제는 00땡00으로 전화 걸 때 '혹 새벽잠 깨우는 거 아닐까?'라 걱정할 필요가 사라졌다. 학생들은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등교한다. 늦은 밤은 왕성하게 활동해야하는 '한낮'이 되었다. 아아, 진정한 글로벌이여, 우리는 초강대국의 시민과 함께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 '브랙퍼스트'를 먹는다네. '브랙퍼스트'냐 '블랙퍼스트'냐, 이 발음은 어떤 게 원어민에 가까운 것이더냐, 누가 지적 좀 해다오. 썸머 타임이 아니라 낮과 밤이 바뀌었구나. 생체리듬과 시계 또한 우리를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는 세계에서 가장 쌈 잘하는 나라에 맞춰주자. 반대하는 이는 미개인, 빨갱이, 좌측 깜빡이 되시겠다.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과 정권을 강도 높은 소리로 비판한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에서 <고양이 학교>라는 판타지 동화로 앵코륍티블 상을 수상하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상은, 프랑스 아이들의 인기투표와 마찬가지란다. 읽어봐서 가장 재밌고 가장 의미있는 작품을 수많은 아이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가장 현실적이기에 권위있는' 상이라는데, 그저 <해리포터>나 알고 <반지의 제왕>이나 알아온 우리의 초등생들에게 <고양이 학교>는 국내 최초의 판타지 동화이자 뚜렷한 세계관을 보여준 우수한 판타지 동화였다. 판타지 하면 <퇴마록>이나 알고 있던 우리나라에 <고양이 학교>라는 무려 11권 짜리 판타지 동화로 모험을 시도한 작가가, <고양이 학교>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 다시한번 뒤집어질 역사를 개척하고자 한다. 청소년들이여, 그대들이 희망이다. 그대들에게 짐을 지워준 것은 어른들이나, 오로지 그대들이, 그대들이 희망이다. 이 정도 상황까지 끌고온 어른들 중 하나로 정말 미안하지만, 그대들이 희망이다. 그리 얘기하고 있다.
청소년 시점에서 씌여진 이 소설은 한국판 <1984>이다. 정녕 이런 세상이 오지 말아야겠지만, 이미 그 전초를 보이고 있으니 불안함을 어찌할까. 소설에서는 공포정치가 시행되고 입바른 말을 하는 이들은 '강화 학교'라는, 말이 학교이지 '수용소'나 다름 없는 곳으로 보내진다. 마침 오늘 미네르바가 기소된다는데, 그가 진짜 미네르바이든 아니든 네티즌은 자유를 잃었고 이미 철권 통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 특공대는 국민을 때려잡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고, 투쟁하는 서민은 '악의 축'이다. 그저 우리는 세금 더 내라면 내고, 물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살아야한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찍 소리 말고 키보드도 두들겨서는 안 된다.
이 책이, 끝까지 소설로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27개월 된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급식으로 쇠고기를 먹고, 군대에 가서도 쇠고기를 먹어야하고,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창조성을 억누르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시계모자를 쓴 채 조종되는 것은 아닐지, 아빠로서 아들에게 미안하다. 세상이 이 따위로 굴러올 때까지 아무런 역할도 못한 어른으로서, 아빠는 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저, 이 책이 끝까지 소설로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임: 곧 설 명절인데, 내년엔 귀경전쟁 없이 배를 타고 가야겠습니다. 설렁설렁 관광도 하며 물길 따라 뱃놀이도 하고 막힐 리도 없으니 고향가는 길이 더욱 즐겁겠군요. 참! 이참에 주식사서 돈 번 다음 강 어귀에 휴게소라도 차려야겠습니다. 대박 아닐까요? 외국인도 많이 관광하러 올 테니 말입니다. 아니면 서울시 수상택시라도 임대해다가 장거리 뛰거나 대리운전이라도 뛰는 건 어떨까요? 물길 따라 가면 돈길도 보일테니 말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