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 팝업북 (회색 행성)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구판절판


책도 아름다울 수 있다. 이 책, <어린 왕자> 팝업북을 펼쳤을 때 든 생각이다.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책을 지혜로운 존재로만 생각했지 아름답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책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트로이 전쟁은 한 여인을 사랑한 두 남자의 질투와 분노가 싹이 되었다. 그 여인 헬레네를 직접 보지 못하였다면, 왜 여인으로 인해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였다면 그저 역사책의 책장을 떠도는 글자로만 트로이 전쟁을 인식할 것이다. 남자들 머릿속엔 돈, 차, 집, 여자 뿐인 건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다고 생각할지도. 그 여인이 뭐기에, 얼마나 아름답기에 칼을 들게 되는지, 사랑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할지도.

마찬가지로 <어린 왕자> 팝업북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왜 책 한 권 따위에 울고 웃게 되는지, 책 따위에 왜 '소장욕'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지 그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하여 '남의 아내'를 취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것 또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책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있어 소장욕이란, 한두 마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다.

보면, 갖고 싶다. 책장의 종이 결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쓰다듬어 보고 싶다. 그런 책이 있다. '벌레'가 되어 책장을 이불삼아 누비고 싶은 그런 책이 있다. 책벌레들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책이 있다. 바로 <어린 왕자> 팝업북처럼. 남자, 수컷, 사내들에게 있어서 품고 싶은 건 여자뿐만이 아니다. 책벌레에겐 책이, 여인과도 같은 자릴 차지하기도 한다. 때로는.

<어린 왕자>. 성경과 자본론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성경에서는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 얘기하고, 자본론은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사회주의의 성경'이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왜 어른들은 숫자 - 어쩌면 물질 - 에만 관심이 있고 내 친구에게는 관심이 없느냐고 얘기한다. 그러고 보면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성경과 자본론, 어린 왕자 모두 돈과 물질을 쥔 기득권층이 보기에는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던가. 일만악의 뿌리인 돈이 숭상받는 요즘 세상,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이 어린 왕자를 만나기란 어쩌면 낙타에 올라탄 부자가 바늘구멍을 지나 천국에 가기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자, 긴 덧붙임 따윈 사족에 불과하니 한쪽으로 치워 버리자. <어린 왕자>는 누구나 다 아는 작품이니, 어째서 이 책이 아름답다 말하는지 직접 보는 것이, 백 번의 설명보다 낫다 하겠다.


이렇게 등을 보이던 어린 왕자는

여우가 다가오자 등을 돌린다. 좁아진 거리가 보이는지.

관계의 시작, 친밀함의 거리.

작은 장치를 당기면 해가 떠오른다. 어린 왕자가 좋아하는 해 지는 광경, 함께 보면 더욱 좋겠다.

해 지는 광경을 함께 볼 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일 테고.

노동은 신성한 것.

더욱더 힘을 내 사랑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온전해지고 내 마음 속 쓴뿌리를 캐내야 하는 게 순서.

어린 왕자의 양은, 이 상자 속에 있다.
내 마음 속엔 누가 있나. 상자 속에 있어도, 다른 이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눈에 보이는 누구.

이 양이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양은 이렇지 않아요.

기억 속 내사랑은 항상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

이렇게,

날아온다.

어린 왕자, 또는 내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사막에 떨어지듯 뚝.

사막에 떨어지듯 뚝,

어느 순간 그렇게 다가오는 그, 또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라면, 항상 하늘을 살피고 관찰해야겠지.

사랑을 방치하고 함부로 대하면,

어느샌가 상처가 자랄지도 모를 일. 마치 저 바오밥나무처럼.

이쯤 되면, 치유하거나 회복할 수 없다.

어린 왕자와 장미의 만남처럼, 독설을 내뱉고 내게 상처주는 사람을 위해서 보호막을 씌워주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바오밥나무 따위 자랄 일 없을텐데.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그 또는 그녀를 위해서 영차영차!

하지만 그럼에도

내 사랑이 떠나면,

내 마음에 추억처럼 떠오르는 내사랑.


내사랑.

날아가버린 내사랑.

좋은 사람에게,
정말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당신에게 까탈스럽고, 나는 제멋대로이고, 나는 불평불만이 많고, 그리고 나는, 나는, 나는, 나 밖에 몰라 나는, 나는, 이라고 말하며 내 말속엔 '당신'이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엔 당신 뿐이에요.

라고 적어서. 정말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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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08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문학동네에서 나온 따끈한 책이네요.
이번 추석에 선물용으로 찜했어요. 물론 나를 위해서도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복받으세요!^^

구름배 2009-11-0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랑스러운 책이 탐스럽게 나왔네요
소장욕을 자극하는 팝업
책을 열면 어린왕자가 눈앞에 뿅 하고 나타나다니
백마탄 왕자처럼...
갖고 싶은 책 만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