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 타르디외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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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것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겠다. 다만,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네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가슴 한 켠 어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 그 영롱한 결과물인 아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아이의 실종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사랑스런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그러나 여전히 뱅상은 딸의 흔적을 기다린다.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 오년이 흘렀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마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이렇게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를 뱅상이 받으면서. 과거를 지웠다고,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었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줄거리는 세 문장이면 요약된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덧붙이자면 그녀의 일기가 중간에 포함된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버렸다고 생각한 한 남자 뱅상과 과거를 버린 척 했지만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한 여자 주느비에브다. 그게 다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눈을 잡더니, 읽은 후에는 잔영이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가지의 잔영이 남는다. 과거, 글, 사랑. 비슷한 듯 다른 세 가지다.
 
뱅상은 그녀에게 가는 길 내내 과거가 들러붙는 것을 밀쳐낸다.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면서 말이다. 그에게 과거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과거란 놈은 끈덕지게 그의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나 주느비에브를 만나고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며 그는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찼지만, 뱅상은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할 수 있게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을 읽지는 못하지만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다.
 
글에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건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공감하는 주제다. 그 도움을 가장 힘든 시기의 주느비에브도 실감한다. 매일 밤 희미하게 남은 기운으로 그녀는 글을 쓴다. 그리고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만 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비록 함께하지 못했지만 결국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게 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그들을 봐도 그렇지만, 사랑이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건?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그 안에 고통보다 컸던 기쁨이 존재하길 때문이 아닐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짧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는 속엣말을 한다.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라고. 그 무엇도 아닌 단지 두 사람만 있다면 사랑은 완성된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죽음, 그보다 별것 아닌 것들에도 깨어지기 쉬울만큼 약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뱅상은 바뀐다. 모든 걸 체념한 사람에서 다시 시작할 기운을 얻는다. 과거 또한 즐거움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 힘을 전해주고 간 주느비에브. 그녀의 강함이 놀랍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 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어쩌면 영원하다란 존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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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 과학사 7대 수수께끼를 찾아 떠나는 환상 여행 에듀 픽션 시리즈 1
다케우치 가오루.후지이 가오리 지음, 도현정 옮김 / 살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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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책이 두 가지 요소를 잘 믹스시킬 수 있을까? 가령 사랑과 과학. 왠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달달한 이야기가 펼쳐져야 할 것 같고, 과학이라 하면 왠지 딱딱한 이론서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두가지를 제대로 믹스시킨 책이 나타났다.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한다>. 제목부터 심상찮다.

 

제목뿐만이 아니다. 한 쪽 눈은 금색, 다른 쪽 눈은 진한 파랑색을 한 민트빛 고양이 한 마리가 책 위에 사뿐히 앉아있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두 눈은 보는 이를 가만히 응시한다. 마치 어딘가로 읽는 이를 데려갈 심산인 듯 보인다. 뭐,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안내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보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는데...

 

어느 날 강가에서 찾은 한 여자 샨린과 사귀고 있는 물리학 전공자 도오로. 모든 문을 잠갔다고 생각한 어느 날 밤, 한 마리 고양이가 난데없이 그의 삶에 등장한다. 유일하고 열려있던 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일러스트가 있던 책. 그리고 있어야 할 그림 속에 고양이가 없다. 결국 그는 책 속에서 고양이가 나왔다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슈뢰딩거 고양이. 양자론에 있어 절대적인 수식인 슈뢰딩거 방정식을 고안한 슈뢰딩거가 했던 사고 실험에 등장하는 고양이다. 상자에 두 칸을 만들어놓고 한 쪽에는 고양이를, 한 쪽에는 분열하는 방사성 물질을 넣어둔다. 이 물질이 방사선에 의해 붕괴되면 독가스가 나와 고양이는 죽게 된다. 이 때 붕괴 확률은 50%. 즉, 상자를 열어 확인하지 않는 이상 고양이는 반은 살고, 반은 죽은 상태이다. 즉, 양자에 있어서도 이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반쪽짜리 사고방식일 뿐임을 설명한 이론이다.

 

어쨌거나. 마치 양자와도 같이 그들을 과거의 세계로 이끄는, 그 것도 현재의 시간 변화 없이, 고양이와 함께 도오루와 샨린은 굵직굵직한 역사 속의 위대한 과학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학사의 중요 부분을 통해 그 이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책인가?

아니다. 단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발명품 안티키테라의 기계의 설계도, 위대한 일본 수학자의 봉납될 산액, 아인슈타인의 사라진 특수상대성이론의 자필 초고를 그들이 가져 온다는 설정은 어디서 본 듯, 그러나 참신하다. 그 물건들이 지금 남아있지 않은 이유를 소설속에서 녹여내면서 그럼 실제로는? 에 이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과거로 이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이 이 책은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이끈다.

 

한편으론 과학역사 속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했다는 콘라드의 깃발 일화, 퀴리 부인의 스캔들, 갈릴레이와의 만남을 위한 모험까지. 이야기는 때로 과대망상적이고 허황되 보이지만 그만큼 쉽고 재밌게 읽힌다.

 

무엇보다 재밌다. 술술 읽힌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인문서로 분류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달콤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다. 소설의 한 장면을 훔쳐온 듯한 결말과 소소하지만 현실적으로 가까워져가는 두 사람의 일상들. 이런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덕분에 그 안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도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던게 아닐까 싶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손부터 먼저 설레설레 내젓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저 샨린과 도오루의 일상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도오루를 따라 인터넷을 켜고 상대성 이론을 검색하는 스스로를 발견할지 모를일이다. 아니, 구지 그럴 필요까지도 없다. 이 책만으로도 어디 나가서 센스있게 말할 한 마디쯤은 준비할 수 있을테니까.

 

왠지 오늘 밤에는 자기 전 베개 옆에, 똑똑한 고양이가 나오는 책 한 권쯤 슬쩍 놓아두고 잠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왕이면 슈뢰딩거 고양이가 나오는 책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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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과식하는가 - 무의식적으로 많이 먹게 하는 환경, 습관을 바꾸는 다이어트
브라이언 완싱크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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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잠깐 컴퓨터를 하려고 앉았다가 전에 다운 받아둔 미국드라마 파일을 연다. 잠깐 보고 꺼야지 하는 사이 컴퓨터 책상 위엔 간식거리가 즐비하다. 코코아 한 잔, 스낵 한 봉.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고 40분짜리 드라마가 채 끝나기 전에 그릇은 싹 비워져있다. 잠시 영상을 멈춰두고 다른 먹을 것을 찾아가지고 온다. 드라마가 다 끝난 후에야 먹고 난 잔해를 보고 경악한다. 또 먹었다. 그 때서야 바지런떨며 움직인다한들 몸 속에 들어간 칼로리며, 축적되고 있을 지방과 탄수화물은 내 손을 떠난지 오래다.

 

흥! 나는 저런 멍청한 짓 안해. 라고 혀를 쯧쯧차는 사람들. 그러나 정말 이런 일화가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TV와 컴퓨터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먹고 있으며, 그 외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 몸 속의 지방을 쌓아가고 있다. 문제는 무의식적인 섭취! 바로 여기에 다이어트의 비밀이 숨어있다.

 

원제 Mindless Eating, 부제 Why we eat more than we think인 이 책은 우리가 모르는 새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적인 요인들을 분석한다. 일명 '숨은 설득자'다. 읽다보면 당연한 소리들이라 무시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소한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10kg이 찔 수도, 10kg이 줄어들 수도 있음을 저자는 여러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만하면 궁금해지지 않는지? 이 책은 친절하게 다이어트 레시피를 짜주는 책보다 더 효과높은 다이어트 방법을 당신에게 제시해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했다. 특히 서두를 여는 한 마디, "최고의 다이어트는 자신이 다이어트 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는 강박적인 사고와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가령 난 오늘부터 절대 초콜릿을 먹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했는데 몇 일 후 결국 초콜릿 한 개를 먹게 되고, 당연하게도 결과는 하나가 아닌 한 통으로 끝날지 모른다. 끝은? '다이어트에 실패했어' 란 한마디. 그러나 이 책에선 말한다. 먹고 싶은 걸 먹으라고. 다만 똑똑하게 먹어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우리는 먹는 것에 있어서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한다. 배가 부르면 그만 먹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은 안 먹고, 좋은 음식은 챙겨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더 큰 그릇으로 먹을 때 더 많이 먹고, 좋은 광고, 라벨이 붙어있을 때 그 음식을 더 선호한다. 그 뿐이 아니다. 포만감에 상관없이 그릇이 바닥이 보여야 다 먹었다고 생각하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더라도 보이면 먹는다. 이쯤되면 슬슬 자신의 혀와 위장과 감각을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에게 아직 방법은 있다. 무의식! 위에서 소개된 '숨은 설득자' 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음식을 더 먹게 만든다. 이제 방향을 전환할 시간이다. 우리의 몸은 100~200 칼로리 정도 덜 먹어도, 덜 먹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것이 '무의식의 폭' 이다. 간단히 말해 매 끼니 밥 한 숟가락을 덜 먹고, 자연스레 먹던 식후 커피 한 잔, 캔디 하나를 먹지 않는다. 그 것만으로 1년에 5kg 이상을 감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일까? 그렇지 않다.

 

3년쯤 전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몸무게를 감량한 기억이 난다. 물론 처음에는 빼야겠단 마음으로 밥의 양을 조금씩 줄이고, 생각없이 집어먹던 과자를 줄였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먹고 싶은 건 여전히 모두 먹으면서도 1년 동안 8~9kg 정도의 몸무게를 감량했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돌이켜 보니 바로 '무의식 다이어트' 였다. 좀 덜 먹고 좀 더 움직이고.

 

사실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요즘 무의식적으로 먹거리를 집어들게 되는 나의 식탐과 움직이지 않는 태도를 바꿔볼까 하는 욕심이었다. 그리고 책을 마친 지금, 즐거운 외침을 내지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또 하나는 이미 내가 경험해 본 방법이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불어난 몸무게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이 '무의식 다이어트' 의 효과는 강력하다. 다들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100kcal의 마법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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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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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유혹적이다. <내 남자> 라니. 어떤 사랑이 우리를 가슴뛰게, 저미게, 폭발하게 할까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연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사랑 이야기인가 싶더니, 특별한 관계의 두 사람 이야기다. 조금 더 넘겨보니 그 관계를 묶고 있는 심상찮은 일화가 등장한다. 특별을 넘어 누군가에겐 혐오스럽게 보일 관계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사랑을 더럽다 할 수 없었다. 치명적이게 아름답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눈을 떠나 그들 스스로를 탐하는 모습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불쾌한 감정을 안겨주지 않을까 싶다. 서로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두 사람이 다름아닌 아빠와 딸이기에. 공식적인 관계는 열몇살 차이의 양아버지와 양딸이다. 그러나 비슷하게 찢어진 눈매, 가끔씩 드러나는 비슷한 몸짓,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웃음. 그들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런 두 사람, 하나와 준고가 주인공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여자와 한 남자,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두 사람이 오랜시간 지켜온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말하기 위해 험난하게 지켜온,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한 세상은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

 

이 책의 표현은 절제된 듯 폭발적이다. 사쿠라바 가즈키는 책 곳곳에서 읽는 이를 전율케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준고의 애인어었던 고마치가 보는 하나의 입술을 묘사한 부분.

'그런데 입술만 빨갛게, 저세상에서 차갑게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벌린 입에서 분홍색으로 빛나는 혀가 쏙 나온다. 아이의 혀가 저렇게 끈끈하고 촉촉한 것일까.'

아이의 입술에 대한 한 두줄의 문장만으로 작가는 어린 중학생 소녀는 성숙하고 매혹적인 '여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애와 어른의 사랑이 아닌, 정신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그려내는 것이다.

 

책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화자가 바뀌면서 시간은 '지금'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나하나 벗겨지는 베일 속에 의문스럽던 두 사람의 지난 행적이 보여진다. 왜 두 사람이 저렇게 미치도록 서로에게 빠져들었는지. 그 궁금증 때문이라도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단어가 나올때까지 책을 덮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책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은 무한가지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건. 그들이 행한 사건에 대해서건. 대부분의 도덕적 잣대에 의해서 이 책은 폭삭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남자>는 연애소설이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명적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독한 사랑이야기다. 그러니 부디, 눈살을 찌푸리건 고개를 끄덕이건, 한 번 귀나 기울여보길. 세상은 넓고 이런 사랑도 있겠거니 묻어두길. 하나가 준고에게 했던 한 마디에 여운이 남는다. "우리가 사랑을 나눴다는 거." 조금 오래 기억의 가장자리에 남을 것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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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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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쓴 소리 하나. 번역서를 즐겨보지만 구태여 원작 제목과 번역본 제목을 비교하거나, 번역 자체의 질을 따질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나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난 원제를 찾아봤다. 아무리 봐도 이 책의 제목은 '창조적 글쓰기' 로는 마뜩치 않아 보였기에. 원제는 <The Writing Life>. 구지 해석하자면 글쓰는 삶 정도일까? 번역서 제목을 다시 본다. <창조적 글쓰기>, 제목만 보면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이 한 바탕 쏟아질 것 같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낚일 사람들을 위한 조언 하나.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어떻게 하면 소설가의 특성들을 배울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부분은 단 한 부분도 없다. 물론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지 바로 보고 알 수 있는 방식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즉, 해석은 읽는 자의 몫이다.

 

요컨대 이 책은 저자인 애니 딜러드의 글쓰기 인생론이다.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의 요소들을 분석해낸다. 일화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은 교묘하다. 그녀가 전하는 일상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보면 어느 새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있곤 한다.

 

총 6가지로 나누어 글쓰기를 조목조목 따져본다. 처음엔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글을 쓰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속도는 중요치 않다며 대가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준다. 부분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중요한 건 큰 그림을 보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젠 글쓰기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일상에서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은 온갖 글쓰기의 소재로 가득차있다!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자세인 몰입을 이야기한다. 옹골차게 준비했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쯤은 산산히 부서지는 비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때로 글의 한 부분이 글 쓰는 자에게로 찾아온다. 저자는 그 것을 아끼지 말라한다. 아껴두면 서랍 속 모셔둔 글귀는 어느 날 재가 되어 나타날 뿐이라고. 글 쓰는 자에게 중요한 건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이야기한다. "내 한정된 경험에 의하면 그림 그리기는 글쓰기와 달리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감이 즐겁다. 그림을 그린 후보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더 즐거운 법이다." 라고. 그녀는 글쓰기와 달리, 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이 한 문장이 그녀가 하고 싶던 한 마디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글쓰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기에 그녀도, 또 다른 글을 쓰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쓸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레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러니 다들 괴롭다 괴롭다 하면서도 오늘도 또 한 자 한 자 백지를 채워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책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글쓰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오늘도 부족한 글을 쓰는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하루치 비타민이 되어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던 듯하다. 기대치를 낮추고 편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기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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