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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바다 사내 한창훈이 돌아왔다. 육지의 이야기. 열여덟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이야기를 가지고.
<꽃의 나라>라니. 화사한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정원 혹은 가게라도 등장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소설의 배경은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다. 희망에 대한 믿음 따위는 버려진지 오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기 위해 행동한다. 어른들은 폭력에 투쟁한다. 그러나 아이들, 노인들, 여자들은 혼란스럽다. 그들은 잊기 위해 떠나고, 술을 마시고, 몸에 상처를 낸다. 그렇게 흐르는 역사의 한 귀퉁이를 한창훈은 보여준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피해 항구에서 뭍으로 올라온 고등학생인 나는 다시금 사회의 참혹함 속에 내던져진다. 선생들의 욕지거리와 매질, 폭력 서클로부터의 구타. 그러나 총을 들이대는 국가의 무자비함 앞에 앞선 폭력은 그저 삶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총구 앞에서, 늘어진 시체와 피바다 앞에서 열여덟이란 나이는 무력하기만 하다.
변명도 옹호도 비판도 없다. 죽은 자는 그저 죽었을 뿐이고, 산 자는 괴로운 기억이나마 움켜쥐고 살아간다. 산 자의 숙명이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마지막 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잊겠어요."
진숙이가 대답했다. 하지만 잊지 않는다는 말은 오래 산다는 말이었다. 그럴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죽기 전까지는 안 잊을게요." (255쪽)
사람들은 으레 소설 속에서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 깔린 희망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꽃의 나라>에선 그러지 말기를. 세상엔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절망조차 할 수 없는 바닥도 존재한다는 걸 한창훈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누렇게 삭아버린, 한 번도 지키지 않았던 생활계획표 같은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미움이다. 미움의 힘이다. (...) 다른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273쪽 작가의 말)
역사에 처음부터 따위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간 슬픔 위에 흰 꽃을 덮어 한 줌의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