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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적의에서 호의로, 내 마음이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삼 초십오 분에 지나지 않았다.'
*주. 책 속 문장의 세 글자 각색 문장이다.
껄렁하지만 순박한 미소를 짓는 청소년(!)과 노란 표지에 이끌려 책장을 넘겼다. 짧은 호흡에 쉬운 문장이 속독을 가능케했다. 그러나 뒷페이지 가득한 심사위원들의 칭찬에 부합하는 작품인가, 과연?이란 물음이 들었다. 그렇게 읽기를 십오분. 만생(주인공 청소년이다)의 매력과 작가의 글짓기 능력에 반해버렸다.
# 나 상 좀 받은 작품이야!
황현진의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는 16번째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모든 수상작들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치켜세울 건 아니지만, 수많은 경쟁 속에서 선발된 작품임은 사실이다. 즉 작품성은 상당부분 인정. 소설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다음 장이 궁금해지게 만드는 힘도 갖고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 도장 꾹.
# 나 젊은 작가거든
기성 작가와 달리 가벼움을 다룬다는 건 젊은 작가의 특권이다. 삶의 고달픔, 애환, 분노 따위를 가볍게 날려버리는 글쓰기. 그러나 백만톤의 생각을 끌어안은 가벼움임을 기억하길.
하루 아침에 부모는 미국 이민행, 홀로 옥탑방에 남겨진 무늬만 고3인 태만생. 돈 쫌 벌어보겠다고 이태원 짝퉁 삐끼 알바를 시작하지만, 삼일천하도 아니요 사일바닥을 헤매다 쫑난다. 구제할 길 없어보이는 열아홉 청춘의 방랑은 어디로...?
내용이 이쯤되면 다소 암울할 법도 하고, 온갖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남발할 법도 하다. 혹은 내가 세상을 버리겠어식의 쏘 쿨함이 있거나. 그러나 이 소설 담담하다. 심지어 일인칭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감정 소모 따위 없이, 그러나 푸석푸석 갈라질만큼 건조하지도 않게 잘 버무려놓았다.
무엇보다 이 소설 재미있다.
# 니들이 이태원을 알아?
진품이 짝퉁되고, 짝퉁이 진품되는 이상한 동네. 다를 이에 모양 태, 모양새 다른 애들이 사는 곳이란 이름답게 이질적인 이 동네가 소설의 배경이 된 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소설은 여러가지 다름을 이야기한다. 일반적인 서울살이와 다른 용산구 한강로 101-x번지. 평범한 부모상과는 다른 만생의 아버지와 어머니. 생활, 성격적 대조를 이루는 만생과 태화, 유진과 오선.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이런 나눠짐은 보다 사회적인 이슈로 발전한다. 이성애와 동성애(혹은 남/여성과 트렌스젠더).
우린 언제부턴가 다르단 말보다 틀리단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사고방식. 그러나 진품과 짝퉁의 경계가 모호한 이태원의 정신마냥 이 세상의 여러가지도 그저 다를 뿐은 아닌지, 작가는 생각거리를 던진다. 그런 점에서 트렌스젠더에게 입술을 내밀고 싶어하는 만생의 모습이 철없게만 보이진 않았는지도.
# 결론은 당신들 몫
젊은 소설의 취약점인 개운하지 않은 마무리는 역시나 아쉬웠다. 뭐, 이정도는 독자들이 감당할 숙제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공 들여 세상에 나온 작품을 넙죽 받아읽는 자로서의 예의이기도 하고 말이다.
*주. 살짝 파릇하고 생계란같으며 순수할 정도의 표현은 고3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웃으며 넘어가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