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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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얼마만큼의 리얼리티를 그 안에 담을 수 있는걸까.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창비.2010)은 마치 지난 시대를 살아온 자의 회고록인 듯, 사실적으로 격변의 한국 사회를 조명한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명목상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나아가던 지난 수십년의 세월. 그러나 속은 처절하게 썩어 들어갔던 그 시절들. 그 안에 여러 인간군상이 있다. 밤의 여인들, 뒷세계의 주먹들, 어지러운 시대의 군인들, 시류를 잘 타 한 몫 잡아보려는 업자들, 그리고 소박한 삶조차 허락되지 않은 하류계층. 그들의 이야기가 각각을 대표하는 캐릭터 안에 녹아들어 몇 십년의 한국을 재현한다.

 

허허벌판일뿐이었던 강의 남쪽 땅. 지금은 강남이란 호칭 아래 재력과 사치의 도시로 부상한 그 곳. 개발업자들의 눈에 들어와 장삿속으로 순식간에 부풀려진 가치 속에서 강남은 성장의 발판을 닦는다. 이어진 뒷손들의 투자. 룸쌀롱과 도박장 등 큰 돈이 오가는 밤의 업소들이 들어서면서 돈이 도는 도시가 된다. 그리고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증명하듯 들어선 대성 백화점.

 

이야기는 대성 백화점의 붕괴로 시작한다. 사건의 피해자인 여재력가 박선녀. 그녀를  필두로 강남에서 활개치고, 몰락하고, 아동바동 살아온 다섯 사람의 인생이 피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아온 네 사람.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마치 대성 백화점의 붕괴처럼 보잘 것 없고, 때론 처참하기까지 하다. 건물에 깔려죽고, 자신이 이룩한 게 순식간에 쓰러지는 걸 보고, 법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고, 돈 없이 쓸쓸하게 전화통을 붙잡고. 한편 그들과는 정반대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여자 임정아가 있다. 백화점에서 일하던 그녀도 백화점 붕괴의 피해자지만 결국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 다시 삶의 희망을 선물받는다.

 

어찌보면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만을 모아 추린 꾸밈없는 소설이다. 구태여 의미를 찾을 것도 없어보인다. 그러나 가졌던 자들의 씁쓸한 퇴장 장면과 마지막으로 살아남아 다시 햇빛을 보는 빈곤층(?) 임정아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며, '강남몽'이란 제목을 떠올리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끝 없는 영광이 없으며, 희망 없는 지옥도 없구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과열된 빈부격차. 강남의 화려함과 강북 및 지방의 왜소함이 낳는 이질감. 어쩌면 지금 한국은 또 한번의 어마어마한 붕괴와 다시 일어설 희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볍지 않지만, 쉬이 놓치고 지나갔던 한국 사회의 태동기 모습을 엿보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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