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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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도 되니? 들어가도 된다고 말해줘."

표지 속 소녀가 말을 건다. 너의 안으로 들어가도 되냐고. 거부할 수 없다. 가녀린 몸, 갈구하는 눈동자(보이지 않지만). 어느새 고개는 끄덕, 입은 "들어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소녀는 내 안에 침투했다. <렛미인>(문학동네.2009)이란 끝나지 않을만큼 긴 이야기를 가지고.

 

뱀파이어 소설. 여지없이 피가 등장하고, 어느정도 문란함이 예상되는 어른의 장르. 그러나 <렛미인>의 주인공은 소녀 혹은 소년이다. 물론 소녀의 주위를 끊임없이 맴도는 어른이 있지만 그 속을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세계, 즉 피터팬 세계의 어둠 버전이 스웨덴의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더 위험하고 고독한 아이들의 세계에 이질적인 존재 -엘리가 등장하면서 블라케베리의 조화는 깨지기 시작한다. 서서히 그러나 눈에 보이게.

 

뱀파이어 소설의 색은 붉거나 검다. 그러나 <렛미인>은 하얗고 푸르다. 인물들의 마음이 너무나 얼어있어서 피조차 붉을 수 없다는 듯.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학교 안에는 냉정한 공기만이 떠돌 뿐이고, 아이보다 노인이 많은 교외의 주거단지에는 처량함이 감돈다. 아이들은 풀밭이 아닌 언 눈덩이 위를, 차가운 냉기의 지하실을 돌아다닌다. 렛미인의 따뜻함은 일상적인 인물이 아닌, 뱀파이어-엘리로 인해 나타난다. 벰파이어가 따뜻함을?

 

학교에서 괴롭힘을 받는 왕따 소년 오스카르, 매일 상상으로 나무에 칼질을 하는 그에게 낯선 친구가 생긴다. 밤에만 만날 수 있고, 초대를 해줘야 들어올 수 있으며, 추운 겨울에도 옷 한 겹만 입는, 루빅스 큐빅을 잘 맞추는 가녀린 여자아이. 한편 그 즈음 블라케베리 근교에서 살인사건이 연이어 터진다. 피가 사라진 시체, 염산으로 얼굴이 뭉게진 남자, 죽었으나 다시 살아난 시체, 만신창이가 된 채 피를 갈구하는 여자... 조용하던 스웨덴의 교외 지역은 소란스러워진다. 그 중심엔 언제나 엘리가 있다. 그러나 혐오스럽다면서도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하는 오스카르. 점점 그들에게 엮여오는 사건. 오스카르와 엘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렛미인>에선 기존 뱀파이어 소설의 잔혹함, 문란함, 재미를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이건 뱀파이어 소설이기 전에 한 편의 슬픈 동화니 말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몸만 커버려 여전히 아동을 갈구하는 남자 호칸의 엘리를 향한 사랑은 무섭다. 엘리가 여자아이가 아님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오스카르를 보는 건 슬프고. 그 애정에 답이 없을 것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더욱.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하면서 누구와도 진짜 애정을 나눌 수 없는 엘리의 고독에는 감정을 느끼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막연함. 그게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일지도.

 

책을 봤다면 영화를 꼭 보길 권한다. 책이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라면 영화는 액기스만을 쪽 뽑아내 만든 상징시이니. 소설에서 느끼던 서늘한 푸른빛을 눈으로 만나는 즐거움은 책 이상의 감동을 전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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