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결론에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뭐가 됐든지 간에 두 개가 있으면 그중 하나만 맞는 거'라고 단언하는 주인공 루크레시오 앞에 깜찍한 소녀(혹은 소년)가 날리는 한 마디다. 이거든 저거든 모두 다일수도 있는데 왜 구지 하나에 집착하냐는 날카로운 한 마디. 어쩌면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날리고 싶었던 한 방이 이 한마디에 다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앉아서(혹은 누워서) 주는 이야기만 냅다 받아먹지 말고 니들도 생각이란 걸 좀 해보라며 도발적으로 나오는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문학동네.2009). 이 책에는 도통 정해진 결말이란 게 없다. 이건가 싶으면 동시에 저거가 되고, 저건가 싶으면 동시에 그거가 된다. 아니 무슨말이냐고? 나도 좀 묻고싶다. 도대체 어쨌다는거야?!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의 주인공은 좀도둑 루크레시오. 도둑질하러 간 집에서 그는 한 소녀(혹은 소년):칼비노로부터 '아빠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제안인지 협박인지!). 결국 머리 박박 밀고 칼비노와의 동거에 들어간 그. 그러나 그가 들어간 집은 왠지 어둠의 기운이 가득한데... 장 속에서 깊고 어두운 공간을 발견하질 않나, 식품 저장고 냉동실 안에 시체가 있질 않나. 루크레시오는 자신이 미쳐가는건가 하면서 야릇한 일상에 빠져들어간다.
결국 어째어째 이상야릇한 집에서의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지어지고 책도 슬슬 끝나가나 싶은 순간! 아뿔싸, 다시 프롤로그라고? 에필로그를 잘못 읽었나 눈 씻고 다시 봐도 역시 프롤로그다. 그렇다고 이 얘기가 무슨 구운몽마냥 하룻 밤 꿈 이야기 이런 건 아니다. 다만 루크레시오의 이야기가 또 다른 작가에 의해서 이야기로 쓰여지고 있었던 것. 아니 뭐면 어떤가. 어쨌거나 소동은 끝이났고, 루크의 삶도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는데.
이 것도 리뷰냐, 이런 뒤죽박죽,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 리뷰 따위! 라며 돌 던지진 마시길. 엉킬데로 엉키고 정신없는, 도대체 답이라곤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책의 리뷰라면 응당 그 틀을 따라야 하는 게 순리. (라고 합리화라도 하고싶은 심정인거다.) 그렇다. 이 책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불친절하다. 처방만 해주고 복약지도는 해주지 않았달까. 아무리 100% 회복약이라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안 알려주면 난감하다 이 말씀.
저자는 이것도 저것도 확실한 건 없다며 답변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 내기는 독자의 몫?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왜냐, 세상 만사에 꼭 그것뿐인 답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래도 굳이 '나에겐 하나뿐인 답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또 다른 루크레시오가 있다면 지금 당장 처방 받으러 서점으로 달려갈 것. 음, 어디보자. 당신은 하루에 8페이지면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