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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개봉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며 책 한권을 꼽는다. 지금으로부터 150여년전에 쓰여진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문학동네.2009)이다. 삶의 행복보다는 어둠, 악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책을 집어든 순간 뭉크의 흡혈귀가 나를 맞이한다.
이 책에 흡혈귀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랑스 파리 뒷골목이란 팍팍한 현실 위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내용이다. 그러나 주인공 서로가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흡혈귀의 이미지는 테레즈 라캥을 대표한다고 할수도 있겠다.
책의 주인공은 의욕없이 살아가던 여인 테레즈와 마초 느낌의 우락부락한 사내 로랑. 테레즈는 병약한 사촌 카미유와 결혼하고 파리 뒷골목 잡화점 어둠 속에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카미유의 친구 로랑과 마주하고 속에 숨겨져 있던 욕망이 터져나온다. 욕망에 몸을 불태우던 테레즈와 로랑은 결국 카미유 살인을 공모하고 완전 범죄로 끝내버린다. 그리고 결혼. 이젠 행복만이 자신들을 기다릴거라 생각하는데... ...
가장 행복해야 할 첫날 밤. 그들 사이에는 이미 죽은 카미유의 혼이 자리잡는다. 기대했던 행복은 오간 데 없이 이제 그들 사이엔 공포와 서로에 대한 증오 뿐. 서로의 영혼을 보듬어줘야 할 결혼은 오히려 매일같이 서로의 영혼을 파괴하며 이어진다. 결국 괴로움에 요동치던 그들은... ...!
서로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망을 순식간에 식게 만드는 공포의 감정. 그건 결코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자신이 한 인간을 죽였다는 죄책감, 공포심은 이미 세상에 존재치 않는 영혼을 그들 사이에 불러들이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해간다. 육체적 폭력이 오히려 위안이 될 정도의 극한 괴로움. 그걸 끝내는 건 결국 죽음뿐이다. 죽음이 불러들이는 죽음.
처음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 평론가들이 공격했듯이 지금 시대에도 이 책은 불편하게 읽힐지 모른다. 사실 이 이야기는 다소 극단적이다. 그러나 겉으로 멀쩡한 척 다니는 사람들의 속에 테레즈가, 로랑이 있지 않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저자인 에밀 졸라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 이라고. 우리는 사람이라는 가면 아래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때론 그 안에 숨겨진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악을 들여다볼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 때서야 비로소 그 반대인 빛과 삶에도 충실할 수 있을테니. 무섭도로 깊은 심연이었지만 읽고 나니 오히려 개운함을 느낀 건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만나보길 바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