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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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이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이 된다. 가능한 명제일까? 겉으로 보기엔 오류가 있는 문장이다. 한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스파이를 생각해볼까? 실제 소속은 원 국가로 되어있으나 외양적인 삶은 스파이로 살아가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 이게 바로 동시에 두 사람으로 살아가는 가장 적절한 예가 아닐까. 그런 경우 그는 어떤 존재로서 정의되는 게 맞는걸까. 원래 소속으로서? 아니면 스파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더나이트>(문학동네.2009)를 이끌어가는 화자 하워드 W. 캠벨 2세가 그러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겉으로 드러난 캠벨은 나치 전범이다. 나치에 열광하며 그들의 사상을 전파한 방송인이다. 직접 총칼을 들고 싸우지도,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을 죽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에게 캠벨이란 이름은 그보다 더한 나치로 기억된다. 요컨대 사악한 개자식.

 

그런데 그가 고백하기를 자신은 스파이란다. 미국의 은밀한 명을 받은. 방송 중에 위에서 내려온 지령을 방송 실수 등으로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이쯤되면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인지 알법하다. 바로 캠벨이 밝히는 '나는 사실 스파이였습니다'의 고백록이다. 의문이 생긴다. 스파이라면 전후에 그 사실을 증명받고 원래의 삶으로 복귀하면 그만인데 그는 왜 도망치고 숨어다니는걸까.

 

알고보니 그에게는 스파이로서의 활동을 증명해 줄 사람이 없다. 유일하게 캠벨의 임무를 아는 사람은 그가 '푸른 대모의 요정'이라고 부르는  '프랭크 위르타넨' 대령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유령같이. 캠벨은 스스로 미국인이고, 나치가 아님을 알지만 주위 사람들 모두가 그를 나치라고 인식하는 상황. 과연 그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걸까.

 

한 사람의 본질, 그리고 가면. 그 이중성의 오묘한 관계를 커트 보네거트는 명쾌하게 표현한다. 유일하게 그의 본질을 아는 대령과 캠벨의 대화 중엔 이런 말이 오간다.

["그것도 당신의 실체였소." "그건 내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누구였든,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한 개자식 중 한명이었지." "내가 나치였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렇소. 믿을 만한 역사가라면 당신을 나치가 아닌 무엇으로 분류하겠소?"] p.244-245

구분은 필요없다. 이런 캠벨도, 저런 캠벨도 모두 그 자신인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거다. 어떤 모습으로든 그 시간을 살아낸 건 캠벨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책의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치, 존재의 이중성, 전쟁과 인종에 대한 양극의 시각. 그러나 책이 전하는 느낌은 오히려 가볍다. 그 안에 사람들이 쉬이 넘길 수 없는 날카로움은 존재하지만 읽는 이까지 가라앉게하는 무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게 바로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유머 폭탄이란거군!' 하고 느꼈다. 설명이 필요없다. 일단 한 번 만나보면 다시 빠져들 세계. 그게 보네거트의 매력이 아닐까.

 

내 말에 믿음이 안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가 악에 대해 한 멋들어진 문장 하나를 소개하며 마쳐야겠다. 작가라면 이 정도 재치와 통찰 정도는 겸비해줘야지. 정말 읽을 맛 나게 하는 글쟁이다.

[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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