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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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소, 나는 여기가 좋소. 여기가 생에 찌든 곳이어도 좋고, 세상이 나를 홀대해도 좋소. 나 갈 곳 여기 한 군데이니, 나를 예서 떼내려하지 마오. 나는 예서 이리 살라우. 혹시 아우. 별볼일 없는 이 곳에도 뭔가 싹이 틀지.'

한창훈이라면 이리 말하지 않을까. 바다 사나이라는 그가 풀어내는 자신의 동네 이야기(바다 이야기)는 쓸쓸하고 비참하다. 바다는 예전처럼 우리에게 살가움만을 주는 곳이 아니다. 살기는 힘들고, 일거리는 떠나보내고, 그러다보니 식솔도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자가 있으면 들어오는 자도 있는 법. 바다 한가운데 섬 동네에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도, 사랑도 있다. 그러니 그라면 이러겠다. 나, 그냥 예서 살라우.

 

한창훈은 '바다와 섬의 작가'라 불린다. 그 동안 꾸준히 낮은 곳의 사람들을 그려냈다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고집을 부린다. 그의 소설엔 명품도, 커다란 집도, 그 흔한 문화생활 한번 접할 길 없다. 고요하고 때론 심술맞은 바다, 사람들을 묶어놓는 섬, 작은 동네 하나면 충분하다. 더해 구수한 사투리 몇 마디 보탤 인물 서너명이면 준비 작업은 끝이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뻔하디 뻔한 삶의 이야기가 녹아나온다.

 

어쩜 이리도 궁상맞을까 싶게 바다와 섬 사람들은 힘겹게 살아간다. 빚더미에 올라, 마지막 남은 배까지 팔며. 그럼에도 자기 자식들은 뭍으로 보내겠다고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그렇게들 살아간다. 때론 그 고단한 일상에 뭍사람들의 죽음이란 흔치않은 소동도 더해져가며. 바다에 묻혀 큰 소리 한 번 안내고 굽실대며 살아간다. 그래서 한창훈의 소설은 유쾌하지 않다. 삶의 이야기니 묵직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한 편씩 이야기를 읽고 책을 덮을 즈음이면 미소가 번진다. 그리 힘들게 살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미래를 향한 의지와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때론 과거의 행복한 기억이 오늘,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한 동네에 함께하는것만으로 삶에 힘을 불어넣어줄 수 도 있고, 타인의 죽음을 통해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살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젊음이 있다. 요즘은 농어촌에서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곳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바다, 섬은 시대에 뒤떨어진 벌판이 아닌, 삶을 위한 장소다. 도시에서처럼 사랑도, 일에 대한 열정도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

 

이 책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장면도 그 젊음이다. '아버지와 아들'에 나오는 아들은 뭍에 나갔다가 결국 내 터전은 여기요, 라며 섬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씩씩하게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 섬은 아들이 꿈을 키워갈 베이스진지다. '올 라인 네코'에서는 마음을 닫은 한 여자 미정이 사랑에 빠진다. 빨리 빚 갚고 뭍으로 나가야겠다는 미정을 붙든 건 단순하게 밀어붙인 섬사내 용철. 도시에서처럼 이리재고 저리재기 없이 사랑에 빠진 순수한 남녀의 모습이 바다의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그들은 이 섬에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거다.

 

첫날 밤, 용철이 미정에게 던진 한 마디가 파문이 되어 울린다. '올라인네코'. 배타는 사람이면, 섬 사람이면 알 법한 이 단어. 미정을 속박하던 모든 걸 마법처럼 풀어냈듯이 나에게도 일상으로부터의 자유를 건네주길. 아무래도 오늘부터 '올라인네코' 전도사가 되야겠다. 아, 도대체 '올라인네코'가 뭐냐고? 답은 책에서. 힌트는, all line let go!

 

바다든 섬이든 산골짜기든 도시든. 어디에서나 사람 사는 모습은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딴 곳으로의 꿈을 꾸기 대신 한창훈과 같이 말해보련다. '나는 여기가 좋다'. 내뱉고 나니 정말로 내가 발디딘 여기가 좋아지는 기분이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가자 오늘을. 마법같은 주문 '올라인네코'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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