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당신의 아들이 강간을 저질렀다면? 혹은 당신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여느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지 모르겠다.

["... 그런 바보 같은 일로 아드의 일생을 망친다고 생각하면 엄청 실망하겠지. 부모로서는." "딸? 딸이 강간당한다고?" "그, 그런 놈은 때려죽여야지."] (p.192)

대부분 처음에는 "이런 이기적인 사람을 봤나!" 의 반응을 보일테고, 조금 생각을 한 후에는 "그렇겠네." 라고 손쉽게 수긍할지도 모른다.

 

강간이란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건 후가 판이하게 다르다. 여자는 피해자임에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왜 처신이 그모양이었냐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즈음 옛 사건의 흔적이 틈을 비집고 나온다. 한편 남자는 우스갯 소리로 치부되버린다. 젊음의 치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분명 범죄자지만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죄질은 여자의 그것보다 가볍다.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 <사요나라 사요나라>(노블마인.2009)는 과거 속에 묻힌 강간 사건을 끄집어낸다. 사건의 발달은 한 시골 마을에서의 아동살해사건. 죽은 아이의 엄마가 범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옆집 남자 오자키 슌스케가  물망에 오른다.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와타나베는 조사 중 오자키과 관련된 과거 야구부 집단강간 사건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기억 속 사건이 뭍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강간을 바라보는 남녀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이 흥미로웠다. 사건만으로도 참혹한 기억을 갖고 살아야 하는 여성 피해자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불행해져 간다. 반면 남자 가해자는 나쁘지 않은 순탄대로다. 우리의 이성은 죄를 진 사람은 벌을 받고, 피해자는 동정을 받으며 결국 사회의 품에 안락히 기대야 할 것 같은데. 소설이 보여주는 사건 후의 상황은 전혀 반대다.

 

뭐 이런 게 다 있냐며 주먹을 부르르 떨려던 차에 맥없이 손을 내리고 만다. 그런 사조가 우리 사회가 짊어가고 있는 풍경인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식의 사고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았다. 욕할 것도 없이 모두가 같은 사람인 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던 기자 와타나베의 대사는 이런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 혹시 좋아하게 된 여자가 그런 사건을 당했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 보통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여자니까 남자로서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건 단지 허울 좋은 소리 아닐까요. ... 그런 일을 당한 여자를,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여자와 똑같이 바라볼 수 있을까. ... 왠지 누군가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 (p.107)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이렇게 편협함을 저자는 시종일관 담담히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무심함에 질리도록 소름끼친다.

 

결국 이야기의 끝은 요시다슈이치스러운 사랑 운운하는 결말이다. 아, 갑자기 왠 사랑 이야기냐고? 사회 문제를 통렬히 꼬집은 소설이지만 평소 연애 심리를 잘 포착해내는 그답게 이번 책에서도 숨겨진 사랑 이야기가 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불행하기 위해 함께한다고 말한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여자는 떠나가지만, 남자는 여자를 붙잡을 의지를 보여준다. 불행을 넘어 이젠 행복해지기 위한 만남을 준비하는 남자 오자키. 어쩌면 이 다음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가 그들 앞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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