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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엽서 - 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비밀고백 프로젝트 ㅣ 포스트시크릿 북 1
프랭크 워렌 지음, 신현림 옮김 / 크리에디트(Creedit)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JUST HERE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한 문장이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곧잘 잊어버리는 한 문장이다. 과거는 지나갔기에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걱정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을 버리는 것인데 왜 그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잊어먹는것일까. 이 책, <비밀엽서>에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과거의 짐을 용감하게 세상 밖으로 떠나보낸 이들의 앙큼하고 도발적이며 가슴 철렁한 고백들이 가득하다. 후다닥 넘기면 십여분이면 다 볼 수도 있는 책이지만, 미리 읽어본 사람으로서 감히 충고하건데, 한 문장 문장, 그들이 그린 그림, 붙인 사진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권한다. 바로 그 안에 우리 자신도 숨기고 꺼내지 못하는 비밀이, 풀어내지 못한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어있으니 말이다. 아니라고? 일단 한 번 들여다보길 다시 한 번 권한다.
이 책에는 글씨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이어진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페이지 혹은 반 페이지. 때론 두 페이지에 걸쳐 우리는 한 장의 엽서를 볼 뿐이다. 보낸 이의 그림과 글씨로 채워진, 혹은 어딘가에서 오려 붙인 사진, 그림, 글씨들이 책장을 덮고 있다. 처음 보면 이게 뭔가 싶은데 가만히 내용을 찾아서 들여다보면 곧 '헉' 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사람들이 은밀하게 보내온 엽서에는 차마 일상생활에서 꺼내 놓을 수 없는 파격적인 비밀이 숨어있다. 물론 모든 비밀이 자극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슴 아프게 절절한 내용도, 무심하게 흘려보낸 내용도 있다. 바로 위의 엽서처럼 단 두 단어만으로 읽는 이의 머릿속을 요동치게 하는 엽서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만하다. 도대체 왜? 우리는 남의 비밀을 읽고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비밀 공유하기를 좋아한다. "너한테만 말하는거야, 비밀이니까 꼭 지켜야해, 우리 둘만의 약속이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들일 것이다. 학창시절, 아니 성인이 된 지금에도 이런 말들은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사라질 줄 모른다. 정작 그 비밀이란 녀석은 어느 새 틈을 빠져나와 공공연한 가십거리가 되곤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이자, 프로젝트의 발기인인 프랭크 워랜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보내라고 해보는거야. 서로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 타인의 비밀을 엿본다는 것, 누가 볼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의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것.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과연 사람들은 그의 이 엉뚱한 생각에 동조했을까? 물론이다. 그것도 불티나게!
이 책은 그 비밀 공유하기 프로젝트의 사소한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당신이 그 놀라운 비밀 공유하기 체험을 하고 느껴볼 시간인 것이다. 겨우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몇 줄 읽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일단 읽어보시길. 그 효과와 놀라움은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일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한다는 말을 한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너의 상황을 알 것 같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내가 온전히 네가 될 수 없는 게 당연하 듯 타인의 감정에 100%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타인에게 공감해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대는 것일까? 그건 '나는 너를 알아' 가 아닌 '너의 감정을 나도 느껴본 적이 있어'의 느낌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모가 보이는 자매 사이에서의 편애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은 특정한 사례로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제 엄마랑 언니랑 옷을 사러 갔는데, 나는 세일하는데서 사주고 언니는 비싼 옷을 사준거 있지." 라는 식으로. 그런데 그걸 들은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다. "아, 나도 전에 그랬어. 내가 뭐 먹고 싶을 때는 들은 척도 안하면서 언니가 먹고싶다면 바로라니까." 라고 대꾸하면서. 분명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르지만 대화 사이에 피어오른 감정은 크로스되었다.
바로 이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엽서들에는 짤막하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수많은 엽서 중 단지 몇 개에서라도 당신은 당신의 경험과 생각이 크로스되는 지점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자기도 모르는 새 공감하고 치유되는 신기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힘이 들 때, 그저 문득 페이지를 넘겨보길. 우연히 자신의 감정에 맞는 엽서를 찾는 순간,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당신 안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킬지 모르니 말이다. 누군가와 나의 감정을 교차시킬 수 있다는 것, 쉽지 않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을 통해 당신도 꼭 그 감정을 느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