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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역시 프랑스 소설! 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책, <붉은 애무>를 만났다. 다소 생뚱맞게 시작한 이야기는 점점 주제를 부각시키고, 독자가 나름대로 수긍하려는 순간 어퍼치컷을 날린다. 이게 결말이라고! 라면서. 다음에는 예상하고 읽어야지 하면서도 매번 프랑스 소설을 만날 때마다 책을 마친 후에는 벙찐 상태로 허공을 바라본다. 아!
아니, 무슨 소리를 혼자 지껄이고 있는거야? 라고 묻는다면 아직 결말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라고 대답한 후 다시 한 숨 고르고. 일단 심상찮은 저 제목 <붉은 애무>는 일단 각자 상상하고. 나름, 아니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소설을 이끌어나가는데 있어서가 아니라 결말에 있어서.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펠릭스는 어느 밤 한 고객의 전화를 받는다. 임대주택에 불이 났다는 주인장,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살던 한 모자가 불과 함께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펠릭스는 이 사실에 집착한다. 과연 그녀와 그 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에 대해. 읽다보니 그 답이 조금은 나오는 듯도 하다. 얼마 전 사랑스런 외동아들 콜랭이 죽은 것이다. 동정과 연민의 시선, 말이 쏟아지는 걸 참을 수 없는 펠릭스는 결국 회사에 휴가를 낸다.
아들과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오가는 가운데 이야기는 진행된다. 아들이란 선물을 남겨두고 떠난 그녀, 마리. 이제 둘만 남겨진 부자지간은 그들만의 삶을 구축해나간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모든 사랑을 주려는 아버지 펠릭스. 그는 왜 그렇게 아들을 향한 '사랑'에 집착하는 것일까.
펠릭스의 과거로 돌아가보니 그에겐 단 한순간도 '아버지'란 존재가 없었다. 받지 못했기에 제대로 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사랑. 결국 모든 걸 한 없이 주려는 모습에 콜랭의 선생님 몽테이 양은 말한다. "마레스코 씨, 목소리와 몸짓을 통해 전해지는 그 과도한 애정도 긍정적이진 않아요. 제 말 믿으세요, 아버지가 아들을 꼭 껴안고 속삭이는 '아이고, 내 새끼' 는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도 있어요."
과도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본다. 아, 엄마를 찾는 아들에게 펠릭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까지를 도맡는다. 평소에 싫어하던 가녀린 팔목과 왜소한 발목, 가발을 쓰면 마리와 똑 닮아지는 모습. 그렇다, 그는 콜랭의 '엄마' 가 되었다.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행복하다 믿는 부자지간. 그러나 그 행복은 어느 일요일 오전 갑작스레 찾아온 마리로 인해 산산이 깨져버린다.
꾸며진 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에게 가버린 아들, 그런 아들을 보며 질투를 느끼는 아빠. 마지막 변신을 한 그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는걸까.
이 책을 읽기 전 뒷표지에 나온 문구를 보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아버지나 어머니는 사회적인 규칙일 뿐,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오랜 시간 지속된 통념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걷잡을 수 없는 광기? 부모의 모습에 무슨 광기가... 라고 반문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펠릭스의 광기는 광기를 넘어선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엄마로의 전환은 건너면 안되는 강이었던 것이다.
이미 정해져버린 사고의 단단함에 몸서리쳐진다. 한 인간의 사랑으로 덮을 수 없는 무섭도록 견고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틀. 그럼에도 사랑으로 모든 걸 덮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 수많은 글과 영상과 생각들에 한 표를 던지는 나는 너무 순진한걸까, 긍정적인걸까. 판단은 다음 독자인 당신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