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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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오후, 이 사과를 드립니다. 라는 정갈한 글씨와 함께 내 품에 안겨온 <사과의 맛>. 처음 만나는 작가이기에 책을 펼치는 느낌 또한 남다를 책이었다. 혹여나 '이 책으로 좋은 작가를 놓치면 어떡하지' 란 걱정과 푸른 빛 표지마냥 달달하고 조금은 쓸쓸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반반씩 섞인 채로 책을 펼쳤다.

 

'포스트모던 세예라자드, 오현종' 이란 문구가 혹여 과장된 광고문구는 아닐까 싶은 마음을 갖고 차례를 보니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인어.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인어공주를 보고는 그 아픔과 사랑에 오랜시간을 아껴온 동화였기에, 작가 스스로도 가장 아프게 썼다던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 를 첫 시작으로 삼았다.

 

어떤 이야기이길래 작가가 쓰면서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인어공주라고 하면 디즈니의 해피엔딩 스토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인어공주는 그 어떤 동화보다 슬프고 애잔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찢어질 듯한 다리의 고통을 감내하지만 결국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인어공주의 이야기. 자신보다 상대가 깊은, 불쌍할만큼 순진하고 아픈 사랑이다.

 

바로 그 슬픈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이 '연못 속에는 인어가' 다. 인간 세상에 태어난 인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그에게는 진짜 생명의 은인이 나타나고.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지중해나이트에서 인여쇼를 공연하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린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목매기. 아무것도 모르고 오늘도 편지를 쓰며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에 눈물 한 방울이 오롱진다.

 

동화를, 신화를 빌려 엮어나간 9편의 이야기는 싸한 아픔을 전해준다. 행복해야할 것 같은 동화의 끝은 언제나 행복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끝이 난다. 교묘하게 동화의 플롯과 현대생활이 뒤섞인 속에서 세월이 변해도 변치않는 삶의 아픔이 비친다.

 

우연은 사실 계획된 계략이며, 한 때의 열정적 사랑은 곧 식어 후회를 남긴다 (상추, 라푼젤). 생활을 위해서는 가족도 제몰라라 한다. 정, 사랑은 이리저리 치이는 삶 속에 이미 온데간데 없다 (헨젤과 그레텔의 집). 교묘하게 위장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연극과 같은 삶은 실수 하나에 깨어지게 마련이고 (연금술의 밤), 한낱 오만한 꿈은 결코 현실로 안착하지 못한다 (연목 속에는 인어가).

 

세월이 변해도 여전히 우리는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고, 절대싫어를 외치던 사람과 동고동락하며 쓴웃음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열역학 제2법칙).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잊은채 현실에만 급급하고 (창백한 푸른 점),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대다 삶이란 외줄타기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곡예사의 첫사랑). 참아온 분노가 일시에 터져나올 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지도(닭과 달걀).

 

누군가 동화란 정말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라 말했던 것도 같다. 현대판으로 재해석한다해서 지워질리 없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동화가 무섭도록 일상적이게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상의 포인트를 찝어 다양한 맛으로 들려준 오현종. 포스트모던 세예라자드란 말이 아깝지 않다.

 

우리 속의 또 다른 우리를 보여준 그녀의 사과의 맛은 달콤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녀가 건네준 사과를 씹어먹는 건 독자의 몫. 조금 아프고 섬뜩했던 내 사과의 맛과는 달리, 누군가는 쌉쌀한 달콤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제, 당신의 사과의 맛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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