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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 어느 곳에는 소금으로만 이루어진 사막이 있대요. 끝없이 하얀 소금만이 펼쳐진. 봐도 봐도, 눈 씻고 다시 봐도 하얀 소금뿐이 안 보이는 그런 사막이 있대요. 그 곳에 비가 내리면, 호수가 된대요. 그리고 하늘 위로 우리는 지나갈 수 있대요.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테오의 조근조근한 말에 이끌려 여행한 볼리비아. 그리고 소금사막. 당신도 가보고 싶지 않나요?
여행 사진 에세이집이다. 여기까지 설명한다면 그간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외국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 좀 찍고, 글 좀 쓰는 사람이 전해주는 여행 이야기. 조금은 시샘 어린 대리 만족의 기분으로 읽어 내려가는 그런 책들. 그런데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고?
하나, 보는 법이 다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베개 하나가 필요하다. 편하게 소파든 침대든 몸을 깊숙이 뉘여 앉아 베개를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가로로 책을 올려놓고 하나 하나 들춰가며 읽는 거다. 둘, 말투가 다르다. 대부분 책에서는 -다, 로 끝나지만 테오는 정중하고, 다정다감하고, 착하다. 이제 막 친해져가는 사람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해주듯 -합니다, 와 -요, 로 끝난다. 왠지 책을 읽으며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아, 네, 그렇군요, 라면서.
테오의 두 번째 에세이인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은 테오의 볼리비아 여행기다. 우리보다 객관적으로 못 살지만 주관적으로 마음이 참 풍요로운 나라 볼리비아의 사람들 이야기다. 테오가 만난 볼리비아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지금 이 상태가 좋아요" 라면서 변화를 이해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삶은 너무나 자연스러우므로. 그들이라고 왜 불평이 없겠냐 만은 그럼에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에 참 부끄러웠다. 그들보다 많이 가지고서도 끊임없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아쉬워했기에.
테오의 여행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며 미래를 깨우치는 잉카 예언술에서 시작한다. 제멋대로 녹아 내린 은을 보며 테오는 어떤 미래를 봤을까.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은 덩어리를 보며 내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무엇이든 말해주는 걸 듣고 적기에 바쁜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꾸려나가는 힘조차 서서히 녹아 내리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숨 걸고 지나가는 죽음의 도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꼬추나 폭포를 보며 테오는 서서히 깨닫는다. 여행의 의미를 하나 둘 찾아나간다. 아니 오히려 그런 의미들 따위 하나 하나 버리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볼리비아의 많은 것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소녀들 그리고 소년. 행복해야 할 상황이 아님에도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피어 오른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도 그 넓은 자연 속에 내던져지면 조금씩 도시사막의 때를 벗겨내고 맑은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
분명 이 책의 주인공은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이 책을 본 다른 누구들과 마찬가지로 그 신비로움과 평화로움에 놀랐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우유니 소금사막이 아니었다. 긴 여행 동안 마주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여행 그 자체였고, 테오 에세이의 주인공이었다. 새로운 지명들, 이름들을 만날 때마다 입으로 소리내어 따라 불러 보았다. 다 외우진 못하겠지만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다. 더운 여름 날, 기분 나쁜 날, 내가 한 없이 싫어지는 날. 그 모든 날들에 그들은 내 삶을 돌아보는 녹아 내린 은이 되리라.
끊임없이 사람과 소통하는 테오. 그가 이 곳, 볼리비아와 우유니 사막을 다시 찾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다시 찾아가는 날 소금 호텔에서 소금기 가득한 파티를 여는 날, 그에게 부탁하고 싶다.
테오,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주세요. 당연히 응하고 말고요. 소금 호텔에서의 하룻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