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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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하면 IT강국, 인터넷, 조선사업, 자동차, 반도체 등이 떠오른다.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몇 십 년 전의 고생을 뒤로 하고 세련됨, 모던함으로 무장한 듯 보인다. 도심에는 아찔한 빌딩들이 그 키를 자랑하고, 못 먹는 게 아닌 안 먹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십 년간의 변화다. 
 

그런데 여기 아직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한 총각이 자신의 이야기라며 지난 이야기들을 슬금슬금 꺼내놓는다. 도심 속에서 밭고랑 매는 할배, 공원에서 풀 뜯는 할매 이야기로 시작하는 야그 보따리는, 그야말로 오래된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하다. 불과 30여년 전에 태어난 그의 삶이 뭐 그리 곤궁하고 어려워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 걸까 싶기도 할 정도로.
 

솔직한 말로 내 삶이 그랬다면 그처럼 바르게 자라나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악 소리 나는 삶이다. 몇 십년 전으로 흘러 내려간 듯한 삶의 단편들. 도시로 나와 케이크 한 조각에 눈이 동그래지고, 2백 원 노트 값 달란 말을 못하는 삶, 말로만 듣던 누나들의 고생, 아버지의 폭정 등등등. 도대체 그 삶 어디에 행복 쪼가리라도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다. 최규석 작가의 그림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슬프고 짜증나는 일임이 분명한데 그저 슬슬 읽힌다. 가끔은 픽 하고 웃음도 나고, 거실에 혼자 앉아 읽다가 큭큭거리며 괜히 엄마한테 "이거 꼭 읽어봐~!"라며 소리도 한 번 지르고. (내가 다 읽고 내려놓기 무섭게 엄마도 앉아서 정좌하고 읽기 시작하더니 고도의 집중력 발휘 삼십 분 후 다 읽었다며 소리질렀다.) 
 

그럴 수 밖에! 그 힘든 이래 저래한 일들 사이 사이 아이다운 톡톡 튀는 감성과 구수한 이야기들이 살곰살곰 숨어있다. 아부지, 엄마의 달달한 젊을 적 사랑 이야기(거 참 답답한!)도 있고, 밝혀지지 않는 진실 속 서로 다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나다. 엄마의 목숨 걸고 귀신 잡은 아부지 이야기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3초 고민하다 웃게 만들고. 큭큭. 
 

이게 또 다인가 하면 아니다. 제목의 언발란스함이 전해주는 사회 통념에 대한 고찰 또한 담겨있다. 아니 너무 거창한가. 울고 웃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생각도 하게 만든단 거다 이 책.

 
만화 어디 즈음에 있었던가, 인터뷰 글에 있었던가. 작가의 입을 통해 나온 말 중 이런 말이 있더랬다. 역사로는 중세, 근대, 현대가 딱 나뉘어져 있어도 사람 삶은 그렇지 않다고. 80년대 TV있는 집도 있고, 밥 굶는 집도 있고. 지금 20대 중에서도 자신 같은 어린 시절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듣고 보니 그렇다. 세상이 바뀐다고 그 많은 인구가 모두 변하는 게 아니니.

 
다 읽고 나면 짠하다. 아니 짠하다고 말하면 너무 건방지겠다. 결국 그런 삶 근처도 경험하지 못한 나의 어설픈 동정심일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최규석 작가에게 참 고맙다. 분명 존재하지만 자신들의 삶이 거부되는 그들의 모습을 알려주어서. 아, 그들의 밝은 웃음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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