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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전 우주 안에서 보면 작은 땅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지구에는 퍽도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비단 그 큰 지구라는 땅데기를 놓고 볼 필요 없이, 그 중 쬐그만 한국이란 나라만해도 오만 사람이 모여 산다. 그러나 역사가 그러했듯, 지금 세대에 와서도 기록으로 남아 오래 전해질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몇 프로나 될까.
그러면 지금 살아가는 우리는 다 보잘 것 없는 삶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않다. 주위를 한 번 흘낏 돌아보기만 해도, 우리 주위에 있는 대다수 사람은 대단치 않은 범인들뿐이다.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테니, 어찌 소홀히하랴.
잠시 눈을 돌려 먼 조선시대로 흘러가보자. 지금보다 더한 신분제사회에서 소수의 특권계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갔다. 지금의 우리가 보자면 재미 하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수광이란 사람이 그 범인들의 세계를 홀딱 뒤집어깐다. 범(凡)인이 비범(非凡)해지는 순간이다.
제목부터 잡스럽기 그지없는 <잡인열전>에는 당대 조선사회를 놀라게 한 24명의 잡인들이 한 자리씩 자리잡고 앉아있다. 저잣거리의 즐거움을 누리며, 당대를 유쾌하게 만든 이가 있는가하면, 넘치는 색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해피닝도 빼놓을 수 없다. 고아한 선비들의 세상으로 알고있던 조선 시대이지만, 그 뒤로 까는 호박씨는 여느 정치판 못지 않아 부정과 사기가 팽배하고, 이는 저잣거리에서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세도를 휘어잡은 대단한 양반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넘치는 끼와 재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자들이 있었으니, 의술적 능력을 십분 발휘해 한양의 마마를 물리쳐내기도 하고, 그야말로 걸판지게 제대로 놀아주기도 한다. 그 뿐인가. 때로는 자신의 권력과 세도를 내어놓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따라 정처없이 떠도는 이들도 있으니, 가끔은 읽다 '내가 읽고 있는 게 조선의 이야기가 맞나'하고 앞을 뒤적뒤적이기도 한다.
하나로 묶을래야 묶을 수 없는 각각의 특성을 지닌 그네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참 멋있어 보인다는 점. 왜 안 그렇겠나. 좋던 나쁘던간에 한 가지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울 수 있었으니 부럽고, 그 열정에 자신을 몰입할 수 있었을테니 박수받아 마땅하겠다. 점점 다양해지는 이 사회 속에서 진정 자신이 몰두할 것을 찾아 몰입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광인과 같은 삶은 이상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온 24명 잡인들이 하나같이 바람직한 삶을 산것만은 아니었다. 넘치는 색에 오만 방종을 저지른 여인네들을 어찌 칭찬할 수 있겠으며, 쇳덩어리로 먼길 온 시골부자들을 골탕먹인 사기꾼들이 어찌 용서를 받을까. 그럼에도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겁다. 그 건 이미 오랜 시간이 그들의 죄는 덮고, 즐거운 재담만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보다 더한 세도가들의 술수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의 붓을 따라, 목소리를 따라 걸음걸이를 옮기다보면 에구야, 벌써 종착지다. 일단의 아쉬운 만남이 끝나니 또 다른 잡인들의 삶이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조선조 유쾌한 일화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터니 이수광씨가 전해주지 못한 이야기들 잡으러 필자는 또 다른 잡인찾기 여행을 떠나볼까한다. 어때, 함께하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