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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만난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판초. 그 뒤에 또 다른 의미가 숨겨져있음을 알지 못하고 읽었던 돈키호테를 필자는 괴팍하고 독특하며 조금은, 아니 많이 이상한 아저씨로 기억한다. 그러나 뭣도 모르던 그 시절에도 그 이상함 속에서 나쁘진 않은데? 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 호감형 인물이었음 회상해본다. 그는 특이한 진보자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자칭 돈키호테라 지칭하며 세계를 놀래킨 한 청년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체 게바라. 쿠바 혁명의 위대한 동지이자, 공산주의를 부르짖었던 혁명가였던 그는 자신을 돈키호테라 지칭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무난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 그러나 자신의 의지를 믿고 30여년 인생을 살다 간 그의 모습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오버랩 시키는 건 비단 나 뿐일까.
체 게바라하면 많은 사람들 (심지어 그를 모르는 사람조차 아!하고) 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는 빨간 표지의 평전이 아닐까 싶다. 그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가 만들어 낸 위대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물론 많은 페이지를 들여 그의 업적을 따라간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역시 위대하고, 멋진 정치가이자 혁명가로서의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 뿐이라면 이 책을 구지 찾을 이유는 없을지 모른다. <체, 회상>이란 제목이 알려주듯, 여기에서는 단지 그의 업적을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그보다 한 사람으로서의 체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애정의 눈길이 만져진다. 책의 저자가 그의 두번째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알레이다 마치라고 한다면 그 느낌이 조금은 전해질까.
많은 부분이 혁명 동지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사건을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따뜻한 삶의 이야기로 비춰지는 건 편안하고 애뜬, 체와 알레이다의 사진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아니 그보다 체의 사랑이 그득 담긴 고백의 시가 읽는 이의 마음을 간질이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편지와 시구절의 뒤에, 그는 넘치는 키스와 애달픈 키스를 편지에 담아 멀리 떨어진 아내에게, 자신의 살덩이들에게 보낸다. 짧은 몇 마디 말일뿐인데 그 마음이 활자를 넘어, 수없는 시간을 넘어 현재의 독자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아, 그는 시대의 영웅이기 이전에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당사자였는지!
그의 첫 고백의 순간, 손을 잡은 순간, 첫날밤의 기억, 아내에게 보내는 짓궂지만 귀여운 장난들은 그간 세간이 알던 체를 슬쩍 바꿔놓는다. 그러나 역사의 장면에서 그는 역시 영웅이고, 전설이었다. 곧고 굳센 의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열망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류의 별이라 하기에 아쉬움이 없다.
체 탄생 80주년을 맞이해 입을 열었다는 알레이다 마치. 그녀의 회상록은 달콤하다. 모든 인류에게는 역사적 소명 이전에 행복한 시간이 있었음을, 새삼스레 보여준다. 역사의 별 이전에 사람이었던 체의 웃는 모습이 가만히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