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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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에서 야한 장면을 찾아 본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일본 3대 여류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야마 유카의 작품으로, 10년 만에 재출간 된 작품인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도서관에서 특정 페이지가 너덜너덜하게 찢겨나간 책으로 입소문이 났었다 한다.

프로 서퍼를 꿈꾸는 미쓰히데는 껄렁한 농담을 달고 사는 남학생이다. 학생회 부회장인 에리는 반듯한 모범생의 전형이다. 접점이라고는 없던 두 청춘이 우연한 계기로 관계를 맺게 된다. 아슬하고 조금은 위험한 방식으로. 늦여름의 열기 속,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청춘의 이야기.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우리 자신을 어느 정도나 설명할 수 있을까. 모범생 에리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다 위험한 결심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해소해 나간다. 학교에서 가벼운 놈으로 통하는 미쓰히데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파도에 맞서며, 존엄사를 원하는 아버지의 바람 앞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민한다. 에리의 동성 친구, 미쓰히데의 아버지와 어머니 등 소설 속 다른 인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서로 다른 환경에 처해있다. 수많은 장면 속에서 나는 여러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나이고 게다가 모두 똑같이 나인 것이다.’ 함부로 타인을 재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뜻밖의 비밀 혹은 사건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얼마나 사려 깊고 다정하게 이를 지켜줄 수 있을까. 불편한 마주침 후 다시 만난 페리 위에서 미쓰히데는 비밀을 지키겠단 다짐에 앞서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자연스러운 일도 막상 본인에게는 자연스럽다고 할까, 가장 마음 편한 일인 경우가 많아. 누구나 당사자밖에는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게 바로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에리.”
소설 속 인물들은 서투르다. 무작정 저지르지만 이내 후회하고, 겁에 질려 지레 발을 빼기도 한다. 그러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심을 꾹꾹 담아 전한다. 이 소설이 파격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건 자극 속에 숨겨진 진솔함 때문이리라.

‘두 개의 하귤이 파도 틈새에서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거듭하며 금빛 점이 되고, 이윽고 반짝이는 물거품과 구별이 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불쾌할 수도, 아플 수도 있을 이야기를 감내하고 읽어낸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다. 당신에게도 두 개의 하귤과 짙푸른 바다의 파도가 닿기를.

‘’, “” 안은 책 속 구절 인용

이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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