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콩닥콩닥 18
폴 엘뤼아르 지음, 오렐리아 프롱티 외 그림, 박선주 옮김 / 책과콩나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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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교 공책 위에

내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그리고 한 단어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너를 알기 위해 태어났다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

폴 엘뤼아르 「자유」 중에서




세계적인 15명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하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입니다.

그림 작가들은 시의 각 구절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그려 넣었습니다.

시는 한 편의 시로 읽었을 때와 각 구절에 그림이 더해졌을 때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서로 다른 작가들의 시각이 더해져 한 편의 시가 여러 해석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들을 골라보았습니다.

'밀림과 사막 위에'로 시작하는 구절의 이미지는 아이의 그림처럼 순수한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내 문턱의 발판 위에'로 시작하는 구절의 이미지는 푸른 바닷속에서 고래가 넓은 바다로 향해 헤엄치는 모습이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책의 표지이기도 한 그림은 책 전체의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 주며 자유의 이미지를 전합니다.

폴 엘뤼아르는 처음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된 상황이었고 레지스탕스였던 그는 시의 마지막을 '자유'라는 단어로 끝맺으며 자유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검열관이 이 시를 단순히 사랑의 시로 받아들여 통과시켰다는 일화는 이 작품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던 사실이 뜻깊게 다가옵니다. 시는 지금 읽어도 감정과 울림을 그대로 전합니다.

『자유』를 읽으며 여전히 자유를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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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비룡소 전래동화 39
배삼식 지음,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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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으로 시작하는 전래동화는 상상의 세계와 현실이 어우러져 착한 이는 복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 구조를 지닙니다.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역시 전래동화의 틀을 지니고 있지만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의 마음과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문장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며 공감하게 되고 기존 전래동화와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도라지 총각의 모습을 담은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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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아리 머리 팔다리

다 말짱한 총각인데,

딱 눈 하나가 말썽이야.

도라지꽃처럼,

청옥처럼,

가을 하늘처럼

새파아란 왼쪽 눈동자.

---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중에서


도라지 총각의 한 쪽 눈 색을 이렇게 아름답게 풀어낸 문장은 그림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글로 그려 낸 푸른 빛이 그림 속 눈동자와 이어져 인물의 인상이 또렷이 보입니다. 생긴 모습때문에 사람들에게 내쫓긴 도라지 총각은 손이 붉은 여인을 만났는데 총각은 그 여인이 지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에게 미움받아 온 이유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끌림이 되어 그렇게 둘은 함께 살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른 채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을 담아봅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 가는 줄 모르고

꽃 피면 봄이구나, 잎 지면 가을이거니,

석삼년이 흘렀지, 정도 담뿍 들었지.

---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 중에서


이야기가 이대로 끝났어도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던 시간이 문장 속에 고스란히 전해지지만 운명은 끝내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지네 각시 도라지 총각』은 마음을 울리는 정서와 아름다움이 담긴 문장에 그 감정을 살려 주는 그림이 함께하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읽어 주면 이야기의 흐름이 살아 있어 읽는 재미가 있고 어른들에게는 애틋함과 여운이 남는 감정을 전해줍니다. 추운 겨울날 한 편의 아름다운 전래동화 이야기가 모두에게 따스히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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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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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50대 여인의 삶의 이야기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입니다.

어머니는 보청기와 발목엔 철이 박혀있고 아버지는 틀니에 저자는 임플란트를 했고 세 가족이 모두 디스크 수술을 하고 부모님은 사고로 한 두 개의 손가락을 잃었고 저자 또한 디스크로 무리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 농사라는 힘든 일을 한다는 게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부족한 몸을 살피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만큼 해내며 하루를 이어갑니다. 50대 이른 은퇴를 하고 농사를 짓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부모님과 함께 한다는 것 또한 쉬운 결정이 아님에도 함께하는 건 그 선택이 충동이 아니라 고민 끝에 내린 삶의 방향임을 보여줍니다.

"노인이냐 아니냐는 연금 탈 때 말고 사실 의미가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것, 내일 하고 싶은 것이 있냐 없냐가 중요할 뿐."(p.20)

-->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나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처럼 다가와 은근 용기를 줍니다. (이 글을 밑줄 그으며 뿌듯했다는...)

아이들이 언젠가는 부모의 곁을 떠날 거란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전원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이들을 다 키우면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녹록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초보 경작러로서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농사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됩니다. 귀농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자 만만치 않은 고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뜰히 챙겨주는 아버지이지만 과거에는 자신과 엄마를 힘들게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에서 지켜주지 못한 기억들로 마음이 복잡할 법도 한데 함께 농사를 지으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 말로 풀지 못했던 마음을 나누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옵니다. 밭에 농작물을 가꾸듯 삶을 가꿔나가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관계 또한 시간을 들여 돌보고 기다려야 비로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가는 과정을 보며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는 진심 어린 이야기들이 마음을 채워 주고 내 삶을 살펴보게 하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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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 - 숨겨진 매력을 찾아 떠난 17번의 대만 여행, 그리고 사람 이야기
이수지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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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는 제목부터 대만에 대한 친근한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17번의 대만여행을 한 저자의 여행 에세이로 대만의 숨겨진 매력을 알려준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펑리수와 버블티로 익숙한 나라이자 언젠가 TV에서 본 기찻길에서 풍등을 날리는 장면이 대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대만에 가게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올해 대만에 여행할 기회가 있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대만 여행에세이를 만나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이 책은 대만을 관광지로 안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이야기들은 여행 중 스쳐 간 사람들과의 순간이 대만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하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낯설지 않게 만듭니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대만을 여행하게 된다면 유명 관광지 소개를 찾아보는 것만큼 이 책을 읽는 일 또한 대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광 정보로는 알기 어려운 분위기와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태도를 통해 대만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여행지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이토록 다정한 대만이라니』는 여행의 매력을 어디를 가느냐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여행을 깊게 만든다는 걸 말합니다. 대만을 넘어 낯선 나라를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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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엄민정 외 지음 / 북도슨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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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림을 좋아한 시간이 꽤 오래되었습니다.

마음은 좋아하는 쪽을 향했지만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렇게 그림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다 아이들에게 손길이 조금씩 덜 가게 될 무렵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전시를 관람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시를 보고 돌아올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관심 있게 바라본 그림이 분명 있었는데 그 그림 앞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글로 옮기기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시 관람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서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느낀 나만의 감각을 어떻게 말로 풀어낼 수 있을지 자주 막막해졌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가제본을 만났습니다.

가제본을 살펴보니 그림의 정보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그림 앞에 머문 개인의 사유를 담은 이야기들에 시선이 머무르게 합니다. 감상에는 정해진 답이 없으니 그림을 본 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글로 담아낼 수 있는지 안내합니다. 그림을 이해하는 법보다 그림을 바라본 뒤의 마음을 기록하는 일에 집중하게 만드는 점이 좋았습니다.

명화부터 우리의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남긴 글들 가운데 우리나라 그림 중에서는 <어변성룡도>가 특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년필로 글쓴이의 문장을 필사했고 그림도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어변성령도>는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며 서재에 걸어 두던 민화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읽는 순간 고3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 방에 걸어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민화를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리고 싶고 감상을 글로 남기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처럼 예술을 좋아하지만 느낀 바를 글로 옮기는 데 망설임이 있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의 가제본을 먼저 읽었습니다. 가제본이었지만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의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어 그 다채로움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식 출간 소식을 들으며 저자분들께 진심 어린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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