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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때 같이 놀던 친구때문이었는지, 뭣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동생과 둘이 신나게 다녔더랬다. 우리가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면 막내동생도 따라왔는데 집에 와서는 곧잘 한다는 소리가 엄마한테 "엄마, 누나들이 피아노 치는데, 뚜르르뚜르르 이래~"하면서 말을 했다고 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뚜르르~가 아니라 사실은 동생이 혀로 내는 소리였는데 어쩜 그렇게 혀를 잘 굴리는지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한다. 체르니 100번, 체르니 30번, 그리고 무수히 연습했던 손가락 연습곡. 그래도 제일 좋았던건 내 마음대로 악보를 보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거였다. 그 당시에는 노란색으로 나오는 악보들도 참 많았다. 대부분 간단한 연주곡들을 사긴 했지만. 바하라던가, 쇼팽이라던가 지금은 잊혀져도 볼줄도 모르는 악보인데, 손가락은 기억하고 있는지 한곡쯤은 아직까지 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나는 다시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보면 미술학원이라거나, 피아노학원이라거나 이런 말들을 꺼낼때마다 나도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둘이서 신나게 건반을 치면서 좋아했던 젓가락 행진곡, 고양이 무슨 제목의 곡들. 그리고 또 나를 피아노앞에 앉게 했던 노란색의 악보들.
집에 오면 가끔 거실에 피아노가 없는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피아노를 통해 성장한 두 사람이 있다. 미유와 소연.
이름도 다르고, 집도 달랐건만 두 사람은 항상 함께였다. 피아노를 칠때도, 책을 읽을때도, 놀러갈때도, 심지어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때도.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었건만 어쩜 이렇게 같은 것을 좋아했을까..
그럼에도 살아간 길들은 달랐다. 자유롭지 못한 집안 환경에서 답답함을 느꼈을 미유는 한곳에서 정착을 하지 못해 떠돌기 일쑤였고,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고 엄마에게 받지못한 사랑을 이모에게서 받은 소연은 정착은 했으되 마음으로 떠도는 사람이었다. 그 이모조차 후에는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것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지만. 일종의 속죄였다고.. 끝까지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나 없으면 두 모녀가 어떻게 살까싶어서.. 그치만 지금 이러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나 싶다고. 누구나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으련만,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 소연도 참...
항상 함께여서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을 먼저 떠난건 소연이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기댈 한사람을 찾아냈더니 미유와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소연은 조용히 준비를 했다. 미유에게 말한건 다른 사람들과의 합주회였다. 피아노를 쳐도, 집을 사도 항상 같이할거라 생각했던 미유는 예상치 못한 얘기에 배신감을 느꼈다. 하긴 누가 먼저 배신을 한거였는데...
우리들의 모습이 한권의 책에 담겨있다. <티타티타>라는건 '젓가락 행진곡'이다. 이런 이름을 갖고 있을줄은 몰랐는데 읽다보니 알게됐다. 그래도 나는 '젓가락 행진곡'이 훨씬 좋다. 손가락 두개로, 두 사람이 같이 치게 되는 연주.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두 개가 한쌍인 젓가락. 딱 맞지 않은가. 그럼에도 <티타티타>에는 내용과는 상관없는 경쾌함이 들린다. 나는 두 여자가 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일뿐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사실 두 여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유의 엄마와 언니, 그리고 소연의 엄마와 이모. 이 여자들의 이야기다. 서로 희생하고, 가족이라는 틀로 묶여있지만 사실 어느것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행했지만 또 나름대로는 행복했던 그때. 나에게도 있었고 그녀들에게도 있었던 시간들이 후회스럽지만은 않았던 때. 그때가 가끔 그리워지는건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닐까...
- 몸무게는 결코 줄지도, 늘지도 않을 거야. 인연에는 무게가 없더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 그런 것 따위 없더라. 습관 같은거더라.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시작하면 무겁게 사랑해야 하고, 거기서 끙끙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참아야 하고.
- 가족이 아니었다면 슬플 일도 없었겠지. 한 사람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어김없이 욕망을 접어야 했을 테고. 그게 온통 슬픔의 근원이라는 것을, 그 중독의 고달픔을 미처 몰랐겠지. 관계의 무작용은 늘 뒤늦게야 나타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