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하우스 플라워 - 온실의 꽃과 아홉 가지 화초의 비밀
마고 버윈 지음, 이정아 옮김 / 살림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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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 직장을 안 다녀도 된다고 가정할 때를 말하는거죠?

모두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겠죠. 신나는 모험도 해보고 불타는 사랑도 하고, 또 부자도 돼보고.

뭐, 그런 평범한 것들이요.

 

오랜만에 재밌는 로맨틱 코메디(?) 소설을 만났다. 코메디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어쨌든 난 너무 재밌었다. 사실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도 기대했었는데 그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약했다. 내가 기대했던만큼이 아니야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초로 시작해서 화초로 끝나는 이야기라니,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나 신비스러운 화초가 아홉가지가 있고, 또 마지막 열번째는 아무나 찾아낼 수 없는 전설의 화초라니. 그렇다고 아홉가지 화초가 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싶었으나 관뒀다.

 

릴라는 카피라이터다. 결혼을 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지금은 텅빈 공간 하나.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은 지금 막 이사한 집이 전부였다. 일도 재밌지 않고, 더군다나 만나는 남자도 없다. (어쩜 이리 비슷한지!!) 집이 삭막해서 화분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했던 릴라는 우연히 들른 마켓에서 화초를 파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필연이었다고 처음에 나온다. 이 만남이 모든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희귀한 화초라는 극락조화를 만나게 되고, 애지중지하면서 화초에 대한 관심을 더욱 깊어져 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빨래방에서 신비한 화초를 또 한번 만나게 되어 화초의 손에 이끌려 빨래방을 기웃거리게 된다. 빨래방만 신기한게 아니라 주인도 신기했다. 빨래방에는 물론 빨래기계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눈길을 끈건 그 공간에 가득찬 화초들이었다. 바닥에 이끼며, 사방에는 온통 화초들. 온통 신비로운 색들이 가득차 있었다. 빨래방 주인인 아르망은 그녀에게 '나비단풍'이라는 화초의 가지를 잘라주며 뿌리를 키워보라 한다.

 

- 그 뿌리가 아가씨에겐 골칫거리가 될거요. 아가씨를 지금 그 상태로 묶어 둔 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할테지. 식물들은 자기 힘으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에 뿌리를 필요로 하는 거라오. 뿌리는 식물이 바람에 떠밀려 사방으로 날아가는 걸 막아주니 식물에 큰 기여를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의지대로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뿌리는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쓸데없는 존재인거야. 대개 인간들은 한곳에 매여 있길 원하지 않는다오. 하여 우리는 이동하고자 할 때 뿌리를 떼어내야 하는데 그러면 상처가 되니, 결국 현재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눌러앉고 마는거지.

 

나에게도 뿌리가 있어 그것에 기대고만 싶어하는걸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어디든 안주할 곳이 있으면 바로 그곳에 정착하고 만다. 나만 그런걸까,다른 사람들도 그런걸까.

 

뿌리 내리는데 성공한 릴라는 화초를 판 남자, 엑슬리에게 화초를 봐달라고 했다가 빨래방 얘기를 하게되고, 그곳에 아주 신비한 아홉가지 화초가 있더라는 얘기를 하고 만다.

- 저기에 있는 화초들은 각각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아홉가지 욕망의 열쇠를 쥐고 있지.

사실 이 남자가 먼저 아홉가지 화초의 전설이라면서 릴라에게 말해줬었다. 엑슬리는 화초를 훔쳐 달아났고, 아르망의 빨래방은 더 이상의 빨래방이 아니게 된다. 모든것이 자기 탓인것만 같은 릴라는 아르망에게 뭐든지 돕겠다하고, 그런 아르망은 그녀에게 아홉가지 화초를 다시 찾으러 가자고 하는데..

 

- 일단 결정을 내리면 더 이상 가타부타 망설이지 말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후회없이 밀고 나가야 해요.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는 나중 문제죠.

멕시코의 깊숙한 곳으로 가서 화초를 찾아야만 하는 릴라.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그녀만이 아홉가지 화초를 찾을 수 있을거라며 혼자만의 힘으로 오라는 아르망. 그곳에서 만난 근육질의 다부진 몸을 가진 디에고.

디에고를 만나면서부터 릴라는 정말 남자가 한~~참 없었던 사람처럼 끈질기게 작업을 하고, 릴라의 욕심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디에고. 그를 위해 릴라는 엑슬리가 가져간 화초중 한가지를 찾아와야 하는데..

 

릴라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화를 부를것 같더라니.. 아니, 그보다도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작업을 해대는지 원.. 눈을 떼지 못하더니 결과가 이거다. (이렇게 거창하게 썼지만 딱히 심한 작업은 아니었다. ㅋㅋ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노골적인 눈빛정도??)

순전히 미안한 마음에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이 여행이 판타지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것들이 신비스러웠다. 이 세상것이 아닌것만 같았으니까.

 

- 자네는 자유가 겁나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언제나 자신을 구속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지. 스스로 능력을 키워. 그래야 진짜 자기 능력이 되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니고 있는 것들에 반하지 말게.

다른 책같지 않게 꼭 나한테 해주는것만 같던 말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다 표시해두었다면 몇장 건너 포스트 잇이 다 붙어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유롭고 싶다고, 한동안은 놀고만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있다보면 지루해서 견딜수가 없다. 뭔가 몸을 움직일만한 다른 일을 찾고 있다.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말이다. 이러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는걸까...

 

줄리아 로버츠가 영화를 찍기로 했다니.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역이 아닐까 싶다. 벌써부터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힘들게 찾은 아홉가지 화초. 거기에 그녀의 열정에 딱 어울리는 마지막 화초. 그걸 찾아가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성장했을까. 이렇게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왜 내겐 그런 기회가 없나를 더 생각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생겼으면 하고. 이 무료한 생활에 흥미를 가질만한 한가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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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이 너무 많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 2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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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일본 추리소설만 읽다가 어쩌다 한번씩 눈을 돌려 영미권 추리소설도 읽는데..

이책도 마침 일본 추리소설에도 손이 안가고, 갖고 있는 책들에 손이 안갈때 만났다.

서평 책이라 안그래도 잘 안읽힌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어쩜 이렇게 안 읽힐수가!!

나름 재밌다고 생각한 책이라서 골랐는데.. 요새 내 책 고르는 실력은 꽝인가!!!

 

피터는 상류층 자제이면서 동시에 사립탐정이다. 셜록 홈즈와 약간 비슷한데 돈이 없는 홈즈에 비하면 완전 부자!!! 그리고 경찰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경찰에 친구가 있다)

전작과 약간 이어지는듯하지만 그건 그냥 그 일을 마치고 나자마자~ 이런식으로 시작된다. 피터의 형이 살인에 휘말리게 됐다. 다름 아닌 형의 집에서 동생의 약혼자가 살해된 것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변호를 해주는데 형은 입을 다물고 있고, 동생은 거듭 진술을 번복하며 피터를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게다가 그날밤 무슨 소리는 들었거나, 누군가를 본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제목 그대로 증인이 너무 많다!!!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피터는 모르는 사람의 사건을 해결해가듯 작은 단서를 하나하나씩 찾고 다니는데..

 

등장 인물도 너무 많았고, 날 더 헷갈리게 만들었던건 번역이다. 어디서는 피터 경, 어디서는 피터씨. 분명히 보는 시점이 똑같은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너무 정신이 없었다. 옛날에 나왔던 책이라서 고전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있다. 인용한 구절에서 주는 의미가 있을텐데.. 그걸 모르니 더 난감할뿐. 홈즈와 비슷했지만 약간은 정신없었던 책이다. 전작은 어땠는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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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쿠온, 엄마아빠는 히피야!
박은경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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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이렇게 좋은 데를 놔두고 지금 넌 어디 있는 거야?

문구를 보자마자 예전에 티비에서 나오던 여행사 광고가 떠올랐다.

멋진 풍경들과 사진찍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저런 문구를 보여줬던 것 같다.

표지도 인상적이었다.

파란하늘과 바람을 맞으며 어딘가를 가르키고 있는 아이의 사진.

어찌보면 제목이 그렇게 즐거운것도 아닌데, 난 보자마자 너무나 즐거웠다.

어쩌면 지금 내 안에 떠나고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5월이 되기전부터 날이 따뜻해지면서부터 나는 "놀러가고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내게 초록색 나무들과 꽃들의 유혹은 쉽사리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호주인과 결혼을 하고 지금도 외국에서 돌아다니며 살고 있는 지반 켈리.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수업 등등을 배우던 중, 호주인 남편 바바를 만났다. 그리고 소중한 아들 쿠온도 만났다.

언어도 달라서 지내기 어려웠을거라 생각했는데 이 여인에게는 그런것도 없었는지 모든 상황이 즐겁기만 하다. 읽으면서도 킥킥 거릴때가 많았다. 그녀의 가족들의 생활은 정말 재미있다.

환경을 생각해야한다고 잔소리한다는 남편, 둘이 잘 놀다가도 어느새 토라져서는 10분 후면 두 사람이 똑같이 한마디씩 하는 아들과 아빠. 연하의 남편이라서 애를 둘 키우는 것 같다는 그녀의 하소연조차 귀엽게만 보이니 큰일이다. 간간이 들어있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녀 가족의 일상을 생각하느라 유심이 들여다봤다. 한곳에서만 정착하지 않고, 자주색 스쿨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삶을 택한 가족. 힘들게 살면서 언제 이 시절이 지나가나~ 이러기 보다는 그 순간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 같아 너무나 부러웠다.

 

-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는 10대 시절의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정해준 자리에서 벗어날 궁리만 했다. 20대의 나는 자신을 너무 낮추어 생각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30대의 나는 언젠가 더 좋은 직업을 가지면, 돈을 더 많이 벌면, 살을 빼면 더 나은 사람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40대의 나는 그런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의 커가는 매 순간을 기억해놓는다는 그녀. 난 왜 아이도 없는데 이런걸 같이 느끼고 있는건지. 어린시절은 한번뿐이라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서 내 어린시절도 함께 뒤돌아본다. 나도 나중에 이런 생각을 해야지~ 하면서.

버스를 타고 하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텐데 이 가족을 보고 있으면 문제없을 것 같다. 못씻는것 따위, 일하는 것따위, 아들이 약간 걱정되긴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니 뭐가 문제랴! (인도는 좀 싫어하는 것 같지만)

책을 읽는 순간동안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아직도 일에, 지금 현실에 매여있지만 마음만은 이들과 함께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를 꼭 만나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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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스톰 미러스케이프 시리즈 2
마이크 윌크스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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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읽은터라 후작도 얼른 만나고 싶었다.

그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아주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었던 작가가 이번에도 역시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림속에 다른 공간이 있다는것을 발견하고, 그곳을 탐험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인 전작인 반면, 미러스톰은 권력을 지니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테르라고 하는 이곳에서의 수녀들의 반란이다.

미러스케이프에서 제5미스테리에 대항하여 승리를 얻어낸 멜과 루도 렌은 위대한 화가인 스승님 밑에서 수련생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스승님의 명을 받아 천장 한구석을 그리게 된 그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나오던 멜은(항상 그렇듯이) 두 명의 여자가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

"블람 사람들은 모조리 눈먼 바보들이야. 자기 눈으로 보고도 뭔지 몰라. 곧 표식이 완성되고 저 너머 세상이 열릴거야. 그러면 첫번째 폭풍이 시작되겠지"

"그 다음에는?"

"궁마다 폭풍을 만들어야지. 폭풍으로 인해 생긴 두 세계 사이에 벌어진 틈 사이로 악마들이 몰려오겠지. 블람 거리에는 악마가 넘치게 될테고, 그때 우리가 동맹들과 힘을 합쳐서 악마를 몰아내고 블람을 구하는거야. 그 다음에는 우리가 바라는걸 다 손에 넣을 수 있어."

바로 테르들이 권력을 잡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이 일에 멜과 루도, 렌은 휩쓸리게 되고. 이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다가오는 위험도 만만치 않았는데.. 전작에서의 악연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스케일이 훨씬 커졌다. 안그래도 큰 세계였는데 그곳에 또 다른 세계의 것들까지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써내려가다니. 그리고 매번 느끼는거지만 어째 주인공은 나쁜 일에 휘말리는지. 하긴 이런 일이 없으면 이야기가 성사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약간 어지럽다 싶을때는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오고, 좀 지루하다 싶을때는 여지없이 급전개시키는 작가.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모를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두꺼워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이 세 친구들과 같이 그림속을 헤매고 다닌다. 정교한 묘사로 인해 머릿속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그 장면을 상상하려 애쓴 나머지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후편에 대한 떡밥까지.

총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책. 언제 나오지~ 하다보면 불쑥~ 책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의 패턴이 전작과 비슷한 점이 없지않아 있지만, 흥미롭게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옴으로 해서 잊혀진다. 눈이 있는 나비라던가, 모음과 자음을 이루는 나비. 그리고 서랍으로 이루어진 몸을 갖고 있는 아저씨(?) 여전히 궁금하기만 한 그림속의 세계까지 이 모든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는 폭풍이었다. 다음에는 제목을 보아하니 그림자인데, 설마 이 친구들,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걸까? 만화를 많이 본 경험으로 이런 상상또한 해본다. 세번째 이야기도 얼른 만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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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티타
김서령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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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때 같이 놀던 친구때문이었는지, 뭣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동생과 둘이 신나게 다녔더랬다. 우리가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이면 막내동생도 따라왔는데 집에 와서는 곧잘 한다는 소리가 엄마한테 "엄마, 누나들이 피아노 치는데, 뚜르르뚜르르 이래~"하면서 말을 했다고 엄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뚜르르~가 아니라 사실은 동생이 혀로 내는 소리였는데 어쩜 그렇게 혀를 잘 굴리는지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한다. 체르니 100번, 체르니 30번, 그리고 무수히 연습했던 손가락 연습곡. 그래도 제일 좋았던건 내 마음대로 악보를 보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거였다. 그 당시에는 노란색으로 나오는 악보들도 참 많았다. 대부분 간단한 연주곡들을 사긴 했지만. 바하라던가, 쇼팽이라던가 지금은 잊혀져도 볼줄도 모르는 악보인데, 손가락은 기억하고 있는지 한곡쯤은 아직까지 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나는 다시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보면 미술학원이라거나, 피아노학원이라거나 이런 말들을 꺼낼때마다 나도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둘이서 신나게 건반을 치면서 좋아했던 젓가락 행진곡, 고양이 무슨 제목의 곡들. 그리고 또 나를 피아노앞에 앉게 했던 노란색의 악보들.

집에 오면 가끔 거실에 피아노가 없는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피아노를 통해 성장한 두 사람이 있다. 미유와 소연.

이름도 다르고, 집도 달랐건만 두 사람은 항상 함께였다. 피아노를 칠때도, 책을 읽을때도, 놀러갈때도, 심지어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때도.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었건만 어쩜 이렇게 같은 것을 좋아했을까..

그럼에도 살아간 길들은 달랐다. 자유롭지 못한 집안 환경에서 답답함을 느꼈을 미유는 한곳에서 정착을 하지 못해 떠돌기 일쑤였고, 아픔을 속으로만 삭이고 엄마에게 받지못한 사랑을 이모에게서 받은 소연은 정착은 했으되 마음으로 떠도는 사람이었다. 그 이모조차 후에는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것이 아니라는 고백을 하지만. 일종의 속죄였다고.. 끝까지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나 없으면 두 모녀가 어떻게 살까싶어서.. 그치만 지금 이러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나 싶다고. 누구나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으련만,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 소연도 참...

항상 함께여서 모르는게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을 먼저 떠난건 소연이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기댈 한사람을 찾아냈더니 미유와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다. 소연은 조용히 준비를 했다. 미유에게 말한건 다른 사람들과의 합주회였다. 피아노를 쳐도, 집을 사도 항상 같이할거라 생각했던 미유는 예상치 못한 얘기에 배신감을 느꼈다. 하긴 누가 먼저 배신을 한거였는데...

 

우리들의 모습이 한권의 책에 담겨있다. <티타티타>라는건 '젓가락 행진곡'이다. 이런 이름을 갖고 있을줄은 몰랐는데 읽다보니 알게됐다. 그래도 나는 '젓가락 행진곡'이 훨씬 좋다. 손가락 두개로, 두 사람이 같이 치게 되는 연주.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두 개가 한쌍인 젓가락. 딱 맞지 않은가. 그럼에도 <티타티타>에는 내용과는 상관없는 경쾌함이 들린다. 나는 두 여자가 다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일뿐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사실 두 여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유의 엄마와 언니, 그리고 소연의 엄마와 이모. 이 여자들의 이야기다. 서로 희생하고, 가족이라는 틀로 묶여있지만 사실 어느것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행했지만 또 나름대로는 행복했던 그때. 나에게도 있었고 그녀들에게도 있었던 시간들이 후회스럽지만은 않았던 때. 그때가 가끔 그리워지는건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아닐까...

 

- 몸무게는 결코 줄지도, 늘지도 않을 거야. 인연에는 무게가 없더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고.. 그런 것 따위 없더라. 습관 같은거더라.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시작하면 무겁게 사랑해야 하고, 거기서 끙끙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참아야 하고.

 

- 가족이 아니었다면 슬플 일도 없었겠지. 한 사람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어김없이 욕망을 접어야 했을 테고. 그게 온통 슬픔의 근원이라는 것을, 그 중독의 고달픔을 미처 몰랐겠지. 관계의 무작용은 늘 뒤늦게야 나타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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