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파리 테러로 인해 아내를 잃은 남편, 엄마 잃은 아이의 아빠가 쓴 글이다.

 

공감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1. 파리 테러, 이 자체가 나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IS가 멀게 느껴진다. 그 쪽에서 어떠한 갈등이 있는지 잘 모른다.

 

2. 와 닿는다 해도, 저자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고 할 수 있을까?

 

테러로 갑작스레 아내를 잃은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추측할 뿐이다. 또한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저자는 책에서 은연 중에

‘당신은 나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하긴, 누가 앙투안과 똑같은 심정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엽기적인 사고로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사건은

파리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앙투안만 겪는 게 아니다.

 

어쩌면 더 불가사의한 사건이 여기에 있다.

세월호...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얼 했는지, 보고를 어떻게 받은 것인지

여전히 불투명하고 의혹에 휩싸여 있다.

 

해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두 번이나 막혔다.

 

이건 배가 침몰해서 죽은 게 아니라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못하게 했기 때문에,

죽어가도록 놔둔 것이고, 죽인 것이다.

 

이러한 막막함, 슬픔, 분노를 우리는 겪고 있다.

그러한 선상에서 앙투안을 다시 보게 된다.

 

글쎄, 앙투안의 나이가 얼마나 될까? 나랑 비슷할 거 같다.

멜빌(아들)이 3살이니..

그런데 아내와의 이별이라..

 

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벌어진 사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어마어마한 일을 마주한 앙투안의 글을 읽는 건

다른 글을 읽는 것과 다르다.

 

절망과 고통의 터널을 헤쳐가며 쓴 글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울림이 된다.

 

‘다음에 보자’는 말은 약속, ‘몸 잘 챙겨’라는 말은 초대,

반면 ‘용기를 내’는 최종 판결 같다고 말한다.

 

위로의 말이 있을까? 없다.

그저 있어주기, 가볍게 말하지 않기, 지켜봐주고 받아주는 상대 되기가 우리 할 일이다.

해라 마라 할 게 아니다.

 

 

훗날 앙투안과 멜빌이 세월호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없겠다.

 

왜? 세월호 가족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읽으면 치유될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래도 써야 한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록되어야 한다.

 

제3자가 당장 공감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치열하게, 버겁게, 힘겹게, 넘어지고 쓰러졌다 일어나며 살아간 글은

훗날 온갖 어려움을 버텨낼 힘을 준다.

 

이런 글을 통해 그러한 힘이 길러진다.

고마운 ‘빚’을 지는 거다.

 

아, 책 읽으며 ‘빚’지는 느낌이 얼마만인가.

 

 

역자의 말까지 합쳐서 143쪽 되는 얇은 책이다.

행간도 넓고 글자도 많지 않아 금방 읽는다.

누구에게 어울리는 책인가?

타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감성적인 사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감정에 장애가 있는 사람?

 

 

역자, 좋은 분이다.

이전에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 등을 번역해서 알고 있었다.

불어를 매끄럽게 잘 번역하셨다. <칼의 노래>를 불어로 옮기기도 했단다.

 

샘앤파커스, 기획 잘하는 출판사라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 책 잘 만든다.

 

앙투안과 멜빌, 그리고 역자와 출판사에게도,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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