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시간의 심리학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결론부터 말한다.

내게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나에 대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혀줬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면 그다지 별로였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별로라고 해서 별로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얻은 유익을 별로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 정도로 쓰면 이 책을 읽고픈 마음이 생기실지 모르겠다.

 

책 소개는 출판사 서평을 통해서도 많이 되었으니,

좋게 읽은 사람으로서의 특징을 적어야겠다. (그래야 ‘시간’에 도움이 되시겠죠? ^^)

 

아, 그리고 이 책은 시간 관리에 대해 조언하는 책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을 짜임새 있게 활용하는 책들은 시중에 많이 있다.

그걸 원하는 분들은 다른 책을 보시라.

이 책은 ‘시간 관리’ 이전에, 시간에 대한 태도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387,388쪽)

 

 

저자는 1939년에 5살이라고 한다. 책이 2008년에 출간됐으니 74세에 출간된 책이다.

30년 연구한 결과를 응축시켜 만들어낸 책이다.

 

최근에 읽은 <관계 수업>, <몸은 기억한다>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 70대 의사들의 내공과 연륜이 오롯이 담긴 알찬 책들이다.

 

저자들은 글을 흥미롭고 맛깔나게 쓴다. 별로 지루하지 않다.

다만 후반부로 가며 힘이 달리는 느낌이 있긴 하다.

예를 들어 시간관을 바꾸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약한 느낌이다.

물론 자기 자신이 어떠한 시간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했다면,

이미 이 책은 성공한 것이자, 변화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시간관’이란 시간에 대한 태도를 뜻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알게 됐다.

기질, 성격처럼 시간을 대하는 태도도 인간을 새롭고, 넓고 깊게 이해하게 해준다.

 

책에서는 모두 7가지 시간관을 말한다.

1) 과거 긍정 2) 과거 부정 3) 현재 쾌락 4) 현재 숙명 5) 미래 지향 6) 초월적 미래

7) 전체론적 현재

 

이 중 앞의 6가지를 길게 설명하고, 마지막 전체론적 현재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한다.

 

84~85쪽에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TPI)가 있고, 뒤에 설명이 이어진다.

(특히 과거 긍정은 꼭 설명을 봐야 오해가 없다. 나는 오해가 있었다. 126쪽을 보시라)

 

 

아내는 책은 읽지 않고, 검사만 해봤다.

우리 둘 다 초월적 미래가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는 나는 현재 쾌락, 아내는 미래 지향이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 쾌락은 지금을 즐긴다. 내일은 없다.

반면 미래 지향은 내일을 위해 오늘 절제한다.

 

우리 둘의 갈등을 ‘성격 차이’ 혹은 ‘궁합’(사주명리학적 맥락)이 아니라

‘시간관’으로 해석하게 된 점이 이 책을 읽고 배운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아내는, 동료는 왜 그렇고,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대략 감이 온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간 통찰을 깊이 해주는 책이다.

 

 

한편 나는 이 책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은 ‘전체론적 현재’에 관심이 많다. (8, 83, 151쪽을 살펴보라)

특히 얼마 전 ‘마음챙김’ 명상을 접하고 난 뒤 더욱 그렇다.

저자도 불교와 명상의 중심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마음챙김 명상은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 수련을 존 카밧진이라는 의사가 미국에서 대중화, 일반화 시킨 치료법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맥락에서도 잘 통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다.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미 시작되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게 하나님나라다.

 

그러나 많은 형식적인 기독교, 소위 개독교나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에 대해 잘 못 가르친다.

영생, 영원한 생명은 시간의 양을 뜻한다기 보다 질적인 면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의 그 아늑하고 감미로운 느낌,

혹은 짜증나고 혐오스러운 순간의 절망적인 경험,

이것을 두고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고 할 수 있다.

꼭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다. 여기서도 경험한다.

 

현재와 미래를 잇대어 사는 영원/영생 개념을 간과하는 기독교,

죽어서 가는 천국, 내세만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전체론적 현재’와 맞지 않지만,

원래 예수의 가르침과 참된 기독교 정신은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

(내세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 땅에서의 입신양명도 축복이라 여긴다.

내가 말하는 건 이러한 인간적 욕망의 성취라기보다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걷는 삶이다.)

 

종교서적이 아닌데 종교 이야기를 많이 해서 약간 신경 쓰인다.

하지만 초월적 미래 시간관을 가진 사람이 건강하고,

특히 전체론적 현재는 가장 탁월한 시간관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부분을 주목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들은 적절히 시간관이 혼합되는 게 좋다고 본다.

과거 긍정이 주를 이루고, 현재 쾌락과 미래 지향이 조금씩 섞이고,

현재 숙명과 과거 부정은 멀리하는 시간관..

 

적절하게 혼합된 시간관은 전체론적 현재 시간관과 잘 연결된다고 보고,

종교 영향을 많이 받는 초월적 미래 시간관과 더불어 설명하느라 그런 점을 양해바란다.

 

저자들은 전체론적 현재에 관해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언급했다.

 

이 책에 ‘시간’을 들이면,

시간에 대한 태도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자신과 타인이 어떤 시간관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며, 새롭게 이해하는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