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인상적인 추천사 때문이다.

‘걸작’, ‘역작’, ‘바이블’, ‘놀라운 책’, ‘위대한 업적’,

‘이 특별한 책은... 고전이 될 것이다’, ‘큰 변화를 가져올 만한 책’

‘트라우마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등등..

 

작년에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은 후, 많은 책을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게 더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면 두고두고 볼만한 묵직한 책을 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의 추천을 보며, 보통 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떨까 하며 읽어보니 정말 그렇다.

 

 

저자는 1970년대부터, 30년 이상 트라우마를 연구했고,

그 결실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경험과 고민, 지식과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알찬 꾸러미다.

 

검색해보니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1943년에 태어났다.

이 책이 2014년에 나왔으니 72세에 쓴 책이다.

70세 넘은 의사가 책을 낸다고 하면, ‘새로운 내용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며 최신 정보는 별로 담아내지 않았을 거라 예측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저자가 얼마나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요법과 정보들을 취합하고 응용하여 트라우마 연구를 진전시키는지 귀감이 된다.

‘연구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싶은 마음이 일게 되는데, 그게 70 넘은 노인에게서 느낄 줄이야..

 

저자의 연구 결과도 물론 훌륭하지만, 자세가 남다르다.

그 점이 인상적이라 여기에 옮긴다.

“내 남은 삶은 트라우마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바칠 것임을 예감했다.”(35쪽)

“밤이건 주말이건 그 병동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잠깐씩 들르는 의사들이 결코볼 수 없는 일들을 보게 되었다.”(57쪽)

“환자의 삶의 생태에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58쪽)

“나는 스캔 결과를 냉장고 문에 테이프로 붙여 놓고 이후 몇 달 동안 매일 저녁마다 가만히 관찰했다.”(85쪽)

“이 책은... 30여 년간 연구한 결실이다”(565쪽)

 

적당히 대충하는 자세가 아니라 환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며 함께 애쓴 자세이며 삶이다.

정성스러운 삶에서 이렇게 탁월한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5부는 회복에 관한 내용인데, 마음챙김 명상, 안구 운동 요법(EMDR), 요가, 뉴로피드백, 연극 치료 등 매우 다양한 방법들을 탄력적으로 수용한다.

 

그 이유는 저자가 트라우마에는 유일한 치료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34쪽)

트라우마의 증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과거의 힘든 순간을 떠올렸을 때, 당시로 돌아간 듯 굉장히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 멍해지면서 가만히 멈춰버리는 사람도 있다.

 

공통점은 현재를 잘 살아내지 못하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될 수밖에 없다.

 

 

2001년 9.11 사건으로 정신적 외상을 겪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러 기관들이 모여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았다고 한다.

전문가 위원회는 정신분석과 인지행동치료, 이 두 가지만을 권고했다.

하지만 실제로 효과를 거둔 것은 침술, 마사지, 요가, 안구 운동 등이라고 한다.(364쪽)

 

정신분석에서는 과거로 돌아가 그 기억을 끄집어내고, 거기에 머물라고 한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꾸 반복하면 나아진다고 본다.

이는 요즘 관심 갖고 보는 김형경 작가의 책에서도 접하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야기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여러 가지를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특히 ‘몸’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고 한다.

9.11 사건 피해자들도 ‘말’보다 ‘몸’ 요법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더불어 ‘환경’, ‘관계’도 중요하게 여긴다.

아니, 결국은 환경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감히 말하면,

‘자기가 있는 상태, 환경을 편안하게 느끼는가? 그렇다면 트라우마는 극복됐다’

 

편안하게 느낄 수 없어서 문제가 되고,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느끼도록 도울지를 찾아나선 게 저자다.

좀 엉성한 치료법이라도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있다면, 트라우마는 회복될 수 있다.

따뜻한 관계망은 트라우마가 재생되기 어렵고, 회복되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

 

물론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김형경 작가도 ‘몸’ 쓰는 것과 ‘관계’를 강조한다. (<좋은 이별> 160쪽.)

말만으로 다 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우울증 극복하려면 몸을 써야 한다!

몸 안 쓰면 회복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몸 쓰면 확실히 진전된다.

 

더불어 콜크도 ‘말’을 중요하게 여긴다.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는 14장 ‘언어, 기적이자 고통’에서 헬렌 켈러의 예를 들며 자세히 말해준다.

하지만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약물’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지금 미국의 주류 의학계는 ‘약물’을 선호한다. 지난 10년간 미국 국방부, 보훈부가 약물에 들인 돈이 45억 달러라고 한다.

군인 뿐 아니라 어린이, 우울증 환자들에게도 사용될 걸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저자는 약물로 트라우마를 약화시킬 수는 있으나 치유할 수는 없다고 본다.(354쪽)

그러면서도 필요한 경우엔 약물을 처방한다. 여기서도 저자의 유연한 태도를 볼 수 있다.

 

 

이 책은 읽는데 오래 걸리는 책이다. 시간을 재보니 평균 1쪽 읽는데 2분 걸린다.

완독하려면 20시간을 들여야 하는 책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뇌’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

편도체, 전두엽 등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정리됐다.

 

인상적인 건 ‘다미주 신경 이론’이다.(134쪽)

뇌, 폐, 심장, 위, 장 등이 연결된다는 말이다.

이를 발표한 건 1994년 스티븐 포지스인데, 영감을 얻은 건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에게서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1872년), 국내에서도 번역되었다.

‘역겹다’, ‘토할 것 같다’, ‘소름 끼친다’, ‘목이 메인다’ 등의 관용어는 신체 반응을 표현한 것이다.

 

어렵게 볼 것 없다.

‘기분 나쁠 때 밥 먹지 마라, 체한다’ 어른들의 지혜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거다.

저자는 서구 과학의 기반에 있으면서 동양적 지혜와 수련을 접한 결실을 묶어낸 거다.

 

그러니 전통적인 지혜를 충분히 고려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 책은 낯선 내용이 아니다.

 

동양적 전통에서는 몸과 마음을 따로 보지 않는다.

수신, 의념 등 함께 갈고 닦는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봤던 서구 사고 방식이

결국 마음챙김 명상 등 몸과 마음의 통합, ‘뫔’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 최근 연구의 결실이다.

이걸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게 ‘뇌’ 연구 결과이고.

 

감수자인 김현수님은 “트라우마를 다루는 것은 환자와 함께 견디고 안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 대상, 환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세월호, 위안부, 국정 교과서 등 이 시대 우리가 경험하는 사회적 트라우마의 현실과 이 책을 연결시킨다.

 

트라우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겪는 게 아니다.

친일과 분단,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는 모두 무의식적인 트라우마가 있다.

 

‘말’만으로 안 되고, ‘몸’과 ‘관계’도 써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방안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이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된다.

더불어 타락한 종교도 회복해야 한다.

경건하고 거룩한 영성을 일깨워주면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아, 이 서평도 엄청 길어졌다.

한 번 보시길 권한다. 꽤 시간 걸릴 걸 감안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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