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a Dream 마틴 루서 킹 - 그래픽 평전,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1
아서 플라워스, 피노, 마누 치트라카르 / 푸른지식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1.

마틴 루터 킹을 언제 처음 알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10년 전 쯤 숙제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클레이본 카슨 엮음)를 읽었다. (이번에 읽은 건 I HAVE A DREAM이니 언어만 다르고 뜻은 같다) 그때 얼마나 정독했는지는 모르겠다. 알긴 아는데 자세한 사건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묵직한 흔적이 내게 남았던 것 같다.

 

비슷한 인물이 한 명 떠오르데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도 10년 전 쯤 숙제로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이 둘은 죽은 시기도 비슷하다. (1968년, 1970년) 서로 몰랐지만, 서로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든다.

 

이 책은 우발적으로 보게 됐다. 특히 만화라서 끌렸다. 만화 아니었으면 안 봤다. 10년 전 읽은 그 책이 여전히 있으니 말이다. 함께 사는 학생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 고르게 되었다.

 

한편 ‘그래픽노블’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글과 그림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그림에 어떤 특색이 있을지 기대됐다. 보고 나니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다. 보통 만화책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림 하나하나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

 

손에 붙잡으니 1시간도 안 되어 다 읽었다. 중간에 그만 읽고 잠 잘 준비를 해야했지만, 도중에 덮을 수 없었다. 이 글까지 쓰니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자게 됐다. 그래도 후회없다. 여운이 가시지 전에 글로 적어두어야 맛이 제대로 깃든다. 미루면 다 날라간다.

 

2.

마틴 루터 킹의 굵직한 사건과 삶을 마주하며,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이끌리는가? 마틴은 고통당하는 흑인들을 보았고, 더 나은 사회-삶을 위해 헌신했다. 많은 성과와 기쁨, 수상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패배와 좌절, 모욕, 배신도 있었다. 그가 뚫고 간 길이 한 데 꿰어진다.

 

그 중 ‘베트남 전쟁 반대’가 인상적이었다. 반대하니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랜 동지들도 떠났다. 침묵할 수도 있었다. 그저 흑인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만 목소리 높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에는 상당히 꺼내기 힘든 이야기였다. 동조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 보면 현명한 선택이다. 아니, 당연한 선택이다.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은 참혹했다. 반대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어찌 보면 흑인 운동도 그렇다. 가능할 거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꾸었고, 보았다. 그것을 소리쳤다. 그 부르짖음이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얼마나 힘들든, 얼마나 위험하든 옳다면 한다. 그것이 마틴이 걸어간 길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상황을 초월하여.

 

3.

마틴의 연설 중에 ‘미국의 영혼을 구원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68쪽)라는 대목이 있다. 해방 사건은 억눌리고 있는 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가해자에게도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깨닫게 한다. 개를 풀어놓고, 물대포를 쏘는 상황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러면서 진리에 눈을 뜨게 됐다. 자신들이 어떻게 차별하고 있는지. 흑인 운동은 흑인만 구하는 게 아니라 흑인을 무시했던 사람도 구하는 거다. 고통받는 이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면 억압하고 있는 구조-장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4.

한편 이 책은 그의 약점에 대해서도 다룬다. 바로 문란한 성(性) 관계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죽기 전날 밤에도 그러했다는 말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그가 인도에 다녀온 후 첫 번째로 했던 ‘명상과 반성을 위한 날을 하루 정해두는 것’을 꾸준히 했다면 어땠을까?(78쪽)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즈음에 한 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위엄과 규율에 바탕을 두고, 이 투쟁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102쪽)

 

선택의 순간에서 항상 정도를 선택하라는 말이자, 현재의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진하라는 말이다.

자기 규율에 맞게 살았다면 그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많이?

 

그를 가장 위험하고 선동적인 검둥이 우두머리, 망할 깜둥이 목사로 불렀던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마틴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자 난잡한 성생활이 담긴 테이프를 집으로 보낸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부추기는 듯한 메모와 함께.(106쪽)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연약함을 직면하며 얼마나 애통해했을까?

사람들 앞에서와 뒤에서의 다른 모습, 이토록 기만적인 자신을 어떻게 성찰했을까?

 

달리 물어보자. 우리가 위로받을 곳이 어디인가? 많이 내주었으니까, 힘드니까 이렇게 채우고 보상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것인가?

 

다름 아닌 ‘목사’는 자신이 신 앞에 서고, 사람들을 신 앞에 설 수 있게 돕는 역할이다. 세상의 온갖 좌절감을 신과 풀어내도록 이끄는 존재다. 그렇기에 뒤틀린 쾌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더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치열한 투쟁, 이는 밖/외부 활동 뿐 아니라 안/자기 성찰에도 필요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욕망이 펼쳐지는 곳, 바로 우리 삶의 현장이 투쟁의 장소다.

 

그래, 나는 나와의 투쟁을 하자. 385일 동안 버스 승차를 거부하고, 온갖 야유와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정신을 이어받자. 새로운 삶, 더 나은 삶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던 이들처럼 나도 걸어가자.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할머니에게 마틴이 물었다. 괜찮으시냐고.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도 마음은 편하다고 답했다.

마틴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63쪽)

 

우리 삶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마틴의 삶이 내게 도전을 주듯, 내 삶도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게 부정적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새롭게 물어야겠다. 차분하게 내다봐야겠다.

그 꿈을 보고, 마틴처럼, 그 꿈에 사로잡혀 살면 좋겠다.

비록 꿈이 내 생애에 이뤄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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