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다 주니어 클래식 12
박경미 지음 / 사계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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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은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우리나라 저자가 쉽게 풀어써서 내는 기획물이다. 전에 강신준 선생님의 <마르크스의 자본 -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를 읽었는데, 덕분에 자본론에 대해 감 잡을 수 있었다.

 

이번 <신약 성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다>는 박경미 선생님의 저작이다. 녹색평론 등에 글을 쓰신 걸 알고 있고, 언젠가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내가 신약 성서를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신념과 가치관에 영향 끼친 내용들을 한 데 모으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가닥을 잡아보고 싶었다.

 

신약 성서의 사회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해주어 이야기의 맥락을 넓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그 당시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시대 상황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이를 알고 나면 더 가슴 깊이 와 닿게 된다.

 

또한 핵심적인 활동과 비유 등을 꼽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구체화시켜야 할지 좀 더 방향을 잡았다.

 

예를 들면 신약 성서에 ‘심부름 하는 사람이 높으냐, 심부름 시키는 사람이 높으냐? 심부름 시키는 사람이 높다. 그런데 나는 심부름 하러 왔다’는 말이 나온다. 예수는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간다. 종이 하는 행동을 한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서의 전복적 사유이자 혁명성이다.

 

학문적 엄밀성보다 내 신앙하는 삶에 대한 정리를 해보고 싶다. 사실 성서가 기록된 방식이 그러하다. 신앙고백적 진술이지 사회과학적 논증이 아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 각 공동체의 상황에 맞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적용하며 살았다. 나도 나 개인으로, 교회로, 사는 지역으로, 2014년이라는 시간, 결혼하여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고, 주중에는 집짓기를 하며 지내고 저녁에는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맥락에서 성서를 만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말씀이 어떻게 주어지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신약 성서 시대에 구약 성서를 인용하는 걸 보면 문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 자기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하박국과 로마서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다. (이와 관련한 책으로 피터 엔즈가 쓰고 김구원 선생님이 번역한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을 추천한다.)

 

여하튼 신앙하는 삶을 뿌리 깊게 하기 위해 성서를 직접 읽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 발걸음을 나아가는데 유익과 동력을 주는 책이다.

 

창조신앙을 핵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과 사마리아-유대의 적대관계를 남북 관계로 비추어 해석하는 면은 참 신선하고 자극이 되었다. 오늘날 성서 해석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한편 저자는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기도 한다. 베드로후서의 개, 돼지 표현이나 에베소서의 여성 비하적 표현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제기한다. 저자의 성서 비판에 놀랄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에게 직접 이야기 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 57쪽 마지막 줄이다. ‘예수의 이 행복 선언은 지금 가난하고 슬프고 박해받는 사람이 현실적인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삶 자체를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라고 쓰였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받아들여야 한다는’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으로 바꾸고 싶다. 당위적인 표현을 가능성이 있는 표현으로 바꾸고 싶다.

 

신앙하는 분이든 그렇지 않든, 성서와 그 배경에 대해 잘 이해하고 싶은 분은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글도 매끄럽게 잘 넘어간다.

 

부활이 실제 일어났든 아니든 간에,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은 엄청나게 변했다. 두려워서 도망갔던 제자들이 목숨을 무릅쓰고 예수를 전한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따르든 안 따르든, 예수의 삶과 이야기에 관심 가져보시길 권한다.

 

부활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사건들. 이대로 끝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어딘가에서 껌뻑거리며 부활할 것이다. 그래서 세상 곳곳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피어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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