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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달중이를 만나다 ㅣ 탐 철학 소설 2
김은미.김영우 지음 / 탐 / 2013년 4월
평점 :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쓴다. 한국 땅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 갈 것이지만, 정작 한국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지리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철학도 그렇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땐 한국적 사유에 대한 빈곤함과 ‘퇴계’ 선생에 대한 끌림이 있어 읽게 되었다. 사실 퇴계 선생의 얼굴은 수도 없이 봤다. 지갑에 있는 1천 원 권 지폐에서 엄청나게 자주 만났다. 하지만 퇴계 선생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 어떤 삶을 사셨는지는 거의 몰랐다. 부끄러움과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펴들었다.
허나 이러한 나만 이렇게 빈궁한 상황이 아닐 게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나처럼 퇴계 선생의 얼굴만 알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달중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것을 잘 모르고, 별 관심도 없다. 영국 여왕은 한국에 와서 안동에 방문하지만, 나는 여태 한 번도 안동에 가본 적 없고, 갈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전통 유적지를 가보고 싶어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해외를 가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전통 유적지에서는 얼마나 견문이 넓어질 수 있을지.
이 책을 보면 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책에 나오는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등 우리 건축, 사상, 역사, 문화가 더욱 궁금해졌고, 보고 싶어졌다. 공간적인 여행만 아니라 시간적인 여행으로도 우리의 견문은 상당히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다른 공간이 아닌, 같은 공간이기에 달라진 모습이 더 부각될 수도 있을테고. 우리 조상들의 흔적들과 자연스레 만나게 해주고, 관심을 불러일으켜준 이 책이 참 유익하고 좋았다.
달중이는 달팽이를 닮은 화장실(뒷간)에 가다가 쓰러진 후 과거로 간다. 퇴계 선생을 기리는 도산서원이 아니라 퇴계 선생이 살아 있을 당시의 도산서당에 간다. 거기서 묻고 들으며 퇴계 선생의 가르침과 삶을 접하게 된다.
퇴계 선생은 역시 고상하시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을 쓰신다. 이 책은 그런 것을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구수하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다보니 딱딱한 철학책과는 거리감이 있다. 구성 자체가 재미있는 소설로 되어 있기에 읽기가 수월하다. 이야기의 진행과 대화 중에 살짝살짝 철학 내용과 당시 상황이 등장한다. 그마저도 쉬운 예를 들어 이해가 바로 된다.
퇴계 선생의 경(敬) 사상이 무엇인가? 경이 중요하다고 하여 외웠을 뿐 그 의미를 삶으로 받아들이진 못했다. 경은 수양을 실천하는 방법인데, 삶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가 없다. 마음 공부, 몸 공부를 하시며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신 퇴계 선생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박제되어 있다. 있긴 있으나 허울만 있고, 생명력이 없다는 말이다. 책에서는 소설 형식을 통해 배씨 아저씨 등 신분을 넘어서 사람을 존중하신 퇴계 선생의 인품도 드러난다. 사상의 개념보다도 이러한 알맹이들이 잘 전해지면 좋겠다.
언제 안동에 갈 날짜를 잡아봐야겠다.